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2015년 3월 30일 여행 5일째 월요일
파묵칼레의
아름답고도 신묘한 석회붕과 온천물을 경험하고
이제 신성한 도시라 불렸던 히에라폴리스를
둘러 볼 차례이다.
1시간의 자유시간에 마치 설산과 같았던 석회붕들을 보면서 감탄하고,
온천물에서 잠깐이나마 족욕으로 피로를 풀고는,
혼자서 더 깊숙한 작은 공원까지 갔었다.
거기서 시간을 보고는 원형극장과 신전들을 보기 위해
히에라폴리스 유적지 초원을 가로질러 언덕으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주위에 아무도 없어 정확하게 가고 있는지 몰라 약간 두려웠으나
멀리 있는 언덕을 보면서 방향을 가늠해 가다 보니
원형극장을 보러 가시는 친한 대학동기들끼리 오신 어르신들을 만나게 되었다.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는 시간 안에 한군데라도 더 가 보기 위해
나는 먼저 언덕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왔다.
히에라폴리스 전체 안내판
인구 8만을 자랑하던 내륙 도시인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의 석회암 지대 언덕 위에 세워진 고대도시였다.
기원전 190년경에 페르가몬 왕국의 에우메네스2세가 건국시조인 필레타리우스 왕의 아내 히에라를 기념하려고 세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페르가몬 왕국이 로마의 지배를 받자 로마 시대를 거치며 오랫동안 번성했다.
기원전 130년에 이곳을 정복한 로마인은
이 도시를 성스러운 도시 즉 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히에로스는 신성함을 뜻한다.
① 네크로폴리스(공동묘지) ② 바실리카양식의 로마 목욕탕 ③ 소극장 ④ 프론티누스 게이트(도미티아누스 문)
⑤ 공중 화장실(라트리나) ⑥ 님파이움(북쪽 비잔틴 게이트) ⑦ 아고라 ⑧ 프론티누스 스트리트 ⑨ 님파이움 신전
⑩ 아폴론 신전 ⑪ 원형극장 ⑫ 대욕장(현재는 박물관) ⑬ 김나지움(체육관) ⑭ 남쪽 로만게이트 ⑮ 빌립교회
남문 매표소
먼저 포스팅한 파묵칼레 석회붕을 올릴 때
남쪽 매표소와 남쪽 로만게이트로 들어가는 모습 사진을 올렸는데,
그때는 히에라폴리스 유적지 설명을 안 했기 때문에
이번 유적지 포스팅에서 설명을 할려고 다시 올렸다.
남쪽 로마문에 있는 안내판
남쪽 로만게이트와 성벽 안내판
남쪽 로만게이트와 성벽
이 문을 들어서면
폐허가 된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의 옛 유적과
파묵칼레의 석회붕이 있다.
히에라폴리스 남쪽 로마문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에 이어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번성하였으며,
11세기 후반 셀주크투르크족의 룸셀주크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파묵칼레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지배세력의 변천 속에서도 지속적인 번영을 누려왔던 히에라폴리스이지만
1354년 이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는 폐허가 되었다.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대지진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진 도시를 발견하였고 이후 발굴 및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유적을
동시에 갖춘 이곳은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복합)으로 지정되었다.
남쪽 로마문을 들어서자
멀리 오른쪽으로 원형극장과
왼쪽으로 비잔틴 게이트와 도미티안 게이트가 보인다.
히에라폴리스 중앙에는
바실리카, 님페니움, 아폴론 신전,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 귀중한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원형극장은 기원전 2세기에 최대 1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으며
1200기의 무덤이 남아 있는 거대한 공동묘지도 있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 유적 중에 하나인 이곳에는
지금도 수많은 석관들이 뚜껑이 열리거나 파손된 채 여기저기 널려있다.
테르메라고 하는 온천욕장은
온욕실과 냉욕실은 물론 스팀으로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방,
대규모 운동시설, 호텔과 같은 귀빈실, 완벽한 배수로와 환기장치까지 갖추고 있었다.
자유시간에 시간을 쪼개 급히 올라 갔다 온
원형극장을 줌으로 당겨 찍어 보았다.
