아테네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에렉테이온, 니케신전, 프로필라이온,
오데온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아레오파고스 언덕, 필로퐈포스 추모 기념물,
불레문(Boule Gate), 아그리파 기념비 대좌, 파르테논 신전 프리즈, 아테나 파르테노스상,
아테나여신상, 에렉테이온 카리아티드 여인상 기둥, 포세이돈 성소,
아크로폴리스 전망대, 디오니소스 극장, 하드리아누스문, 헤파이스토스신전,
제우스신전, 고대 아고라
그리스, 터키 여행 2일째인 2015년 3월 27일 금요일
여행 첫 날인 어제 인천공항을 떠난 뒤 저녁 늦게
이스탄불 공항에서 터키 가이드와 만난 뒤
호텔에서 잠깐 눈 붙이고
새벽 3시에 일어나 준비하고는 공항에 다시 가서
07:40분 그리스 아테네행 비행기를 탔다.
2시간여 비행 후 09:45분경 그리스 아테네 국제공항에 도착 후
그리스 가이드와 만나
오늘날 서양 문명의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장소이고,
서양 문명의 뿌리가 되는 고대 그리스의 신화, 정치, 문화가 태어난 곳인
아크로폴리스를 보기 위해 가고 있다.
아테네 국제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아크로폴리스로 가는 중이다.
비가 내리고 난 뒤 날씨가 흐리다.
차창으로 본 아테네 시내는
다른 유럽의 도시와는 달리 건물들이
고풍스럽거나 우아하지 않고
그야말로 생활하고 있다는 느낌이 확 다가 온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신석기시대부터 폴리스의 주거지가 발굴된 곳으로
미케네시대(BC 1400~1200)의 성벽유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사람들은 이미 미케네시대 때부터
그리스의 주요 신들을 섬겼을 것이라 보고 있다.
아크로폴리스 전경
1987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 한복판에 솟아있는 언덕으로
높은 도시를 뜻하며 그리스의 상징적인 유적지이며
서양 세계의 가장 중요한 고대 기념물이다.
파르테논신전을 비롯하여 에릭티온신전, 니케신전 등
2500 여년의 찬란했던 역사가 존재하고 있다.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고 있다.
비가 내린 후라 대리석 계단에 물기가 있어
미끄럽다.
미끄러운 대리석 길이다.
대리석 계단 옆에 들꽃들이 피어 있다.
방문 루트 안내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대부분은
중심지에 약간 높은 언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을 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러나 시대가 지남에 따라 도시국가가 폴리스로 불리게 되어
본래 폴리스였던 작은 언덕은
‘akros(높은)’라는 형용사를 붙여 아크로폴리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크로폴리스는 수비하기 알맞은 곳이 선정되고 거기에는 성벽을 쌓았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본래 전사계층의 사회였으므로
자연히 방어에 적합한 지점이 선택되었다.
아크로폴리스 위에는 폴리스의 수호신 등을 모시는 여러 신전이 세워져
도시국가의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는
아테네의 황금기라 불리는 페리클레스 시대(BC 495~429)에 건립된
파르테논, 에렉테이온신전, 니케신전과 두 개의 현문,
그리고 디오니소스 극장,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 있다.
기원전 6세기 중엽 페이스트라투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곳에 아테나신전과 아르테미스신전이 세워졌으며
도시의 수호신인 아테나여신을 기리기 위한 축제도 열렸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원전 480년에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아크로폴리스의 신성한 지역은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아테네 민주주의가 절정에 이른 시기인
페리클레스의 시대라 불리는 기원전 461~429년에야
아크로폴리스는 전성기를 맞는데
이때에 파르테논신전, 프로필라이온, 에렉테이온신전, 니케신전등이 세워진다.
기원전 447년~406년의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여러 건축물이 세워졌다.
아테나 여신을 모시는 주신전인 파르테논 신전,
입구 가운데 한 곳에 세워진 기념비적인 입구인 ,
아테나 니케 신전, 에레크테이온 신전 등은
그리스 고전 예술의 4대 걸작이다.
필로퐈포스언덕
필로퐈포스언덕은
원래 뮤즈(시와 음악을 담당하는 신)의 언덕으로 불리웠으나
그 곳 정상에 필로퐈포스 추모 기념물이 만들어지면서 부터
필로퐈포스언덕이라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필로퐈포스 추모 기념물
필로퐈포스는
로마콘솔과 아테네에서 집정관을 역임하며
아테네인에게 관대한 정책을 펼쳐 큰 호감을 샀던 인물이다.
