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정식명칭은
포르투갈공화국(Portuguese Republic)이다.
국명은 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도시
포르투(오포르토)에서 유래했다.
유럽지도
유럽 이베리아 반도 서부에 위치한 나라로
A.D. 1143년 포르투갈 왕국이 성립되었다.
15~16세기에 해양왕국으로서 지위를 확립하면서
세계 최대의 영토를 소유했지만
18세기 중반 나폴레옹의 침입,
브라질의 독립 이후 국력이 쇠퇴하였다.
1910년 공화제가 성립되었다.
포르투갈 지도
포르투갈은 남부 유럽으로
유럽대륙의 서남부 이베리아 반도 서단에 위치하며,
이베리아 반도 중앙고원을 형성하는 산지의 동부,
대서양 연안 지역을 차지하고
스페인의 서쪽에 위치한다.
포르투갈 지도
이베리아 반도의 본토 이외에
대서양의 아조레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를 영토로 한다.
1974∼1975년에
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 모잠비크, 카보베르데,
상투메프린시페, 앙골라가 잇달아 독립하고,
1976년 동 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 병합되었으며,
1999년에는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어
총면적 209만㎢에 이르던 전성기의 해외 영토가 대폭 축소되었다.
지중해·북서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의
네지역을 잇는 해상교통의 결절점에 위치하여
‘지리상의 발견’ 시대에는 에스파냐와 더불어 큰 역할을 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유럽의 후진국으로 전락하였다.
포르투갈 국기
2:3으로 분할된 초록과 빨강의 직사각형이
수직으로 배열되었고
분할선 중앙에 포르투갈 문장이 들어 있다.
초록은 희망을, 빨강은 1910년의 10월 혁명의 피를 나타낸다.
문장은 천구의와 방패,
방패 안에는 다시 5개의 작은 방패를 그려넣어
십자가 위의 수난을 나타냈으며,
그 밖에 무어인과 싸웠던 7개의 성이 그려져 있다.
국기와 문장 모두 1911년 6월 30일에 제정하였다.
포르투갈은
대통령 중심제를 가미한 의원내각제 공화제이며,
의회는 임기 4년의 단원제(230석)이다.
주요 정당은 사회당(PS), 사회민주당(PSD), 단일민주연합,
민중당, 좌파블럭 등이다.
포르투갈의
전체 면적은 9만 2090km2으로
본토 8만 9,000km2,
부속도서 아조레스섬 2,335km2,
마데이라섬 796km2이다.
포르투갈의 기온은 대체로 온난하다.
북부 포르투갈의 연평균 강수량은 1,500mm 안팎이며
해양성(대서양형)의 온화한 기후를 나타낸다.
산악지대는 극심한 대륙성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국토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연평균강수량 500mm 이하의 건조지역으로 바뀌며,
겨울에 비가 많이 오는 지중해성이 된다.
또한 포르투갈은 알프스 히말라야 지진대에 속해
몇 차례의 대지진이 기록되고 있는데,
특히 1775년 리스본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
삼림면적은 국토의 28%로
주로 북부 해안지대에 산림이 많고
남부의 코르크나무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자원이다.
포르투갈의 주민은 지중해 인종에 속하며
켈트계 이베리아인이 중심이 되어 형성되었다.
민족적으로는 에스파냐의 갈리시아 지방의 주민과 유사하다.
포르투갈의 종족구성은
이베리아족, 켈트족, 로마족, 게르만족, 무어족 등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지배에서 속어화한 라틴어인
포르투갈어가 국어로 쓰이고 있다.
종교는 인구의 94% 이상이 가톨릭교를 믿는다.
포르투갈 전체 인구는
1082만 5309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리스본으로 인구는 988만 8000명이다.
인구밀도는 동부 내륙지방보다 서부 해안지방이 높으며
특히 북서부의 풍요한 농업지대가 가장 높다.
포르투갈의 초등 교육은
기초 단계 4년과 예비 단계 2년의 6년으로
농촌에서는 보통 기초 단계 4년만을 수료하고
예비 단계는 주로 중등 교육 과정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이수한다.