기원전 129년에 로마인들에게 점령당한 히에라폴리스는
새로운 통치자들 아래에서 번영했다.
이곳은 아나톨리아인, 마케도니아인, 로마인, 유대인들이 뒤섞여 지내는 국제 도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온천으로 와서 물을 가져갔는데,
이 물은 양모를 씻고 염색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김나지움 위로 열기구가 떠 올라있다.
김나지움 (체육관)
체육관이 있던 곳인데 이처럼 기둥만 남아있다.
도리아식으로 주랑 높이는 5.5m, 길이는 80m로
AD 1세기에 지어졌다.
김나지움
김나지움은 고대 그리스의 체육장이다.
통상 직사각형의 안뜰을 가진 열주랑(콜로네이드)으로 둘러싸이고
그 주변에 많은 방을 가진 파라이스트라(파라에스트라)를 포함,
그밖에 지붕이 있는 실내 경기장과 노천경기장,
탈의실, 도유실, 권투, 구기연습장, 모래사장, 욕실 등을
갖춘 방대한 종합시설이다.
그 옛날의 방대한 시설을 연상케 하는
김나지움의 남아 있는 도리아식 대리석 기둥
히에라 폴리스라는 이름은 신성한 도시라는 뜻이며,
비잔틴시대의 학자 스테파누스에 의하면
이 도시에 세워졌던 수많은 사원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남쪽 로만게이트를
통과하자 거리인 듯 보이는 잔해가 펼쳐져 있다.
혹시나 당시에 가장 번성했다는 거리인
도미티아누스 문과 비잔틴 문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는
프론티누스 스트리트의 연장선에 있었던 도로인가 추측해 본다.
남쪽 출입구 쪽의 히에라폴리스 유적지를 지나
먼저 보게 되는 석회붕쪽으로 가고있다.
이 길의 오른쪽에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는 대욕장이 있다.
대욕장 (지금은 파묵칼레 고고학 박물관)
대욕장은 AD 2세기에 만들어졌으며
지금은 대욕장터를 복원하여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히에라폴리스에서 발굴된 유적들은 대부분 여기에 전시되고 있다.
박물관에는 3개의 전시관이 있는데
2~3세기 로마시대의 석관들과 원형극장 무대 벽의 디오니소스와 아르테미스의 부조,
그리고 이시스상, 아티스상, 데미우르고스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로마 대목욕탕
히에라폴리스에는 욕장이 여러 군데 있는데
이곳이 가장 큰 욕장이어서 대욕장이라 부르는 것 같다.
시간 관계상 파묵칼레 박물관 (대욕장)은
관람하지 못하고 건물만 찍고 스쳐 지나갔다.
파묵칼레의 온천이 있는 곳을 따라
길 밑으로 히에라 폴리스의 성곽이 있었던 흔적들이 보인다.
석회붕에서 잠깐이나마 족욕을 하며 망중한을 즐기다가
자유시간 내로 히에라폴리스를 봐야 하기에
석회붕에서 나와 눈 길 가는 끝에 있던 작은 공원까지 갔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혼자라 약간 두려움을 느끼며
급히 언덕 위에 있던 원형극장을 목표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원형극장을 볼려고 하니
이쪽 길로 갔다 가는 약속 시간에 못 맞출 것 같아
줌으로 댕겨 사진만 찍었는데
나중에 집에 와 자료를 검색하고는 후회했다.
그리고 우리 터키 가이드를 원망했다.
본인이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을 안 해 줄거면 미리 유적 위치와
대략적인 것은 설명해 줘야 하는데
파묵칼레 입구 안내판에서 몇마디 한걸로다 책임을 다하고
석회붕 온천수 안에 다 풀어 놓고는 1시간 뒤에 입구 버스에서
보자고는 온데 간데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이 넓은 히에라폴리스 안에서 여차하면 미아가 될 것 같아
남쪽 입구와 가까운 곳 위주로 봐야겠기에
북쪽 입구와 가까운 1번~8번까지는 못 들어가 보았다.