'할아버지를 좋아하는 이'란 의미의 필로퐈포스는 그의 별명이고
그의 정식 이름은 가이우스 안티오쿠스인데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를 기리는 아테네 사람들이
뮤즈의 언덕위에 추모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AD114~116)
오데온 -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로마가 그리스를 통치하던 AD161년
그리스의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그의 아내 레길라의 죽음을 기려
건축하여 아테네 시민에게 기증한 음악당이다.
헤로데스는
그리스 아카이아 마라톤의 부잣집에서 태어난 부호로서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박애주의자이며, 웅변가, 작가등으로 불리운다.
헤로데스는 하드리아누스황제와 친하게 지냈으며,
황제는 그를 아시아지역의 자유도시에서
부패를 일소하는 임무를 지닌 감독관으로 임명했다.
AD143년에는 집정관이 되었고,
하드리아누스황제의 계승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교육에도 기여했다.
헤로데스 음악당은
고대 로마식 극장 구조처럼
관람석이 반원형으로 설계된 것이 동일하지만
디오니소스극장과는 달리
관람석이 급경사진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3열의 좌석에 모두 6000명의 관중이 앉을수 있다고 한다.
음악당 앞에는
로마건축의 특징인 아치형 창문틀이 있는
3층짜리 높은 벽이 설치되어 있으며,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원래는 목조지붕까지 설치되어 있던
실내음악당 이었다고 한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의 원형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은
이민족의 침입으로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1857년 발굴된 이후
1950년~1961년에 복원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지금도 음악회나 연극공연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명훈과 조수미도 공연했다고.
그리스 고전극, 콘서트, 오페라가 공연되고 있는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은
매년 7월~9월 주말에 오후 9시이후부터 시작하고
티켓은 극장 앞에서 판매한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은
지금 남아 있는 고대 극장 중
가장 아름다운 극장으로 알려져 있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과
멀리 필로퐈포스언덕의 추모 기념물이 보인다.
아레오파고스 언덕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 사이에 있는
해발 115m 정도의 바위언덕인 아레오파고스는
현재는 아크로폴리스처럼 바위로만 이루어진 불모의 언덕이지만
한때는 고대 그리스의 원시의회와 법원등이 들어서 있던
아테네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서 깊은 법정이었다.
여기서 살인이나 살인할 의도로 입힌 상해, 방화, 독살 등과
관련된 재판이 이루어졌다.
살인을 저지른 경우에는 대부분은 사형이 언도되고
상해를 입힌 경우에는 재산 몰수나 유배가 선고되었다.
아레오파고스 아랫쪽은 장터였는데,
이곳에서는 물건을 사고 팔았을 뿐만 아니라
아테네 시민 일상생활의 중심지로 자주 정치적 모임도 있었거니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등 철학자들이 철학을 논했다고 한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은
아레스신 (로마명 마르스)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아레스 신에서 유래되었다.
아레스 신에게는 알키페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포세이돈의 아들인 할리로티오스가
아스클레피오스의 샘 근처에서 알키페를 납치하려 했다.
아레스는 자신의 딸을 납치하려 했던 할리로티오스를 살해했다.
포세이돈은 아들을 살해한 아레스를 신들의 법정에 고발했다.
이에 신들은 후에 아레스의 언덕이라 불려진 아레오파고스에 모였다고 한다.
불레문에서 바라다 본 아레오파고스
사도 바울이
아테네 시내가 다 보이는 아레오파고스에 올라
아테네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설파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아레오파고스 한쪽 편을 보면 큰 동판 하나가 붙어 있는데,
사실 아레오파고스가 어떠한 역사적 유래가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동판만 읽고는 종교적인 성지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 동판에는 성경의 사도행전 17장 22절 이하의 구절이 적혀 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기원후 51년 아테네에 전도 여행을 와서
아레오파고스 앞에서 설교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바울은 아테네인들이 모든 일에 종교적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아테네인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제단을 보고
그 신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주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사도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아테네인은 거의 없었으나
오늘날에는 그리스 국민 98%가 그리스정교를 믿고 있다.
아크로폴리스 불레문(Boule Gate)
불레문은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로마시대인 AD 3세기 중엽에 건설된 석조문인데,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으로,
언덕 서쪽 아크로폴리스의 입구였다.
불레 게이트와 아테네 시내
3세기에 로마인들이 방어를 위해 세운 문인 불레 게이트는
1852년 이 문의 존재를 처음 발견하고 복원한 사람이
프랑스 고고학자 에른스트 불레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불레문이라고 부른다.
이 문을 들어서면
명 건축가 므네시클레스가 설계한 전문
프로필라이온까지 대리석 계단이 이어진다.
아크로폴리스의 입구인 불레문에서 조금 올라가면
로마장군인 아그리파 동상이 서 있던 좌대가 왼쪽에 있다.
이 아그리파 기념비는
아크로폴리스의 신성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로 불청객이라 한다.
