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탄 아흐메드 사원 (블루 모스크),히포드롬
그리스, 터키 여행 8일째 2015년 4월2일 목요일
나는 학창시절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항상 어떤 동경을 품고 상상의 날개를 달고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오스만의 도시로 가는 꿈을 꾸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로마 제국인 비잔틴과 오스만제국,
두 제국의 수도로서 1600년간 세계의 중심을 이루었던 도시를
그리스, 터키 여행 마지막날인 오늘
동양과 서양이 어울러져 있는 이스탄불 시내를 둘러 볼 예정이다.
아침 출근길의 러시 아워에 안 걸리려고
새벽에 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호텔이 워낙 외곽에 있다보니
이스탄불 시내로 들어 오는데 2시간 가까이 걸렸다.
198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스탄불 역사지구는
북쪽으로는 자연 항구인 골든혼, 동쪽으로는 보스포루스 해협,
남쪽으로는 마르마라해에 둘러싸인 반도다.
기원전 7세기 중엽에는
그리스인의 식민 도시가 세워져 비잔티움이라고 하였다.
그 후 로마의 속주가 되었고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했다.
이후 비잔틴 제국의 수도가 되어 동방 정교회의 기지,
비잔틴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하였고 동서 문화의 교류에 큰 역할을 하였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이곳을 함락하고 이스탄불이라고 개칭하였다.
이스탄불이 이슬람 교도가 많은 도시를 뜻한다는
설도 있으나 분명하지는 않다.
이스탄불은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되어
이슬람 세계의 정치·경제·문화의 최대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19세기 후반 발칸 문제를 둘러싼 열강의 분쟁지가 되었으며,
1923년 10월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자 수도의 지위는 앙카라로 옮겨갔다.
하지만 여전히 이스탄불은 터키의 중심지로 번영하고 있다.
아흐메드 사원, 술레이만 사원, 성소피아 성당 등 역사적 유적이 많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하늘에서 본 블루 모스크
터키의 옛 수도 이스탄불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인 유적이 가득하다.
고대 오리엔트 문명과 그리스·로마 문화,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었던 만큼 초기 기독교 문화와 비잔틴 문화가 가득하며,
여기에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문화까지 더해져
한 도시 안에 다양한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술탄 아흐메드 사원 (블루 모스크)이 보인다.
보스포러스 해협에 의해
갈라지는 유럽과 아시아 두 지역 가운데
이스탄불 유럽은 다시 골든 혼을 중심으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구분된다.
특히 구시가지는 유럽과 아시아, 두 문명의 향기가
짙게 또 조화롭게 서려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성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가 있다.
이 문을 통과하면 술탄 아흐메드 사원이다.
블루 모스크의 복합건물
술탄아흐메드 자미(모스크) 옆에는
모스크, 무덤, 분수대, 신학을 공부하는 서원,
헬스센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주방, 상점, 목욕탕,
순례자들을 위한 렌탈룸, 창고 등의 역할을 하는
건물들로 구성이 된 큘리예라고 하는 복합건물이 딸려있고,
이를 통해 모든 것이 사원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블루모스크)
터키에서 가장 중요한 이슬람 사원이며,
또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보통 이슬람 사원은 4개의 미나렛(첨탑)을 가지고 있으나
블루 모스크는 6개의 미나렛을 가지고 있다.
그 당시에는 미나렛의 높이와 갯수는
술탄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고 한다.
모스크는 이슬람교의 기도하는 사원을 이르는 말이다.
이스탄불의 구시가지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다.
그 중 첫 번째로 방문 한 곳은 첨탑이 6개 있는
블루모스크라 불리는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이다.
술탄 아흐메드 사원(블루모스크)은
아야소피아 사원에 대적하기 위해 1609~1616년에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드 1세가 건축하였으며,
거대한 돔 주위에 6개의 첨탑과 4개의 부속 돔에
기둥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우뚝 서 있는 첨탑 6개는 술탄의 권력을 상징하며,
이슬람교도가 지키는 1일 5회의 기도를 뜻하기도 한다.
아야 소피아박물관에서 바라 본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아야 소피아 성당의 바로 맞은편에 있다.