왼쪽 비잔틴 게이트와 오른쪽 도미티안 게이트
안에는 못 들어가 보고 멀리서 줌을 당겨 찍고는
사진을 편집에서 자르기 해서 만든 사진이다.
도미티안게이트
로마 게이트라고도 불리운 도미티안게이트는
문 윗부분에 새겨진 문구로 보아
1세기 후반에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이 로마에서 아시아 총독으로 보낸
프론티우스가 집정할 당시에 세워졌기 때문에
프론티우스 게이트라고도 불린다.
비잔틴게이트
도미티안게이트 앞에서 주랑과 수로가 있는 도로가 이어지는데
그 도로가 끝나는 곳에 비잔틴 게이트가 있다.
비잔틴게이트는 비잔틴시대인 50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도시가 폐허가 될 때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프론티누스 스트리트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
당시에 가장 번성했던 거리로
도미티아누스 문과 비잔틴 문 사이의
길이 1.2km, 폭 13.5m의 대로이다.
프론티아누스 문 옆에 공중 화장실이 있다.
2000년 전에는 양옆으로 상가가 즐비했으나,
현재는 도로 양편에 로마시대에 세운 기둥들만 남아 있다.
바닥에 넓은 돌이 깔려 있다.
프론티누스 스트리트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
복원된 모습인 프론티누스 스트리트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
여기도 유적지일 것 같아 줌을 끝까지 당겨 찍어 왔더니
왼쪽은 북문쪽의 바실리카 양식의 로마 목욕탕이고
그 옆은 아고라 터 였다.
기둥이 한개 남아 있는 아고라 터 (시장 터)
복원된 모습의 아고라
원형극장을 찿아 가면서
석회붕이 있는 곳을 한번 더 찍어 봤다.
언덕으로 가기 위해 초지를 건너 오면서
봤더니 옆에 온천수가 나오고 있었다.
철책으로 못 들어가게 해 놓았다.
역시 카메라 줌으로 당겨 봤더니
박물관으로 쓰이는 대욕장이 보인다.
이 곳에 오니 관광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시간이 오전 6시 59분이고
약속 시간이 7시 30분이니
기념품점에서 마그네틱 하나 사고 화장실 가는데 10분 잡으면
20분 동안 언덕을 올라가서 원형극장과 신전을 보고
버스 정류소로 내려가야 한다.
오늘도 어김 없이 시간 계산을 하고 보폭 속도를 결정하는 순간이다.
님파이움 신전
님파이움 신전 안내판
님파이움이라는 이름은 원래 님프가 사는 곳으로 전해오는,
샘과 시내가 있는 천연굴을 가리켰지만
나중에는 인공동굴이나 나무, 꽃, 조각, 분수, 그림이 있는 건물을 뜻하게 되었으며
은신처, 저수지, 결혼식이 열리는 집회실로 쓰였다.
로마시대에 흔히 볼 수 있던
원형 건축물 님파이움은 고대 로마에서는 님파이움이 매춘굴을 뜻하기도 했고
그리스도교 바실리카의 안마당에 있는 분수를 뜻하기도 했다.
16세기에 이르러 님파이움은 이탈리아 정원의 특징이 되었다.
독특한 님파이움 정원은 깨끗한 물, 즉 샘을 연상하게 했으며
샘은 로마의 빌라 기울리아 건물처럼
보통 정식 건물 안에 있으나 천연동굴이나 반천연 동굴에 있는 경우도 있다.
3세기에 세워진 님파이움 신전이다.
님파이움은 물의 요정인 님프에게 바친 신전을 말한다.
그래서 분수대 혹은 샘의 역할을 겸한다.
님파이움 신전
암석과 연결된 높이 2m의 연단위에 세워진 신전의 앞부분은 연단 쪽에,
뒷부분은 암석위에 만들어졌다.
신전은 높이 18미터에 넓이 15미터의 비교적 작은 건축물로
성상 안치소인 셀라와 그곳으로 이어지는 내부 현관인
포디움으로 구성되어 있다.
님파이움 신전 바로 뒤쪽에는
18*13.5m 크기의 아폴론신전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폐허 건물은 AD 3세기경에 세워졌지만
기초는 유메네스 2세 치세인 BC 2세기에 세운 아폴론 신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신전 건물에 쓰인 자재들은 그 이전의 건물 잔해를 이용한 것들이 많다.