아그리파 기념비 대좌
8m 높이의 아그리파 기념비 대좌는 기원전 27년에 만든
로마장군 아그리파 동상의 밑받침대로 쓰였던 것인데
전차를 탄 아그리파의 모습을 묘사한 아그리파동상은 파손되어 없고
지금은 받침대만 남아 있다.
니케 신전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지나
처음 나타나는 불레문을 통과하면 서남쪽 끝에 보이는 것이
승리의 여신인 니케( 영어 발음 나이키) 신전이다.
아크로폴리스 입구에 위치해 있으며,
BC 427~424년에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건립되었다.
웅장한 프로필라이온(왼쪽)과 니케 신전(오른쪽)
규모도 작고 눈에도 잘 띄지않으나
니케 신전은 아크로폴리스의 수많은 건축물 중에서
처음으로 이오니아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기둥이 높고 가늘며 세부에 자각장식이 많아
전반적으로 우아하고 경쾌하며 유연한 느낌을 준다.
기원전 5세기에 지어진 이 신전은 2687년 터키군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그리스 독립 후 다시 복원되었다.
니케 여신상 (프랑스 루부르박물관)
니케 여신은 승리를 가져다주는 날개 달린 여신으로
아테네 시민들은 승리의 여신이 아테네를 떠나면 자신들이 전쟁에서
패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 나머지 여신의 날개를 잘라
숨겨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니케 신전은
에레크테이온 신전과 더불어 이오니아 양식을 대표하는 신전이다.
이오니아양식은 원래 에게해 연안에 살았던
이오니아인들이 사용하던 건축 양식으로
도리아 양식의 파르테논 신전에 비해 여성적이고 우아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을 보여 주듯 니케 신전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은 하나같이 부드럽다.
그리고 기둥과 지붕 사이의 프리즈에 새겨진 조각도
파르테논 신전에 비해 훨씬 부드러운 것을 알 수 있다.
아테나 니케 신전의 정문인 동쪽 프리즈에는 유명한
그리스의 올림푸스 12신이 부조로 새겨져 있지만
지금은 그리스를 떠나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관문인 프로필라이온 (프로필라이아)
서쪽으로 난 입구를 따라 대리석 계단을 지나면
아크로폴리스의 출입문인 프로필라이온이 나온다.
프로필라이온은 성스러운 건물로 향하는 입구라는 의미로
대문 혹은 정문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기둥들만이 길게 늘어서 있는 프로필라이온은
과거에는 아무나 지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종교 제전 때는 정문에 해당하는 중앙 기둥들 사이로
신성한 행렬이 지나 다녔고,
일반인들은 양옆에 있는 좁은 문들을 통해 지나 다녔다.
프로필라이온의 거대한 기둥
프로필라이온은
아테네 근처 펜델리콘에서 생산되는 하얀 대리석과
엘레프시스에서 생산되는 푸른 대리석을 적절하게 섞어서 만들었는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높이와 크기를 자랑했다.
아크로폴리스 지역이
얼마나 신성하고 중요한 장소였는지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천정 부분이다.
BC437년에 건립된
아크로폴리스의 정문인 프로필라이온은
이오니아식과 도리아식의 기둥들로 되어 있는
여러개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17세기 베네치아인의 포격으로 크게 손상되었다가
복원되고 있는 중이다.
신전 쪽에서 본 프로필라이온
프로필라이온은 신전에 바칠 예물을 들고 다닌 문으로
웅장함과 우아함이 조화를 이룬 출입문이다.
이 문을 통과하면 파르테논신전의 뒷면이 보인다.
유네스코의 공식 마크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모양을 따온 것으로,
세계 문화유산의 이상을 상징하는 곳이다.
파르테논신전
BC 479년에 페르시아인이 파괴한 옛 신전 자리에
아테네인이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신전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 1호다.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프로필라이온을 지나면 처음에 보게되는 파르테논 신전의 뒷면
파르테논신전 뿐만 아니라
아크로폴리스의 다른 신전들도 정면은 동쪽을 향하고 있다.
이는 해가 뜨는 방향인 동쪽은 탄생, 삶, 활력의 상징이고
반대로 해가 지는 방향인 서쪽은 죽음,소멸의 상징이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서쪽인 프로필라이온을 지나면
처음엔 모든 신전의 뒷면부터 먼저 보게 된다.
원래 이 앞에는 아르테미스신전이 있었으나
페르시아전쟁시 파괴되고 지금은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다.
파르테논 신전의 앞면
파르테논신전은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여신에게 바쳐졌다.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주도로 피디아스와 익티노스가 설계를 맡아
기원전 447년부터 15년정도 걸려 지어진 파르테논은
도리아 양식 기둥의 건축적인 아름다움은 물론이려니와
오늘날에는 대부분 없어져버린 신전의 조각작품들,
지붕과 벽면(메토프)에 새겨진 조각에서
그 옛날 그리스의 화려했던 신화와 역사를 엿볼 수 있다.
