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 플랫아이언 빌딩, 월가 황소상, 뉴욕 증권 거래소, 자유의 여신상

푸른 바다. 2016. 5. 13. 11:17

뉴욕 월가 황소상, 브루클린 다리, 자유의 여신상

 

 

 

 

 

 

 

2015년 10월 21일 수요일 여행 열 나흘째

 

어느듯 오늘이 이번 여행에서

페키지로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날로는 마지막 날이다.

아침 일찍 뉴저지에서 맨해튼으로 들어와

차창으로 플랫아이언 빌딩과 조우하고는 월가에 내려서,

뉴욕 증권 거래소와 황소상 가까이에 서서

그 유명한 월가에 서 있다는 감격을 맘껏 누렸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미국 최초의 교회이자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인 트리니티 교회를 

일정상 시간이 없어 아쉽지만

입구 골목에서 살짝 눈 도장을 찍고는

리버티 섬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았다.

 

 

 

 

 

뉴욕은  맨해튼, 브루클린, 퀸스, 브롱크스,

스태튼아일랜드와 같은 다섯 개의 자치구로 나뉘어 있다.

 이 자치구들은 각각 독립되어 있었다가 1898년 뉴욕에 합병되었다.

뉴욕은 미국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이다.

 800개가 넘는 언어가 사용되며,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뉴욕은

1624년 네덜란드 공화국의 이주민들이 무역항으로 설립하였고,

 1626년 네덜란드인들이 뉴암스테르담이라는 지명을 붙였다.

 1664년에는 영국인들이 강제 점령해 도시와 그 주변 지역을 통치했고,

찰스 2세가 동생 요크 공에게 땅을 주면서 뉴욕이라고 불리기 시작하였다.

 뉴욕은 1789년부터 1791년까지 미국의 공식적인 수도였다.

 1790년부터는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로 성장했다.

이후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수 백만의 이민자들이 배를 타고 뉴욕으로 이주해 왔다.

 

 

 

 

맨해튼으로 들어왔다.

차창 밖으로 그 유명한

플랫아이언 (다리미)빌딩이 보인다.

 

 

 

 

플랫아이언 빌딩 (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

 

23번가와 브로드웨이,

5번가가 교차하는 삼각지대에 있는 21층 건물로

건축가 데이비드 번 햄에 의해 설계되었다.

 이 건물은 철제골조를 사용한 최초의 건물로

다리미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플랫아이런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쪽 면이 2m 정도인 곳도 있어 당시의 사람들은

건물이 바람에 곧 무너질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으나

1902년 완공 이후 9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자리에 굳건히 버티고 서 있다.

 

 

 

 

도심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들이 조성되어 있다.

 

 

 

 

뉴욕은 미국 최대의 도시로서

상업, 금융, 무역의 중심지이자

미국의 경제적 수도라 불리는 곳이다,

 

 

 

 

많은 대학, 연구소, 박물관, 극장, 영화관 등

 미국 문화의 중요한 위치를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센트랄파크,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록펠러센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자유의 여신상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수많은 관광지들이 있다.

 

 

 

 

드디어 세계 경제, 문화의 중심인

뉴욕 맨해튼을 걷고 있다.

 

 

 

 

월스트리트(Wall Street)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월스트리트에 섰다.

 

 뉴욕에서 가장 중요한 거리인,

 세계 경제와 비즈니스의 중심이라는 것과

같은 뜻으로 여겨지는 월스트리트라는 이름은

 맨해튼을 위협하는 적군과 인디언들로부터

맨해튼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벽(wall)에서 따온 것이다.

 

 

 

 

 청동 황소 조각

 

 월가의 상징인 황소 동상이 있는

 볼링 그린파크(Bowling Greenpark)에 왔다.

 식민지 시대에 이곳 잔디밭에서 볼링 시합이 많이 열려

볼링 그린파크로 불린다고 한다.

 

 

 

 

윌스트리트의 황소 (Wall Street Bull)

 

 뉴욕 월가 중심에 서 있는 황소상.

월스트리트를 상징하는 'Charging Bull(돌진하는 황소)는

 조각가 Arturo Di Modica가 1987년 '블랙 먼데이'로

 충격에 빠진 뉴욕 사람들에게 미국 자본주의의

꺼지지 않을 생명력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이 되었다고 한다.

 

 

 

 

남자는 황소의 코를

여자는 황소의 불알을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소문때문에

관광객과 오가는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그 부위들이 색이 바래 유난히 밝은 색을 띤다.

 

 

 

 

 뉴욕에 오면 꼭 봐야 할 코스인

 이 황소와 사진을 찍을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이다.

도저히 황소의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ㅋ

 

 

 

 

 

 황소상이 여기에 있는 이유는

 

 원래 이곳이 소경매장이기도 하였고

 증시가 활황일 때

주가 그래프는 황소의 뿔처럼 상승곡선을 긋기에

 황소를 월가의 상징으로 세워놓은 것이란다.

