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파티마] 포르투갈 파티마 가는길, 파티마 샵

푸른 바다. 2016. 11. 5. 19:16

포르투갈 파티마 가는 길

 

 

 

 

2016년 4월2일 토요일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여행 세째 날

 

 

 

스페인 마드리드-톨레도-콘수에그라-살라망카,

포르투갈 파티마-까보다로까-리스본,

스페인 세비야-타리파,

모로코 탕헤르-페스-라바트-카사블랑카,

스페인 미하스-론다-코르도바-그라나다-바르셀로나-몬세라트

 

 

 

아름다운 중세 대학도시인 스페인의 살라망카를 벗어나,

포르투갈의 유명한 성모 발현 도시인 파티마로 가는 길이다.

스페인 살라망카에서 포르투갈 파티마까지는

 차로 약 3시간30분 거리인데, 이 시간에 가이드가

세 명의 어린 목동 앞에 나타나신 성모님에 대한 영화를 보여주었다.

포르투갈 파티마의 로사리오 성모님은

 포르투갈산타렝 현 빌라노바데오렘에 있는 마을 파티마에서

세 명의 어린 목동에게 나타나신 성모 마리아를 부르는 칭호이다.

 파티마의 성모는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월 13일에 여섯 번 나타났다고 하며,

성모 마리아가 처음 나타난 5월 13일

 파티마의 성모 발현 기념일로 제정되었다.

 성모 마리아를 목격한 세 명의 아이는

 루치아 도스 산토스

 그녀의 사촌 프란치스코 마르토, 히야친타 마르토이다.

 

 

 

 

포르투갈 국경을 넘기 전

스페인 휴게소

 

 

 

 

스페인 커피를 맛보기로 하고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라떼 주문

 

 

 

 

카페라떼 3유로

 

 

 

 

우유가 들어 있어도 진하다.

 

 

 

 

 

 

 

 

 

 

 

 

 

 

 

 

스페인 고속도로 휴게소 내부 모습

 

 

 

 

 

 

 

 에스파냐, 포르투갈 글자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스페인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이다.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유럽연합기와

스페인, 포르투갈 국기

 

 

 

 

 

 

 

스페인 국경 검문소

 

 

 

 

 

 

 

유럽연합 국가들이라 바로 통과

 

 

 

 

포르투갈이다.

 

 

 

 

 

포르투갈의 정식명칭은 포르투갈공화국이다.

이베리아 반도의 본토 이외에

 대서양의 아조레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를 영토로 한다.

1974∼1975년에 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모잠비크·

카보베르데·상투메프린시페·앙골라가 잇달아 독립하고, 

1976년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에 병합되었으며, 

1999년에는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어 

총면적 209만㎢에 이르던 전성기의 해외 영토가 대폭 축소되었다.

 지중해·북서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의 네지역을 잇는

해상교통의 결절점에 위치하여

 ‘지리상의 발견’ 시대에는 에스파냐와 더불어 큰 역할을 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유럽의 후진국으로 전락하였다.

국명은 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도시 포르투에서 유래했다.

 행정구역은 18개주, 2개 자치지역으로 되어 있다.

 

 

 

 

 

포르투갈의 수도는 리스본이며

면적은 9만 2090㎢, 해안선의 길이는 1,793㎞이다. 

인구는 1082만 5309명(2015년 현재),

종족구성은 이베리아족, 켈트족, 로마족, 게르만족, 무어족 등이다.

언어는 포르투갈어가 사용되며,

 종교는 인구의 94% 이상이 가톨릭교를 믿는다.

산업은 유럽 국가 중 비교적 낙후된 상태로서 농업이 주이고,

 공업화가 진행 중인 상태이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밀·포도·올리브 등이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2,295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2080 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대통령 중심제를 가미한 의원내각제 공화제이며,

 의회는 임기 4년의 단원제(230석)이다.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속주가 된 뒤

로마화가 시작되어 루시타니아라고 불렸으며,

로마 문화의 영향이 매우 커서 지금도 로마 시대의 양식이 남아 있다.

 8세기에는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크리스트 교도에 의한 국토 회복 운동(레콩키스타) 과정에서

포르투갈 왕국이 성립되었다.

14세기 주앙 1세 때부터 왕권은 절대주의화되었으며

 영국과의 동맹이 시작되었다.

주앙 1세의 아들 엔리케는 항해왕이라고도 불렸으며,

 인도 항로와 브라질발견함으로써

포르투갈은 해양 왕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포르투갈의 해외 진출은

 무역과 함께 포교 활동을 수반하였다.

 수도인 리스본은 각지로부터 모아오는 부(富)로 크게 번창하였으나

왕실과 귀족에게만 집중되어

이들의 낭비와 경제 정책의 실패로 국내 부르주아가 형성되지 못하였다.