파르테논신전의 옆면
노란 부분이 원래의 파르테논신전 모습이고
하얀 부분이 새로 공사를 한 부분이다.
파르테논 신전이 처음 건설될 당시에는
지금처럼 바닥과 기둥, 기둥과 지붕 사이의 프리즈라는
공간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지붕과 실내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건축물이었다.
가운데에는 금과 코끼리 뼈를 이용하여 만든
높이 12m의 아테나 여신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베네치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 때문에 파괴되었다.
고대의 아테네인들이
가장 사랑한 신은 아테나 여신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크로폴리스에
그녀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신전을 지었다.
그것이 바로 파르테논 신전이다.
아테나 여신은 처녀 신이었으므로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이 지은 아테나 신전을
'처녀의 집'을 의미하는 파르테논이라 불렀다.
2500년이나 이 자리에 서 있었던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도교가 들어온 기원후 6세기에는 기독교 교회로,
1456년 오스만제국에게 정복당한 뒤에는 모스크로 쓰여졌다.
1687년 베네치아 공국과 터키와의 전쟁때
모로시니의 베네치아 군대가 아크로폴리스를 포위하자
터키 인의 화약고로 사용되던
파르테논 신전은 대포공격을 받아 신전지붕은 날아가고,
남쪽기둥 6개와 북쪽기둥 8개가 파괴되고,
내부공간의 아름다운 벽장식 조각등이 크게 훼손되었다.
19세기 초엔 영국대사 엘긴경이 터어키 술탄의 허가를 얻어
부조장식을 대부분 톱질해서 가져가 버리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파르테논신전 복원 설명서
1세기에 걸친 발굴과 현장의 개선 이후,
아크로폴리스는 이제 아테네의 심한 대기오염으로 인한
산성비로 영향을 받아 온
대리석 부분의 안전한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가장 혁신적인 야외 보존 기술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그리스 도처에 아테나 여신의 신전이 남아 있지만
파르테논만큼 아름답고 장중하며 위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없다.
지금은 신전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프리즈나 메토프가 모두 떨어져 나갔지만
길게 늘어선 기둥들만으로도 충분히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46개의 기둥들은 지름만 해도 1.5~1.9m라 하니
우리가 한번에 안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신전의 규모는
정면 부분 기둥이 8개, 옆 부분 기둥이 15개로
총 46개의 기둥이 받침대없이 직접 기단위에 세워졌으며,
기둥모양은 배흘림(기둥 부풀리기)방식으로 시각적인 효과까지 고려하였다.
20개의 세로로 된 홈이 파여있는 기둥들은 엔타시스기법으로 만들어져
직선형 기둥의 중간부분이 가늘어 보이는 착시현상을 교정해 안정감을 주고 있고,
기둥들을 신전의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지게 세워
기둥을 수직으로 세웠을때 밖으로 넘어질듯이 보이는 착시현상도 막아주고 있다.
이러한 교정술은 기둥뿐만 아니라 신전 바닥과 건물 상층부에도 적용되어
신전의 기둥들은 완만한 곡선형으로 되어 있고
건물의 온갖 수평면은 볼록한 곡선형으로 되어 있다.
대영박물관의 그리스관
엘진이 가져온 유물은
1815년 이래 대영 박물관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대영박물관 파르테논신전관
1806년 엘긴의 7대 백작, 토머스 브루스(엘긴 경)이
오스만 제국의 허가를 얻어
파르테논에 남은 일부 조각을 떼어냈다.
이 조각물은 오늘날 엘긴 대리석 조각군
또는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군으로 불리는데,
1816년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 매각되어 지금까지 그 곳에서 전시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엘긴 대리석 조각군을
다시 그리스로 반환해 주도록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대영박물관 파르테논신전 동쪽 프리즈의 메토프
제전 행렬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신들의 모습
왼쪽부터 헤르메스, 디오니소스, 데메테르, 아레스
대영박물관 파르테논 신전 남쪽 프리즈의 메토프
인간과 싸우는 켄타우로스
파르테논 신전 프리즈와 동쪽 박공벽
외벽 상부 프리즈에는 아테나에게 바치는
파나테나이아의 대제를 부조한 장식이 있으며,
인물 360여 명, 말 219필이 부조되어 있다.