블루 모스크는
규모면에서 터키 최대의 것으로,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17세기에 세워진 건물로,
메카의 사원과 맞먹을 만큼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1609년 당시 술탄 아흐메드 1세는
성 소피아 성당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우위를 상징하기 위해
성 소피아 성당을 넘어서는 사원을 짓고 싶었다.
그의 비원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미마르 시난의 제자 메흐메드 아가에 의해 성취됐는데,
규모가 규모니만큼 8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소요됐다.
모스크의 완성 이후 이곳은 제국의 술탄들이
종교적인 선언을 하는 곳이자
메카로 향하는 성지순례의 출발지가 되었다.
술탄 아흐메드는 블루모스크 낙성식 때
“유스티니아누스여, 내가 이겼다”고 외쳤다지만
오늘날 두 사원의 평가는 외관의 웅장함은 돋보이지만
건축학적으로는 소피아 대성당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한다.
천장 돔까지의 높이가 블루 모스크는 43m이고 소피아 대성당은 56m,
돔의 지름은 블루 모스크가 23.5m 소피아 대성당은 36m이다.
여행사 홈피에서
6개의 미나렛(첨탑) 위치
직경 23.5m, 높이 43m의 거대한 중앙 돔을
4개의 중간크기 돔과 30개의 작은 돔들이 에워싸고 있고,
사진에는 미나렛 2개가 안 나와 있지만
모두 6개의 첨탑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모스크 돔 위에는 황금색 장식을 달았고,
맨 꼭대기에 있는 초승달 문양은
이슬람의 상징이자 진리의 상징이라 한다.
이스탄불의 3,000여개 모스크는 같은 시간에 동시에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인 아잔이 울리는데
이 아잔은 모스크 미나렛(첨탑)에 달려있는
확성기에서 나온다.
미나렛에 부착되어 있는 확성기들
블루모스크의 5번째 미나렛
첨탑의 기능은 모스크의 위치를 알려주고
사람이 첨탑에 올라가서 코란을 외우는 소리로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미나렛의 개수는 그 사원의 권력의 크기에 비례하며
개수가 6개인 곳은 이곳 뿐으로
7개인 메카의 사우디아라비아 카바신전을 빼고는 가장 많으며,
규모 면에서는 세계에서 제일 큰 회교사원이다.
블루모스크의 6번째 미나렛
왕의 명령으로 세운 사원도
첨탑은 4개만 세우는 것이 원칙인데
첨탑이 6개인 경우는 블루모스크가 유일하다.
그당시 재정상태를 고려한 신하들이 발음이 유사한
"황금(알튼)으로 장식하라"는 명령을 "6개(알트)로 장식하라"는
말로 들었다고 입을 맞춘 신하들로 인해
금 첨탑이 아닌 첨탑 6개가 되었다고 한다.
왕은 이 건물의 아름다움이 마음에 들어 넘어 갔지만,
기존에 첨탑이 6개인 이슬람 사원은
오로지 이슬람의 성지 메카에 있는 알라의 성전만 가능한 것인데
졸지에 메카에 도전한 것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리자
메카의 사원에 첨탑 1개를 더 세워주었다고 한다.
블루모스크에는 모두 5개의 문이 있는데,
이 중 안쪽 정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3개다.
술탄아흐메드 모스크
내부가 푸른색의 이즈니크 타일로 장식되어
외국 관광객에게는 블루모스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슬람 신자만 정문으로 입장하고
관광객은 옆문으로 입장할 수 있다.
블루 모스크 옆 모습
아래는 발을 씻는 곳이 있는데 신자들은 발과 손을 씻은 후
3차례 입과 귀를 씻고 난 후에 들어간다 했다.
신을 만나기전 부정한것을 씻어 낸다는 의미로
자신이 했던 상스러운 말들과
유혹들을 씻어내기 위한 것이라 한다.
복장 점검 푯말
블루모스크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 나눠주는 비닐봉투에 신발을 벗어 담고,
여자들은 머리를 가릴 수 있는 머플러를 빌려주는데
그것을 쓰야 입장 할 수 있다.