히에라폴리스에는 아폴론과 하데스외에도
키벨레와 포세이돈 그리고 아폴론의 어머니 레토와 같은
소아시아 출신의 신들을 많이 섬겼다.
아폴론 신전
아폴론 신전은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에게 바쳐진
유독가스(일산화탄소)를 분출하는 플루토니움이라고 불리는
동굴신전 구멍 위에 지어졌는데
신관들은 이 구멍에 몇 분동안 들어 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면서기체를 마시고 난 후 환각상태에서 아폴론의 신탁을 전했다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동굴이 하데스의 왕국 즉 지하세계로 통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오늘날 현지인들은 귀신의 집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동굴 속에서 나오는 유독 가스(일산화탄소)로 인해
안으로 들어가는 생물체는 바로 죽고 말기 때문이다.
토대만 남은 아폴로 신전
이 시기에 살았던 많은 작가들이
'플루토니움'이라고 알려진 신기한 현상에 관해 글을 썼다고 한다.
스트라보라고 하는 이는
플루토니움의 갈라진 틈으로 사람 한명이 들어가기에 충분했다.
내부는 아주 깊었고, 울타리로 막아 놓은 약 20m 넓이의 내부 공간에는
아무것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운무가 싸여있다.
울타리 밖의 외부공기는 아주 깨끗해서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가까이 접근할 수도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생물체는 바로 죽고 만다.
아주 큰 동물이라도 플루토니움의 갈라진 틈으로 들어갔다 하면 바로 쓰러져 시체가 되어 버린다.
실험을 하기 위해 새 몇마리를 안으로 날려 보냈는데 새들은 들어가자마자 바로
시체가 되어 땅에 떨어져 버렸다.
그안에 들어가 잠깐동안이나마 버틸 수 있었던 사람들은
키벨레 여신을 모시는 사제들 뿐이었다. 라고 기록했다.
위에서 본 아폴로 신전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
흙속에 거의 묻혀 있던 남쪽 폐허를 발굴하면서 가장 처음 발견된 것이
신전 뒤에 위치한 갈라진 틈이 있는 플루토니움이었다고 한다.
플루토니움 안에는 크기가 3미터에 달하는 방이 하나 있고,
그 뒤의 갈라진 틈으로부터 넓이 1미터의 빠르게 흐르는 냇물에서
강한 독가스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폴론 신전 발굴 당시에
새어 나오는 독가스로 인하여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복원된 모습의 아폴로 신전
5세기에 이곳에 왔던 아스클레피오스는 헝겊으로 코와 귀를 막고
온천물의 수원지를 찾아 물이 흐르는 역 방향으로 들어갔으나
물이 갑자기 깊어지는 바람에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었다.
후에 이곳에 신전이 세워졌고
플루토니움은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형극장이 있는 언덕
이제야 극장을 보기위해 가는 일행을 볼 수 있어 기뻤다.
오래 전 친한 대학동기끼리 여행오신 어르신들이다.
원형극장 안내판
히에라폴리스의 한 쪽에는
로마시대에 건설된 커다란 야외극장이 있다.
이 대극장은 당시의 수용인원이 1만 2천명을 헤아리는
당시로서는 초대형의 극장이었으며,
공기를 넣은 수백 개의 항아리들로 객석의 꼭대기 부분을 장식함으로서
무대에서 발생하는 각종 소리가 생생하게 반향 될 수 있도록
완벽한 음향시설을 갖추고 있어
그 옛날 이곳 히에라폴리스가 온천 휴양지로서 얼마나
대단한 수준과 인기를 누렸는가를 무언으로 웅변하고 있다.
원형극장
발굴에 참여했던 이탈리아 고고학자들에 의해
최근에 복원되었다.
아나톨리아(소아시아)에서 가장 볼 만한 극장으로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극장 앞의 넓은 공터에
수많은 대리석 조각들에 새겨진 극장과 관련된
마스크 부조와 기타 장식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히에라폴리스 원형극장
고대도시의 원형극장의 모습으로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극장의 건축은 2세기초에 하드리안 황제의 명으로 시작되었으나,
관객석과 무대 등은 100여년이 지난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통치 시기인
3세기경 AD 193~211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 된다.