동쪽 박공벽
현재 동쪽 박공벽은
거의 파괴되고 박공벽의 가장자리 일부가 남아 있으며
이곳에 있던 일부 신상들은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동쪽 박공벽이 거의 파괴된 것과는 달리 서쪽 박공벽은 온전하게 남아 있지만
이곳의 조각상들 또한 거의 파괴 되었고
그 일부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신전 외벽의 박공벽과 프리즈에는 조각상이 새겨져 있는데
동쪽 박공벽에는 아테나의 탄생장면이
서쪽 박공벽에는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아테네의 수호신이 되기위해 싸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동쪽과 서쪽에 8개,
남쪽과 북쪽에 15개씩 솟아 있는 기둥이 신전을 에워싸고 있다.
그리고 기둥과 지붕 사이를 보면 신화와 아테나 여신을 기리기 위해
4년마다 열리는 축제에 관련된 조각이 새겨져 있다.
신전을 처음 건설할 당시에는 많은 조각이 새겨져 있었지만
전쟁과 자연재해로 파괴되고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
지진이 날 우려를 생각해서
기둥엔 구멍을 뚫어 철로 박아서 세웠다고 한다.
파르테논신전 원주기둥
BC 479년에 페르시아인이 파괴한 옛 신전 자리에
아테네인이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것으로서
도리아식 신전의 극치를 나타내는 걸작이다.
그리스가 터키로부터 독립한 19세기 초 이후부터
여러차례 복구를 시도했으나
엉성한 복구는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키곤 했다고 한다.
파르테논은
부숴지고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놀랍고 아름다왔다.
그리고 파르테논을 이렇게 가까이서
내 눈으로 직접 본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고
너무 감격스러웠다.
부서져나간 건물의 잔해들이 한곳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저것들을 조각조각 맞추는 작업은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요할 것이다.
아크로폴리스엔 유적의 분실을 막으려고
배낭을 가지고 들어가는게 금지되어 있다.
옛 아크로폴리스 복원도
지금 파르테논 신전은 내부를 복원하는 작업이 한창인데
과거 에레크테이온 신전과 니케 신전을 원래의 모습으로
완전하게 복원했던 경험이 있어,
파르테논 신전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하지만
그리스 정부에서는 기둥과 지붕의 일부만 남아 있는 지금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완벽한 복원을 포기하고 일부만 복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파르테논 신전 중앙에 있던 아테나 파르테노스상 복원 모형
정면으로 돌아가면 동쪽을 향해 거대한 아테나 파르테노상이 있었는데,
40피트 높이의 금과 상아로 된 엄청난 크기의 조각상으로
그 위용을 자랑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신전 안에서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
모든 것은 파괴되고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 상에는 아테나 여신을 상징하는 모든 것들이 총동원되어 있었는데,
그녀가 항상 쓰고 다니는 투구에는 스핑크스와 그리핀이 장식되어 있었고,
가슴 중앙에는 예외없이 메두사의 머리가 장식 핀처럼 달려 있었다.
또한 오른손에는 날개 달린 작은 니케 여신상을 들고 있으며,
왼손에는 창과 방패를 잡고 있었다.
바티칸 박물관의 아테나여신상
그리스 신화에서 유일하게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자식이라 불리는 존재가 아테나 여신이다.
아테나는 아버지의 딸이라고 한다.
물론 아테나에게도 어머니는 있다.
어머니는 신들과 인간들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메티스 여신이다.
메티스 여신은 제우스의 첫 번째 부인이라 말해진다.
그러나 제우스는 메티스가 낳을 자식에 의해 자신의 왕권을 빼앗길까 두려웠다.
그래서 아예 임신한 메티스를 통째로 삼켜버리고 만다.
그후로 메티스는 제우스의 뱃속에서 현명한 충고와 조언을 하였다고 한다.
메티스가 제우스 뱃속에서 낳은 아이는
제우스의 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머리를 공략한 것으로 보인다.
제우스는 트리톤 강가에서 갑자기 머리가 아파 고통을 호소했다.
마침 헤파이스토스가 도끼를 들고 와서
제우스의 머리를 가르자 아테나가 황금 무장을 하고 태어났다.
아테나가 탄생하는 순간에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가 심하게 흔들리고 범람하였으며 태양이 멈추었다.
제우스는 아테나의 탄생을 매우 기뻐했고 딸을 사랑했다.
아테나는 올림푸스 신들 가운데
제우스에 이은 제2인자의 위치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아테나 여신은 다른 남신에 못지않은 훨씬 강력한 존재였다.
아크로폴리스에 현재 남아 있는 신전으로는
아크로폴리스의 입구 쪽 아테나 니케 신전과
왼쪽에 있는 에렉테이온신전 그리고 아테나 폴리아스 신전 및 포세이돈 신전 등이 있다.