방문객들을 위해 예배시간도 표시해 놓았는데
기도시간 외에는 입장할 수 있다.
입구
모스크라는 말은 ‘꿇어 엎드려 경배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아랍어 마스지드가 영어로 변형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이슬람 신자들이
모여 예배드리는 장소가 모스크이다.
무슬림들은 기도를 하루에 다섯번 한다.
일출전, 오전, 오후, 일몰때, 자기전인데 순니파가 이렇고,
시아파는 3번할 수 있다고 한다.
기도할 때 만큼은 적대적이라해도 서로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한다.
바닥에는 메카 방향을 향해
기하학적인 튤립 문양(이것을 아라베스크무늬라 한다)을 새긴
기도용 카펫인 셋자데가 깔려 있다.
한 사람이 엎드려 절을 할 수 있을 정도 크기의
직사각형으로 구획정리가 잘된 자주색 카펫이다.
기도를 할 때는 카펫의 빨간색 줄무늬에 맞추어 앉아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그래야 기도의 힘이 더 세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터키의 특산품인 카펫은 손으로 짜고,
2중 매듭이어서 500년이 지나도 올이 풀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모스크 내부의 벽과 돔에
약 2만2000여장의 흰색과 푸른빛을 띠는
아름다운 이슬람 문양이 그려진 이즈니크 타일들이 붙여져 있어,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의 유래를 알 수 있다.
푸른빛을 띠는
아름다운 이슬람 문양이 그려진 이즈니크 타일들에
260개의 푸른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쏟아지는 햇살과
수 많은 오일램프 불빛들이 반사되는 것을 보니
이슬람 사원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벽면과 천장 가득
이즈니크에서 생산된 흰색과 푸른 빛을 띠는 타일들이
이슬람적인 기하학적인 꽃 문양과 어울리면서
수많은 오일램프의 빛을 받아
푸른 빛이 더 푸르고 아름답게 보인다.
이것이 본명인 술탄 아흐멧 모스크라는 이름 대신
블루모스크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된 이유이다.
아라베스크 문양의 천정모자이크이다.
실제로 보면 더 아름답고 대단하다.
이슬람 사원은 내부에 신상이나 성화가 없는데
이는 우상이라하여 금지한다고 한다.
블루모스크란 애칭으로 불리게 만든
벽면의 흰색과 푸른색의 타일
이즈니크에서 생산된
22,000여개의 수제 이즈니크 타일은
백합, 포도나무, 카네이션 등 다양한 식물을
모티브로 했다.
블루모스크의 조명은 건축시 수입된
크리스탈 오일램프라고 한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다.
기도하는 곳은
남자와 여자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미흐랍 (중앙)
예배 중 모든 이들이 바라보는 메카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
대개는 다양한 장식과 치장으로 이루어진
미흐랍이라는 아치형 벽감이다.
규모가 매우 큰 사원들에는 1개 이상의
미흐랍이 있을 수도 있다.
민바르 (설교대)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이맘(성직자)의 밈바르(설교단)에는
아라베스크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큰 규모의 사원에서는
미흐랍 오른편에 연단인 민바르가 위치해 있는데,
이 곳에서 이맘(성직자)의 금요 훈계나 집단 예배시 설교가 이루어진다.
미흐랍,민바르,미나렛이 모스크를 구성하는 3대 요소이다.
다시 들어왔던 곳으로 나간다.
이슬람 건축양식의 하나인
말발굽장식이라 불리는 무대하리 장식이다.
이슬람교도들의 주일은 금요일이고 음력을 사용한다.
안쪽 정원에는
6개의 기둥이 6각형으로 지붕을 받치고 있는
샤르드반이라는 분수대가 있다.
안뜰에는 26개의 화강암 기둥과
30개의 작은 돔이 얹혀있는 회랑으로 둘러져 있다.
샤르드반 분수대
샤르드반 분수대와 블루모스크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
블루모스크 정문
이슬람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종유석이나 벌집처럼 층을 이루는 형태의 벽감 장식인
무카르나스 양식이 사용되어 있다.