발굴 당시 극장에 있었던 많은 아름답고 예술적인 부조물들은
지금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로마 목욕탕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고 한다.
12,000명을 수용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도시의 재정적인 문제로 이전에 있었던 헬레니즘 시대의 극장에서 운반된 석재로 만들었다고 한다. 객석의 중간 쯤에는 반원 모양의 귀빈석이 있고 오케스트라의 객석은 높이 1.83m의 벽으로 분리되어 있다. 객석과 오케스트라를 분리한 것은 검투사끼리의 경기나 맹수와 검투사가 싸울 때 관객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디오니소스와 아르테미스의 조각상
무대의 벽에는 디오니소스와 아르테미스의 부조가 있는데
이들의 머리는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고 하며
발견된 조각들은 대부분 로마 목욕탕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디오니소스와 아르테미스의 부조의 진품은 고고학 박물관에 있고
이 곳에 세워져 있는 조각상은 모조품이라 한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여신에게 바치는
의식과 희생 제물을 묘사한
멋진 프리즈로 장식되어 있다.
VIP를 위한 좌석 앞 부분과 무대가
그대로 남아있다.
원형극장은
지금도 여름 축제 때 연극이나 음악회가 열린다.
여행사 카탈로그에서 퍼 온 사진
언덕의 경사면을 이용한 그레코로만 양식과
둥근 볼트형 지붕과 아치 등
전형적인 고대 로마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복원된 모습의 원형극장
원형극장 안내판
사도 빌립 기념교회
원형극장을 내려 오면서
원형극장 뒤편 산 중턱을 찍은 사진이
운좋게도 사도 빌립의 기념교회가 있던 유적지이다.
사도 빌립이 이 기념교회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 추측은 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수 없다고 한다.
사도 빌립 기념교회 유적지
히에라폴리스를 기독교로 개종시킨 사도 빌립은
87년경에 제 2의 네로황제라 불리는
도미티아누스황제에 의해 이곳에서 십자가형을 당했다.
사도 빌립이 십자가에 순교한 후에는 그의 아들이 선교활동을 계속했다고 한다.
사도 빌립을 기념하기 위해 5세기 전반에 세운
사도 빌립의 순교를 추모하는 교회다.
사도 빌립의 노력으로
기독교 사회와 기독교 초기 교회중의 하나가
최초로 이곳에 세워졌다.
사도 빌립 순교기념당의 현재 모습
사도 빌립(Philip the apostle)
갈릴리 호수 근방 벳새다 출신(요 12:21).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 안드레와 함께 세례 요한의 제자로 추정된다(요 1:44).
나다나엘을 주님께로 인도했다(요 1:45-49).
오병이어의 이적에서 보듯이 이성적이고 계산이 빠른 반면
소심하고 소극적인 성품을 가졌다(요 6:5).
예수님의 부활을 친히 목격하고(고전 15:5)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았다(행 1:13).
말년에 소아시아의 브루기아에서 사역하다 히에라볼리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복원된 모습의 사도 빌립 순교기념당
사도 빌립이 십자가에 순교한 이후
세월이 흘러 종교의 자유는 보장이 되었고
로마제국에서도 그리스도교가 장려되었다.
그 시기 즈음에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빌립을 묻었으며
그를 기리기 위한 교회가 지어졌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도록
빠른 걸음으로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다시 대욕장( 지금은 박물관)을 지난다.
히에라폴리스의 공중목욕탕은 여러 칸으로 나뉘어 있는데,
온천물에 몸을 푹 담글 수 있도록 된
커다란 욕조와 스팀으로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방,
그리고 노예로 하여금 때를 밀게 했던 방,
목욕 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방과 심지어 여자들과 즐기기 위한 유곽도 있었다.
당시에는 비누가 발명되기 전이었으므로
때를 밀 때는 석회 가루를 재와 섞어 사용했다고 한다.