완전히 사라진 유적은 입구 왼쪽의 에렉테이온신전 앞쪽에 있던
아테나 프로마코스 신상과 파르테논 신전 앞쪽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
파르테논 신전 안에 있던 아테나 파르테노스 신상 및 아테나 니케 신전 안에 있던 신상 등이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던 아테나 신상들이 지금은 모조리 사라지고 만 것이다.
예전의 아크로 폴리스로 올라가는 프로필라이온
예물을 들고 올라가는 사람들의 줄지어 서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원래 이 앞에는 아르테미스신전이 있었으나
페르시아전쟁시 파괴되고 지금은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다.
프로필라이온을 지나
아크로폴리스에 들어서면 오른쪽엔 파르테논신전이 있고,
왼쪽으로 에렉테이온신전이 보인다.
에렉테이온은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신성을 겨룬 곳이었고,
아테나와 아테네가 첫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며
아테네의 초기 왕들을 기리는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었다고 한다.
원래 아테나 폴리아스의 신전은
에렉테이온신전과 파르테논신전 사이에
BC 6세기 무렵 파르테논신전보다 앞서 지어졌다가,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침입으로 완전 파괴되었다.
페르시아전쟁 이후 옛신전을 임시로 복구했지만
아테네인은 아테나 폴리아스상을 모실 새로운 신전을 짓기 시작했다.
그 새로운 신전은 포세이돈의 삼지창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성역과
에레크테이우스성소를 함께 통합한 것으로
즉 에렉테이온은 아테나에 대한 신앙을 주축으로 포세이돈과
아테네 초기 왕들에 대한 숭배를 함께 끌어안은 다목적용 신전이다.
에렉테이온은
인근의 여러신들의 성소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3개의 신위,
즉 아테나 폴리아스와 포세이돈, 에레크테이우스를 모시는 곳이었다.
이오니아식인 에렉테이온 신전은
파르테논 신전 북쪽 건너편에 자리 잡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한 지역에 여러 신을 모시는 일이 많았는데,
에렉테이온 신전은 처음부터 3명의 신을 위해
3개의 신전 건물을 지을 예정이었다.
BC 421~406년에 동쪽에는 아테나 신을,
서쪽에는 포세이돈과 에레크테이우스을 위한 신전을 건설하였다.
하지만 신전을 다 짓고 보니 전체적으로 하나의 신전처럼 보여서
세 신전을 분리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신전의 이름은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으로 전해 내려오는
에레크테이온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에렉테이온신전은
3명의 신을 모시기 위해 만든 신전이라 건물의 모양이
각 방향마다 공간과 분위기가 제각각 다른 것이 특징이다.
인위적으로 높이를 조절하지 않고 암벽 지형을 그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또 에렉테이온 신전의 건물들은
기둥을 비롯한 문간, 창문, 신전의 크기까지 똑같은 것이 없다.
이렇게 자유롭고 다양한 모습을 모두 받아들이면서도
조화로운 모습의 에렉테이온 신전은
그리스 문화의 뿌리인 포용성과 융합성을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에렉테이온 신전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에 세운 것으로
신전 구석구석을 섬세하면서도 화려하게 장식했다.
파르테논 신전이 남성적이라면
에렉테이온 신전은 여성적이다.
여인상 기둥
세 신전이 모여 하나의 신전이 된 에렉테이온 신전은
건축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신전으로 유명하다.
그중 하나가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여인 형상을 한 6개의 기둥인데,
그리스의 어느 신전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를 갖고 있다.
카리아티드 (여인으로 된 돌기둥)
에렉테이우스 성소 남쪽 현관쪽에
지붕을 떠받히는 기둥역할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들의 조각상은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뒤 그리스의 노예가 되었다고 하는
카리아이의 처녀들에게 속죄의 의미로 처녀 입상을 세워
공공 건축물의 보를 떠받치게 했는데 그래서
카리아티드라는 이름이 붙여진 기둥들이다.
카리아티드 기둥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날씬하고 자태가 아름답고
다리가 움직이는 듯 생동감이 있다.
에렉테이온 신전의
옷의 주름 하나하나까지 자세히
묘사한 아름다운 카리아티드는 모조품이다.
진품 6개의 여인기둥 중 5개는 아크로폴리스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나머지 1개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동쪽 측면의 원기둥과
남쪽 발코니의 여인 기둥에서 이오니아식 건축의
우아함의 극치를 맛볼 수 있다.
파르테논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전이 도리아식인데
에렉테이온 신전은 이오니아식으로 카리아티드가 있어
규모는 작지만 건축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에렉테이온 신전의 서쪽
여섯 명의 처녀가 서 있고
이오니아와 페르시아 풍이 뒤섞인 매혹적인 이 신전 앞에는
아테나의 올리브 나무가 자라고 있다.