16세기 중엽부터 번영은 사양화되어 영국에의 경제적 종속이 심화되고

 브라질에서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도 점차

네덜란드, 영국의 진출에 의해 축소되어 갔다.

19세기 초에는 나폴레옹 군대가 침입하여 왕실은 브라질로 망명하였으며,

 나폴레옹의 몰락 후에는 영국 장군이 섭정으로 부임,

 포르투갈을 실질적으로 지배하였다.

 1820년 에스파냐 내란에 호응하여 반 영국 입헌파의 혁명이 일어나

국왕이 복귀하고 입헌 군주제가 채택되었다.

 

 

 

 

포르투갈의 시골마을 풍경

 

1822년 브라질이 독립을 선언한 후부터

포르투갈의 국력은 쇠퇴해 갔으며,

 사회적·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1910년 공화파의 혁명이 일어나 공화제가 성립하였으나

1926년 군부 쿠데타에 의하여 코스타 장군의 독재 정권이 출현하였다.

이 정권도 경제 정책의 실패로 실각하고

그 뒤를 이은 카르무나 대통령은 살라자르를 경제 장관으로 기용하여

경제를 재건하는 데 성공하였다.

 1932년 총리에 취임한 살리자르가 독재 체제를 구축하였으며

그의 사후 카에타노가 후임이 되었으나

 1974년 4월 민주화를 목표로 군부 소장파 장교들에 의한

무혈 쿠데타가 일어나 반세기에 걸친 독재 체제가 무너졌다.

농업과 광업이 주산업으로 산업·경제 구조는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이다.

 

 

 

 

포르투갈 휴게소에도 들렀다.

 

 

 

 

 

 

 

 

 

 

 

 

 

 

 

 

 

 

 

 

 

 

 

 

 

 

파티마에 들어섰다.

 

파티마는

가톨릭 교회가 공식 인정한 성모 발현지인 성지로

 중부 포르투갈의 산악지대인

 레이리아 교구에 속한 작은 마을로

 1917년 세 어린이가 파티마의 성모를 목격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대성당이 세워져 있다.

 

 

 

 

성모님이 발현한

 세 명의 어린 목동의 동상이

먼저 맞아준다.

 

 

 

 

 파티마의 성모는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월 13일 여섯 번,

루치아 도스 산토스

 그녀의 사촌 프란치스코 마르토, 히야친타 마르토

세 명의 어린 목동에게 나타났다.

 

 

 

 

세명의 어린 목동

 

이름이 무엇이냐는 어린이들의 믈음에 대해 성모는 

 "나는 로사리오의 성모다"라고 대답을 하였다.

성모 순례지인 파티마는 많은 가톨릭 신자가 찾는 곳이며

매년 파티마의 성모 발현 날짜인

5월 13일과 10월 13일에는

 100만 명의 순례자가 성소를 찾아온다.

 

 

 

 

세명의 어린 목동

 

1917년 당시 3명의 어린이는 

루시아(10살), 프란치스코(9살), 히야신타(7살)였는데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마르토는 어린나이에 죽었고,

루치아 도스 산토스는

 수녀가 되어 마리아 루시아로 세례명을 받고

1924년에 칼멜수도원에 들어가 수녀로 살다

97세로 2005년 돌아가셨다.

세명의 어린이 가운데 마지막으로 생존한 루시아 수녀는

 1,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끝을 예언한 

"파티마의 3대" 예언으로 유명하다.

 

 

 

 

태양의 기적을 본 군중들

<일루스트라사오 포르투게사>1917년 10월 29일자의 사진 사본.

 

 성모 마리아가 파티마에 발현한 동안

일어난 태양의 기적을 본 수많은 군중의 모습이 담겨 있다.

성모님께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약속하신 10월에

 태양이 지상에 수직으로 떨어지며 회전하고

빛을 발하는 기적을 7만 명의 군중이 목격했다.

1930년 포르투갈 주교들은

파티마의 성모 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파티마의 메시지는

 속죄, 묵주 기도,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기도와 고행,

성직자를 위한 기도, 성모의 티 없는 성심께 대한 봉헌,

매달 첫 토요일 속죄의 영성체 등이다.

 

 

 

 

성모 발현을 목격한 어린 목동 3명은

파티마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FABBRICA 공장이란 뜻의 기념품점 1층

 

엄청 넓고 엄청 다양한

물품들로 가득했다.

 

 

 

 

 

 

 

 

 

 

 

 

 

 

 

 

 

 

 

 

 

 

 

 

 

 

 

 

 

 

 

 

 

 

 

 

 

 

 

 

 

 

 

 

 

 

 

 

 

 

 

 

 

 

 

 

 

 

 

[참고: 위키백과,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세계지명 유래 사전, 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 자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