중등 과정은 3년이고,
우리의 고등 학교에 해당하는 2년의 보충 과정과
12학년에는 대학이나 전문 기술 학교 입학을 위한
학생들의 준비 과정이 된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2,295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2080 달러이다.
통화는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유로(Euro, EUR)를
사용한다.
포르투갈의 산업은
유럽 국가 중 비교적 낙후된 상태로서 농업이 주이고,
현재 공업화가 진행 중인 상태로
식품・수산물가공・섬유 등 경공업이 주산업이고,
코르크・텅스텐 등을 산출하고 있다.
농업인구 비율은 높으나 생산성은 낮은 편이며,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밀·포도·올리브 등이다.
우리나라는 1961년 4월 15일 정식수교한 후
1975년 6월 11일 주 포르투갈 대사관을 개설하였으며,
2015년 현재도 상주공관을 개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입국한 최초의 포르투갈인은
마카오에서 일본으로 항해 도중 폭풍으로 난파된 무역선장으로,
1577년 조선에 입국한 바 있으나 그 뒤 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는다.
학계의 통설로는 1593년 입국한 신부
세스페데스가 최초의 서양인으로 되어 있다.
포르투갈의 역사는
기원전 750년경 켈트족이 반도에 정착하여
그리스인·페니키아인 및 카르타고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8세기에는 그리스 인의 영향을 받았다.
기원전 2세기경 케사르 및 아우구스투스의 원정으로
로마제국의 속국이 되어 로마화가 시작되어 루시타니아라고 불렸으며,
로마 문화의 영향이 매우 커서 지금도 로마 시대의 양식이 남아 있다.
5세기 초에 서고트족이 이주하여
711년 무어족의 침공을 받을 때까지 제국을 건설하고 반도를 통치해왔다.
8세기에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어간 뒤
크리스트 교도에 의한 국토 회복 운동(레콩키스타) 과정에서
1137년 엥리케왕이 단일국가로 분립시켜
무어족을 축출하고 1139년 독립을 이루어
포르투갈 왕국이 성립되었다.
1385년 스페인의 카스틸랴왕국에 승리함으로써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세웠다.
14세기 주앙 1세 때부터 왕권은 절대주의화되었으며
영국과의 동맹이 시작되었다.
주앙 1세의 아들 엔리케는 항해왕이라고도 불렸으며,
인도 항로와 브라질을 발견함으로써
포르투갈은 해양 왕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5, 16세기에는 브라질·인도 및 아프리카 연안 등
해외탐험을 통하여 제해국으로 등장하여 스페인과 경합하였으나,
1580년 왕가의 분규로 스페인에 합병(1580∼1640)되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후원으로 독립을 회복하였고,
1910년 혁명으로 마누엘 2세가 폐위되고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1932년 이래 강력한 독재체제를 유지해온 살라자르가 죽고
카에타노의 독재가 계속되었으나,
1974년 4월 25일 청년 장교단의 무혈쿠데타가 성공하여 독재정치는 끝났다.
1976년 4월 25일 헌법을 제정하고 총선 결과에 따라
소아레스 사회당 소수 단독내각이 제1차 합헌정부로 출범하였으며,
그 이후 1985년 11월 제10차 합헌 정부까지
매년 정권이 교체되는 등 민주정치의 외양은 유지되었으나
불안정한 국면이 계속되었다.
1986년 2월 16일 대통령 선거에서는 소아레스 총리가
1926년 이래 최초의 민간인 출신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1987년 7월 및 1991년 10월에 제11차 및 제12차 합헌정부가
사회민주당 단독 정부로 각각 수립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중도좌파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1955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포르투갈은 특히 유럽 국가와의 관계심화 및
앙골라·모잠비크 등 전 식민지국가와의 관계개선에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의 역할 증대,
미국 등 서방제국과의 관계강화를 꾀하고 있다.
포르투칼 (PORTUGAL)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연대별 자료집(코르푸 크로놀로지쿠)-포르투갈인들의 발견에 대한 필사본 컬렉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바스쿠다가마의 첫 인도 여행기(1497~1499)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카우벨 제작 기술 [Manufacture of cowbells]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1922년 최초의 남대서양 횡단비행 [First flight across the South Atlantic Ocean in 1922]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참고: 두산백과,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세계인문지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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