바깥 정원에서 바라본 블루모스크 정문
블루모스크 내에는 양탄자 박물관과
대규모 욕장(하세키 휴렘 하마므) 등이 있다고 하는데
페키지관광이라 시간상 관람하지 못했다.
블루모스크 입구문
히포드롬과 맞닿아 있는 입구문을 통과해서
히포드롬으로 나왔다.
정문에 있는 저 쇠사슬 때문에
술탄일지라도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하며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는 술탄이라고 해도 알라 앞에 나갈때는 겸손하고
신성에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라 한다.
히포드롬 광장
히포는 말, 드롬은 경주장을 뜻하는 히포드롬 광장의
정식명칭은 술탄아흐메드 광장이다.
블루모스크 서쪽 광장인 히포드롬은 196년
로마의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에 의해 만들어진
고대 검투경마장으로 콘스탄티누스 시절에는 검투경기 대신
이곳에서 말이 끄는 전차 경기가 펼쳐졌다.
그 당시 14Km의 길이와 10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히포드롬 광장
술탄아흐메드 사원 바로 앞에 있는 광장으로
로마시대 대경기장 유적이다.
서기 203년 이곳에서 마차경주가 최초로 열렸다고 하며
당시에는 세계의 각 지역에서 가져온 기둥, 조각상, 오벨리스크 등이
이곳에서 전시되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스탄불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으로 변신한
히포드롬 광장에서는 유서 깊은 기둥 3개를 볼 수 있는데
479년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들여온 뱀 머리의 오벨리스크,
940년 콘스탄티누스 7세가 만든 콘스탄티누스 오벨리스크,
이집트에서 실어 온 이집트 오벨리스크이다.
히포드롬 광장은
오스만 투르크가 이스탄불을 점령해 수도로 삼으면서,
전차 경주에 관심이 없었던 그들로 인해 버려지게 되었다.
로마시대의 훌륭한 건축물 히포드롬의
건축 자재들을 해체해 기둥과 바닥의 벽돌 등을
블루 모스크를 짓는데 사용했다.
히포드롬 광장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인 532년,
황제에 대한 불만으로 ‘니카의 난’이 일어났을 때
폭도들을 진압하고 처형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고,
오스만 시대에는 술탄의 친위대인예니체리가 몰살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니카의 반란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황비인
데오도라(이집트 출신의 댄서) 때문에 생긴 반란이다.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그녀를 황후로 삼았다.
그러나 그녀가 천민 출신이라는 것과
이집트에서는 그리스도의 단성론을 믿는다는 것을 빌미로
히포드롬에서 대규모의 반란이 일어났다.
처음 반란군의 기세에 눌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난을 피해 콘스탄티노플을 떠나려 했으나 그를 데오도라가 저지했다.
다음 순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히포드롬에서 농성하는
반란군을 단숨에 진압하고 처형했다.
예니체리는 술탄의 근위병,친위대로
결혼과 재산축적등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고,
기독교국가의 소년들을 개종시키고 교육시켜서 죽음도
불사하는 이슬람의 전사로 만들었다.
술탄 근처에 있다보니 부정과 비리가 만연하여 나중에 해산되었고,
해산에 저항하다가 히포드럼에서 몰살되었다.
이집트 오벨리스크 (테오도시우스의 오벨리스크)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투트모스 3세가
카르나크 아몬 신전의 제 7탑문 앞에 세운 오벨리스크이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2세( 337-361 재위)가
357년에 알렉산드리아로 오벨리스크를 옮겼으며,
390년에 테오도시우스 1세가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천 마리나 되는 양들을 잡아서 내장을 빼낸 후
그 속에 바람을 불어 넣어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싣고 왔다.
이집트 오벨리스크에는
3,500년 전의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으며
비잔틴 양식의 받침대 위에 있다.
아스완에서 생산되는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이집트 오벨리스크
이집트 오벨리스크의 높이는 본래
하단부를 포함해 30m였으나
일부가 파손되어 현재는 25.6m이다.
오벨리스크의 4면에는 각각 투트모스 3세가
B.C.1450년에 유프라테스강 유역을 점령한 것을
기리는 내용이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다.