1980년대 중반 미국 증시가 연일 폭락하고 있을 때

이탈리아 조각가 아투로 디 모디카는 강세장을 Bull Market,

약세장을 Bear Market라 부른 것에 착안하여

증시가 강세장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당국의 허락도 받지 않고

1987. 12. 15. 뉴욕증권거래소 앞에 이 작품을 설치하였다고.

 사람들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처럼 좋아했고

 당국이 이를 철거하려고 하자 거세게 항의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것이라고 한다.

 

 

 

 

 

 

 

황소조각 맞은 편 건물

 

월스트리트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곳에 서 있는

 청동 황소 조각은 오랜 시간동안

월스트리트의 마스코트로 사랑 받아 왔다.

 

 

 

 

 

맨해튼의 마천루

 

 

 

 

 

월가

 

뉴욕 증권거래소가 있는 이곳 거리의 이름은 월가.

월가란 우리말로는 벽거리(wall street) 또는 담장거리라고 하겠는데,

오래 전에 이곳에 벽이 둘러져 있어 이런 거리의 이름이 생겨난 것.

 사연인즉 처음 뉴욕에 정착하여 살던 네덜란드인들이

인디언의 침입을 막고 또 근처에 방목되던

 돼지떼의 난입을 막기 위해 1663년 벽을 세웠단다.

그러고보니까 뉴욕도 처음 인디언들에 의해

맨나하타 또는 맨해튼(많다와 돌의 합성어)으로 불리다가

네덜란드 초대총독 미누이트가 인디언 렌나페이족에게

겨우 24달러 정도에 해당하는 물품을 주고 살 때에는

뉴암스텔담이라고 불렸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유럽에서 대유행하던

 비버 코트와 모자에 사용하는 모피를 구하기 위해

맨해튼을 구입하였다고.

그러다가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들을 쫒아내고

이 지역을 영국왕 찰스 2세의 동생 요크공이 다스리는

영국령으로 선포하면서

 지금의 뉴욕이란 도시 이름을 쓰게 된 것이다.

 

 

 

 

그리스 신전 같은 뉴욕 증권 거래소 건물

 

1794년 이곳에서 상업거래가 시작되면서 자신들의 거래를

 버튼우드 협약으로 지정한 것이 증권거래소의 기원.

24명의 중개인에 의해 설립된 증권거래소는 지금은 1,400여명의

중개인이 일하고 있는 세계 최대 최고의 증권거래소가 되었다.

세계 증시에 대한 뉴스가 나올 때면

화면에 비치던 증권거래소 객장이 바로 저 안에 있는데,

9.11 테러 이후 견학은 금지되어 있다.

 

 

 

 

드디어 페라리가 뉴욕 증시에 상장됐나 보다.

 

 이탈리아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의 대명사격인  

페라리가 속한 피아트-크라이슬러 자동차 그룹이

페라리를 그룹에서 분리한 뒤 뉴욕 증시에 상장하기 위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기업공개에 필요한

서류를 접수했다는 뉴스를 몇달 전에 봤는데,

여행 중에 뉴욕 증권시장에 데뷔한 현장을 보게 되

나도 글로벌해 졌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ㅋ

 

 

 

 

멋진 페라리들을 맘껏 눈요기했다.

 

 

 

 

 

 검정 모자와 꾸불꾸불한 구레나룻 머리,

 그리고 정수리 부분에 동그란 호떡 같은 모자를

붙여 쓰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쥬이시 Jeweish라 불리는 유대인이다.

이들은 뉴욕의 경제를 뒤흔드는 큰 손들로

 월 스트리트, 타임스퀘어 주변의 뮤지컬 극장들,

호텔, 영화 업계 등 뉴욕의 경제와 문화가

이들 유대인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유대인의 공휴일엔

미국 학교가 휴교할 정도의 파워를 지녔다.

 

 

 

 

 

로어 맨해튼 지도

 

 

 

 

페더럴 홀 Federal Hall

 

 뉴욕 맨해튼 월 스트리트 26번지에 위치한

 미국 의회 구 의사당이다.

조지 워싱턴의 동상이 서 있으며,

뉴욕 증권거래소 맞은편에 있다.

 1789. 4. 30. 워싱톤 대통령이 바로 이 건물에서

취임식을 거행하였다.

 지금은 초기 연방 정부 자료가 전시된 기념관으로 쓰고 있는데,

 안에는 워싱톤 대통령이 취임할 때

손을 얹고 서약했던 성경책이 있다.

 

 

 

 

 트리니티 교회(Trinity Church)

 

월 스트리트 입구에 위치해 있으며

건축 당시에는 뉴욕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뉴욕의 역사와 함께 한 건축물이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에 올라있다.