올리브나무는
아테나 여신을 상징하며 고고학자가 심었다고 한다.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두고
아테나와 포세이돈 두 명의 위대한 신들이 경쟁을 벌였다고 생각했다.
아테네인들에게 아테나 여신은 올리브 나무를 제공했고
포세이돈 신은 소금물이 솟는 샘을 제공했다.
아테네인들에게 짠물은 별로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아테네인들은 아테나 여신을 선택하였고,
여신의 승리로 이 도시의 이름은 아테네가 되었다.
파르테논은 이 땅에 올리브나무를 선사한 아테나의 신전이다.
포세이돈의 샘이 있던 자리에는 에렉테이온 신전이 세워졌다.
포세이돈 성소 (북쪽)
에렉테이온의 북쪽건물로 동쪽 아테나신전에 비해 낮은 곳에 있다.
포세이돈이 아테나에게 패하긴 했지만 그리스는 다신교 사회였고,
그 당시 아테네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해상국가였기 때문에
아테네인들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을 홀대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로 아테네인들은
포세이돈의 삼지창이 꽂혀 바닷물이 솟아 올랐다는 곳을 성역화하여
포세이돈 성소를 만들었다.
포세이돈 성소 (북쪽)
건물의 외관은 이오니아식으로 지어져
7.6m 높이의 이오니아식 기둥 6개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에렉테이온의 주 건물인 아테나 신전 (동쪽)
동쪽에 위치하고 있고 이오니아식 외양에
프로스타일(건물 앞쪽에 기둥이 배열된 구조)구조를 하고 있다.
많이 파괴되고 정면의 기둥 6개만 온전히 서있다.
내부의 신상 안치실에는
올리브 나무로 만든 아테나 폴리아스의 신상이 있었다.
현지가이드는 신전 기둥의 이 문양이 연꽃무늬로
동양에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
아크로폴리스 전망대
그리스 국기가 휘날리는 전망대에 올라서면
아테네 시내가 한 눈에 다 들어 온다.
아크로폴리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아테네 시내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북쪽 기슭
숲으로 뒤덮인 고대도시의 중심인 아고라다.
광장의 기원인 아고라는 토론의 장이며
사회, 정치, 종교, 문화의 장이었으며 민주주의가 태어난 곳이다.
그 대지위에 올리브 나무와
시프레 나무와 유칼리 나무가 자라나 숲을 이루고 있다.
헤파이스토스 신전
아고라에서 비교적 원형을 갖고 있는 신전이다.
아테네에 남아 있는 다른 신전들에 비하면
거의 대부분의 기둥들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다른 모든 신전과 마찬가지로
헤파이스토스 신전도 동쪽이 정면이다.
신전의 동쪽 박공벽에는 켄타우로스와의 전쟁이 묘사되었고,
서쪽 박공벽에는 트로이 전쟁이 묘사되어 있다.
나아가 신전 외부의 메토프에는 테세우스와 헤라클레스의 업적이 묘사되어 있으며,
내부의 프리즈에도 테세우스의 업적이 묘사되어 있다.
헤파이스토스 신전 (출처 위키백과)
테세이온신전이라고도 한다. 아고라 언덕 위에 있으며,
그리스에 남아 있는 신전 중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좋다.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이전에 세워졌다.
이 신전에는 아테네의 맹주 테세우스의 부조가 많이 있어
테세우스 신전으로 생각되어왔으나
발굴 도중 대장장이와 관련된 물품이 많이 나와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를 모신 신전으로 드러났다.
헤파이스토스 신전
발굴 당시 대장장이에 관련된 물건들이 발견되어 이름 붙여졌다.
헤파이스토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술·대장장이·장인·공예가·조각가·금속·야금·불의 신이다.
로마신화에서 불카누스와 동일시된다.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이자,
제우스의 모든 아들들중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적장자이기도 하다.
아내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이다.
다른 신들과 다르게 자력으로 크게 성장한 노력형 신이다.
제우스는 헤라를 포함한 여러 부인들과 많은 자녀들을 두었는데
놀라운 것은 제우스와 본처인 헤라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제우스의 서자들에 비해 모두 함량 미달이라는 것이다.
헤파이스토스와 아레스가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인데
헤파이스토스는 뛰어난 손재주를 갖고 있었으나 불구에 못생겼고,
그의 동생 아레스는 미남이긴 하지만 신이라 하기엔 그 자질이 너무나 모자랐다.
헤파이스토스는 그의 외모와 불구 때문에 아내가 없었지만,
올림포스 신들 중 최고의 손재주를 지녔다.
올림포스의 신들이 티탄족과의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제우스는 티탄 족을 무찌를 수 있게 해주는 자에게
신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인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삼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손재주를 이용해 번개를 만들어 제우스에게 바치고,
제우스는 그에 대한 대가로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맺어 주었다.