광장 북쪽에 있는 이집트 오벨리스크의 기단에는
경기를 관전하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오벨리스크 건립에 관한 비문도 쓰여있다.
경마를 관전하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모습뿐 아니라
그 당시의 전차 경기를 관람하는 귀족들의 모습과
경기와 관련된 내용들이 부조되어 있고,
귀족들의 치적들이 새겨져 있다.
이집트의 카르나크 신전터에는
네 개의 오벨리스크가 있었는데 이 곳에 하나,
그리고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프랑스의 퐁피두 광장에 하나씩 있으며
정작 이집트에는 미완성의 오벨리스크 하나만 있다고 한다.
광장 중앙 부분에 있는
청동뱀 기둥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판이다.
광장 한가운데는
큰 뱀들이 서로 엉켜 있는 청동 기둥이 서 있다.
청동뱀 기둥
원래는 뱀 세마리가 서로 뒤엉켜
황금그릇을 받치는 모양이었는데
현재는 상당부분 파손되어 몸통만 남아있는 상태다.
뱀 기둥은 479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 델포이 아폴론 신전에서 가져온 것으로
영화 300에 나왔던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와 그리스 전투에서
그리스인이 페르시아인을 무찌른 기념으로
그리스인들이 제작한 전승기념비다.
청동뱀 기둥
3마리 뱀모양의 청동기둥으로
기둥 꼭대기에 3개의 뱀머리와 황금그릇이 있었지만
4차 십자군원정때의 약탈로 황금그릇이 없어졌고,
그 이후 오스만 제국의 정복 후
3개의 머리도 차례대로 사라졌는데,
현재 2개는 각각 박물관에 있고 한개는 아직 못 찾았다고 한다.
콘스탄틴 (콘스탄티누스) 오벨리스크
콘스탄틴 오벨리스크는 높이는 32m이며,
거칠게 깎은 벽돌 모양의 돌을 쌓아 올려 세운 것이다.
정확한 건축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약 4세기 경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869년에 지진으로 꼭대기가 일부 무너진 뒤
콘스탄티누스 7세가 보수했다.
당시에는 콘스탄티누스 7세의 조부인
바실 1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황금빛 청동으로 표면을 장식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청동 장식은 제 4차 십자군 원정 때인
1204년에 십자군들이 동전을 만들기 위해 가져가면서
유실되어 현대에 복원한 것이다.
히포드롬 광장은
영화 ‘벤허’의 전차 경주 장면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비잔틴제국의
중요한 국가행사가 히포드롬에서 개최되었다.
카이저 빌헬름 분수
광장 북쪽 끝에는
독일 황제 카이저 빌헬름 2세가 이스탄불을 방문한 뒤
오스만투르크 제국 술탄 압둘하미드 2세의 환대에 대한 보답으로
독일에서 제작하여 오리엔탈 특급 열차로
이스탄불까지 운반하여 선물한 분수대가 있다.
분수는 전반적으로 신 비잔틴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8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이루어진 8각형 망루 형태를 하고 있다.
각각의 모서리에는 독일과 오스만투르크 간의 동맹을 상징하고자
양국 지도자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석조 장식이 달려있다.
천정에는 내부를 금을 이용하여
화려하게 모자이크로 장식한 돔이 덮여있다.
돔 외부는 본래 청동 원반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현재 원반은 도난 당한 상태이다.
블루 모스크 야경 (여행사 홈피에서 퍼 온 사진)
은은한 조명이 블루모스크를
아름답게 감싸고 있다.
[참고: 네이버 백과, 네이버 캐스트, 두산백과, 저스트 고]
'터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키 이스탄불] 토프카프( 톱카프, 톱카피)궁전 (0) | 2015.08.27 |
---|---|
[터키 이스탄불] 성 소피아 박물관, 아야소피아, 하기아소피아 (0) | 2015.08.25 |
[터키 이스탄불] 그랜드바자르 (0) | 2015.08.14 |
[터키] 카파도키아에서의 식사 (0) | 2015.08.12 |
[터키 카파도키아] 벌룬 경치, 우치히사르, 피죤 밸리, 괴레메 파노라마 (0) | 2015.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