완벽한 배수로와 환기장치는 물론, 온천물과 찬물을 적절히 이용한 냉난방의 공조 시스템과,
휴식과 치료를 위한 나무랄 데 없는 병실의 구조와 호텔과 같은 귀빈실 등,
이미 2천여 년 전에 요즈음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러한 완벽한 시설의 온천장이 있었다.
이곳은 애초부터 일반적인 사우나를 위한 목욕탕이 아니라
온천물을 이용한 질병의 치료를 위해 특별히 설계된 휴양지였기 때문에,
옛날에는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피부병 치료를 위해 찾아오는 것이 상당수였지만
심각한 정신질환과 심지어는 임포텐스의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게 되면서부터
터키 전역은 물론 그리스나 로마, 혹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부터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어 며칠 혹은 몇 년을 이곳에 묵으며 치료했다고 한다.
히에라폴리스 유적 풀장
고대로마의 히에라폴리스 유적의 돌을 모아 만든
노천 온천 성스러운 유적 풀장이다.
현대식 건물이면서도 고대의 모습을 닮은 건물안으로 들어가면
온천물이 흘러 내려와
수영도 즐길 수 있는 신성한 온천 수원지를 만날 수 있다.
로마시대때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도 이 곳을 다녀갔다는데,
그래서 클레오파트라 풀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입장료는 없는데 수영을 하게 되면 23리라를 내야한다.
유적 풀장의 뒷쪽으로 님파이움 신전이 보인다.
이 유적 풀장은 고대도시의 중심거리 위에 고여 있는 온천수를
그대로 이용하여 폐허가 된 유적지에 온천물을 담아
언덕 위에 온천 수영장을 만들어 파묵칼레의 또 다른 관광지가 되었는데,
히에라폴리스의 옛 목욕탕이 지금 이 곳에 재현되어 있다.
풀장 바닥은 로마시대의 포석과 신전의 대리석 기둥이 깔려있고,
주변은 카페처럼 꾸며져 있다.
성벽 건축 모습을 알리는 안내판
다시 남문 로만게이트를 통해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나갔다.
히에라폴리스의 성벽 바깥 북쪽 출입구 쪽에는
공동묘지로 쓰였던 죽은자의 도시라는 네크로폴리스가 자리하고 있다.
1,000여 개의 석관이 남아 있는 고대 공동묘지는
헬레니즘 시대부터 비잔틴 시대까지 조성되었는데,
터키에서 가장 큰 규모로 목욕탕과 어울려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곳 히에라폴리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마치고 돌아갔지만
중병을 앓던 사람들은 상당수가 이곳에서 사망하게 되었고
그 숫자도 나날이 늘어가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처음에는 아크로폴리스와 멀리 떨어져 있던 공동묘지가
늘어나는 사망자의 숫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확장되면서
북쪽 출입구쪽에 있는 목욕탕과 공동묘지가 붙게 되었다.
다시 돌아 온 남문매표소
주차장으로 나오니 외국인 가이드가
외국팀에게 설명을 해 주고 있다.
급히 화장실 갔다가 파묵칼레 마그네틱을 구입하고
시간을 보니 7시 29분이다.
버스까지 뛰어 갔더니
몇 분이 아직 안오셔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탈리아로 떠나기 전에
파묵칼레 목화로 만든 면제품과 명품할인점에 들렸는데
이 곳은 그 앞에 있던 가게이다.
명품할인점에서 먼저 나와
여기서 석류쥬스를 3유로 50센트에 사서 마셨다.
직접 짜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상이 너무 좋은 터키소년이다.
착즙 과정을 거쳐 드디어 나온 생 석류쥬스
터키에 와서 시간이 있고 가게가 있다면
무조건 석류쥬스를 사 먹으리라 마음먹고 왔기 때문인지
명품할인매점에서 조금 둘러보고는 곧장 이 가게로 왔다.
그리고 한 잔의 석류쥬스를 앞에 두고 앉았다.
정말 맛있는 석류쥬스다.
인공이 1%도 섞이지 않은 100% 천연 석류쥬스
또 먹고싶다.
유럽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터키의 휴양도시인
안탈리아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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