하지만 헤파이스토스가 대장간 일을 핑계로 아프로디테와 함께 하지 않고,
더구나 헤파이스토스는 못생겼기 때문에 아프로디테는 전쟁의 남신 아레스와 밀회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지켜본 태양신 아폴론이 헤파이스토스에게 이 사실을 밀고하자,
헤파이스토스는 청동을 가늘게 늘여서 짠 그물을 만들어 아프로디테의 침대에 쳤다.
이것을 모르고 아레스와 밀회를 즐기던 아프로디테는
헤파이스토스를 보자 아레스와 함께 자리를 피하려 하지만
그물에 걸려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여러 신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하였다.
포세이돈이 두 사람을 풀어주라고 설득하자
헤파이스토스는 아레스가 보상을 하겠다는 포세이돈의 보증을 받고 두 사람을 풀어준다.
아테네
디오니소스 극장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 신에게 바쳐진 원형 극장으로
디오니소스 축제 동안 연극이 상연되었던 곳이다.
원래 목조와 흙으로 만들어졌던 건물을 기원전 4세기쯤
돌과 대리석으로 석조 건물로 재건해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스 연극의 발원지인 디오니소스 극장에서는
지금도 매년 연극제전이 열린다.
30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은
아테네 시민들이 모여 회의와 토론을 펼치거나 연극 등을
공연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고대 아테네의 문화공간의 중심이며 연극의 중심지 였던 곳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모든 그리스 고전연극이 이곳에서 초연되었다고 한다.
마리아칼라스와 파바로티도 공연했다고 하며
음향효과가 아주 좋다고 한다.
디오니소스 극장의 무너진 앞부분은 디오니소스신전 터인데
위의 사진은 복원된 디오니소스신전을 나타내고 있다.
디오니소스 극장 귀빈석
17,000명이 앉을 수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의 관람석은
64열로 되어 있는데
맨 앞 열 펜델리 대리석으로 만든 67개의 특별석은
국가의 관리나 유공자, 외국의 귀빈을 위한 것이다.
왼쪽 맨 끝의 사자 발톱장식의 좌석은
디오니소스 신전 사제가 앉는 자리이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바라본
제우스신전
제우스신전
아크로폴리스를 벗어나
아테네 중심부에 위치한 제우스신전은
고트족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어 84개 돌기둥 가운데
현재는 15개만이 남아 있는 코린트 양식의 건축물로 그리스 최대의 신전이다.
제우스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원형은 파르테논 신전의 4배 규모로
규모 면에서 그리스 여느 신전들보다 웅장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과거의 그 융성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많이 파괴되어 있다.
제우스신전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들이 총 46개였다면
제우스 신전의 기둥들은 104개나 되었다.
또한 파르테논의 기둥 높이가 11m인데 비해
제우스 신전의 기둥 높이는 17m나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기둥은 총 104개 중에서 16개뿐이지만
그 장엄하고 웅대한 모습을 추측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제우스신전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이
아주 단순한 형태의 도리아 양식의 기둥을 사용한 데 비해
제우스 신전은 아주 화려한 코린트 양식의 기둥을 사용했다.
이것은 파르테논 신전보다 훨씬 이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제우스 신전은 기원전 515년경에 세워지기 시작하였지만
얼마 되지 않아 중단된 후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가 거의 340년이 지난 후인
기원전 174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원자가 죽자 다시 공사가 중단되어
또다시 300년이 지난 후인
기원후 132년에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완공되었다.
장장 650년간에 걸친 대공사였다.
제우스신전과 하드리아누스의 문
로마의 개선문 형태에 그리스 신전을
얹어 놓은 모양을 하고 있는 하드리아누스의 문은
AD131년 제우스신전을 완성시켜 위상을 높인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제우스신전 동남쪽을 정화하여 아크로폴리스와 대비되는 신시가지를 만들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제우스신전의 북서쪽에 세운 문이다.
하드리아누스의 문
하드리아누스의 문은
하드리아누스가 건설한 새로운 도시,
하드리아누스의 도시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건데
문의 아치에는 2개의 글귀가 쓰여 있다고 한다.
아크로폴리스로 향한 곳에는 "여기는 테세우스의 도시, 아테네"
그리고 제우스신전 쪽은
"여기는 테세우스가 아닌 하드리안의 도시"라고
(* 테세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아테네를 건국한 시조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을 뒤로 하고
이제 아크로폴리스를 내려가고 있다.
올리브 나무는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전역에 널리 자라는 식물이다.
건조하고 메마른 그리스 토양에 잘 맞기 때문에
아크로폴리스 주변에는 올리브 나무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고대 아고라와 아크로폴리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의 중심에 있는 광장
아고라와 아크로폴리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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