 

 

 

 

트리니티 교회는 1697년 영국 성공회 교회로

미국 최초의 교회로 건축되었는데,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이다.

 첨탑의 높이는 86m로

고딕 양식의 뾰족한 건물과 본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섬(Liberty Ialand)으로 가기 위해

선착장에 왔다.

 

 

 

 

자유의 여신상 관광은 여러종류가 있다.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섬에 내려서

여신상에도 올라가 보고 하는 유료코스도 있고,

그냥 유람선에서 맨해튼 시내를 조망하고

 자유의 여신상 앞으로 지나 갔다가 돌아오는 무료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패키지라 후자이다.

후자의 경우가 가장 대표적인 여행이다.

 

 

 

 

맨해튼 브릿지와 브루클린 브릿지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범선이 있는데
마천루와 범선의 조화가 멋있다.

 

 

 

 

무료 페리 

지하철 사우스페리역 - 무료버스(셔틀버스) 대기-스테이튼 아일랜드 페리 

 

 

 

 

 

 

맨해튼 브릿지와 브루클린 브릿지가

나란히 서 있다.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교각으로

사우스 스트리트 씨포트 바로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1870년 착공하여1883년 완공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이자 뉴욕시티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총 길이는 5,989피트, 가장 높은 곳은 1,595피트 에 달하고,

총 1,800만달러를 투자하여 완공하였다.

 

 

 

 

브루클린 브리지

 

 

 

 

브루클린 다리 밑으로

맨해튼 브릿지가 보인다.

 

 

 

 

 

갑자기 브루클린 브릿지를 걷고 싶다.

 

 

 

 

 

 

브루클린 다리 옆의 Watchtower 본부는

 세계적인 교육활동으로 유명한 곳이라 한다.

 

 

 

 

선착장을 떠나면서 보이는 맨하탄 모습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보인다.

 

 

 

 

 

 

 

맨해튼 남부의 모습

 

 

 

 

2001년 9월 11일 테러사건 때

무역센터 주위의 몇몇 건물도 같이 무너졌는데

그 곳에 새로운 빌딩들이 세워지고 있다.

 

 

 

 

왼쪽 원월드트레이트 센터

 

9.11테러로 붕괴된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이었던

세계무역센터는 재건립되어

2014년 11월에 주건물인 원월드트레이트센터가

개장하였는데

 지상 104층, 지하 5층 규모에 연면적은 32만 5,279㎡이며,

총 높이는 미국이 독립선언을 한 연도를 따라

 1,776피트(541m)로 지어져 미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되었다.

 

 

 

 

원래 이름이 프리덤타워인

원월드트레이트센터의 전망대는

록펠러 센터 전망대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와

함께 경치를 겨루게 되었다.

 

 

 

 

 

 

뉴욕 맨해튼을 흐르는

허드슨강을 지척에서 느끼고 있다.

 

 

 

 

 

 

뉴저지 쪽의 익스체인지 플레이스

 

왼쪽 높은 건물은 골드만삭스타워

 

 

 

 

 

과거의 출입국 관리소

 

유럽에서 오랜기간 미국으로 오다 보면 병이 걸리고 했단다.

그러다 보니 저기 보이는 출입국 관리소에서 입국 거부가 되어

 가족과 헤어지는 그런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눈물의 출입국관리소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과거 뉴욕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던 곳으로

현재는 초기 이민자들의 이민과정을 생생히 재현해 놓아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알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자유의 여신상 내부를 보려면

배터리 파크에서 페리를 이용해

리버티섬에 들어가야 하는데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 두면 발치에 있는

 탑까지 올라갈 수 있다.

크라운은 하루에 올라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몇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한다. 

 

 

 

 

자유의 여신상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은

1886년10월28일 미국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에서 제작되어 뉴욕의 리버티 섬에 세워졌다.

 프랑스의 조각가 프레데릭 오귀스트 바르톨디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는 조국에서 찾지 못한 자유에 대한 기념물을 만들 생각으로

 21년에 걸쳐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1871년에 미국 그랜트 대통령을 만나서 제작비와 위치선정을 논의 하던 중에

 "나는 미국의 자유를 힘써 찬양할 것이며

언젠가 이땅에서도 그것을 다시 찾을 것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자유의 여신상의 무게는 225t이고,

 대좌(받침대) 높이는 약 47.5m로

 동상 자체의 발끝에서 횃불까지의 높이는 46m이다.

지면에서 횃불까지의 전체 높이는 93.5m에 이르고

 손은 5m, 집게 손가락이 2.44m나 된다.

 

 

 

 

 

자유의 여신상 (Statue of Liberty)

 

자유의 여신상은 많은 상징들로 자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선 발의 부러진 족쇄는 폭정으로부터의 탈출을 뜻하고,

왼팔에는 1776.7.4, 즉 미국독립선언일이

로마체로 새겨져 있는 법전을 들고 있으며,

왕관의 7개 첨침은 일곱 개의 대양과 대륙을 나타낸다.

무엇보다 횃불과 화염은 세상을 밝히는 진실과 정의를 상징한다.

 

 

 

 

처음에는 조명장치가 되어 있는 횃불이

항해에서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등대국에서 관리했지만,

 우드섬이 육군 작전기지였기 때문에

 1901년부터는 여신상의 관리를 육군본부에서 맡았다.

 1924년 국립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1937년 우드섬이 해체되면서 섬의 나머지 부분도 기념물에 포함되었다.

1956년 베들로섬은 리버티섬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65년에는 한때 미국의 주요 이민단 정착항이었던

 인근의 엘리스섬도 이에 포함되어

 사적지 전체면적이 약 0.24㎢에 이르게 되었다.

 

 

 

 

 받침대 입구에 있는 현판에는

 받침대를 지을 기금을 모으기 위해 에머 래저러스가 지은

'새로운 거상'(1883)이라는 소네트가 새겨져 있다.

"정복자의 사지를 대지에서 대지로 펼치는

저 그리스의 청동 거인과는 같지 않지만

여기 우리의 바닷물에 씻긴 일몰의 대문 앞에

횃불을 든 강대한 여인이 서 있으니

그 불꽃은 투옥된 번갯불, 그 이름은 추방자의 어머니

횃불 든 그 손은 전 세계로 환영의 빛을 보내며

부드러운 두 눈은 쌍둥이 도시에 의해 태어난,

 공중에 다리를 걸친 항구를 향해 명령한다

오랜 대지여, 너의 화려했던 과거를 간직하라!

그리고 조용한 입술로 울부짖는다.

너의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숨쉬기를 열망하는 무리들을

너의 풍성한 해안가의 가련한 족속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폭풍우에 시달린, 고향없는 자들을 나에게 보내다오

황금의 문 곁에서 나의 램프를 들어올릴 터이니."

 

 

 

 

받침대 부분에는 미국 이민박물관(1972)이 있다.

 

 

 

 

자유의 여신상의 몸통 한쪽에는 전시관이 있는데 

머리, 몸통 부분 등이 나뉘어져서 배로 운반되고

그 다음에 뉴욕에서 받침대가 설립되고 ,

이어 붙이는 장면을 기록한 사진들을 전시해 두었는데

 여신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여신상의 역사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준다고.

 

 

 

 

자유의 여신상은

주춧돌에 새겨진 에머 래저러스의 시에 나타난

"고단한 자들이여. 가난한 자들이요,

자유로이 숨쉬고자 하는 군중들이여,

 내게로 오라."라는 글귀처럼

근 1세기 동안 아메리칸 드림의 선봉장 역할을 해 왔다.

 

 

 

 

 

점점 멀어지는 자유의 여신상

 

 

 

 

 

 

 

다시 보는 브루클린 다리

 

 

 

 

 

선착장에 들어간다.

 

 

 

 

하선 준비

 

 

 

 

유람선내의 매장

 

 

 

 

선착장에 있던 프리첼 노점

 

 

 

 

뉴욕 시티패스 팜플렛

 

뉴욕은 빅 애플(big apple)이라는 닉네임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예전에 맨해튼의 대부분이 사과농장이었기에

1920년대에 배우와 음악가들이 빅애플이라고 부르다가 잊혀진 것을

 1970년 뉴욕 관광국에서 다시 이 닉네임을 사용하면서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뉴욕 시티투어 버스

 

 

 

 

인터넷에서 가져 온 덤보(DUMBO)

 

무한도전에도 나왔던 덤보는 맨해튼의 남쪽에 위치한

 브루클린 브릿지를 건너면 도착하는 지역으로

오래된 공장을 개조해서 오픈한 호텔과 바,

 실험정신이 강한 개성있는 예술 갤러리, 유기농 제품만을 판매하는 숍,

 유명 초콜렛 숍 등이 위치하고 있는 덕분에

덤보는 뉴욕 속의 또다른 뉴욕으로 불리고 있단다.

또한 덤보는 맨해튼 브릿지와 브루클린 브릿지를 사이에 두고

 이스트 강과 월 스트리트의 마천루 뷰가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경치를 자랑한다는데 일정상 보지 못했다.

특히 해질녘의 풍경이 압권이라고.

이런 이유로 수많은 뉴요커들의 결혼 야외 촬영 장소로 인기가 있고,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의 촬영 배경지가 되기도 했었고,

 그 외에도 다양한 뉴욕을 주제로 한 미국 영화나

드라마, 화보, CF의 촬영지로 인기 만점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