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탑, 무리요 공원, 산타크루스 지구
2016년 4월4일 월요일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여행 다섯째 날
스페인 마드리드-톨레도-콘수에그라-살라망카, 포르투갈 파티마-까보다로까-리스본, 스페인 세비야-타리파, 모로코 탕헤르-페스-라바트-카사블랑카, 스페인 미하스-론다-코르도바-그라나다-바르셀로나-몬세라트 어제 포르투갈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스페인 국경을 넘어 유명한 카르멘의 고향인 안달루시아 지방 세비야에서 하루를 묵었다. 오늘 일정은 세비야를 보고 론다를 거쳐, 타리파에서 북아프리카 모로코로 향하는 페리를 타야 하는데 아침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조식 뷔페에서 만난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비가 오는건 괜찮은데 바람이 불어 파도가 높으면 배가 출항하지 않아 모로코에는 못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행 다니면서 좋은 날씨를 몰고 다니시는 분들 계시면 기도를 좀 하라고 했다. 잉그리드 버그만과 험프리 보가트가 나왔던 카사블랑카에 꼭 가 보고 싶은 마음에, 날씨가 걱정이 되고 조금 불안해졌다. 세비야 일정 지도
오늘 일정을 걱정하는 줄도 모르고
비는 계속 줄기차게 오고 있다.
세비야의 과달키비르강
세비야의 옛 이름은 히스팔리스이다.
과달키비르강 어귀에서 87km 상류 연안에 있다.
로마 시대에는 지방 중심지로 번창하고,
그 뒤 서고트(5~8세기)·무어(8~13세기)의 지배를 받았고,
12세기에는 이슬람 문화의 정수를 모은
알카사르 궁전, 히랄다의 탑 등이 건조되었다.
1248년 페르난도 3세에 의해 다시 에스파냐에 속했고
15세기 말에는 신대륙무역의 기지로서 전성기를 맞아
에스파냐 최대의 성당과 대학 등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17세기에는 대형 선박의 출입이 편리한 카디스에 밀려,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 뒤 세비야는 역사적인 도시가 되었으나,
여전히 보수적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거점 도시로서
명맥을 유지해왔다.
세비야는
대형 선박의 출입이 가능한 하항으로,
셰리주·과일·코르크·올리브유·광석 등을 수출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조선업이 발달하였고,
그 밖에 담배·섬유·농기구·도자기 등 제조업이 활발하다.
그리고 세비야는 화가 D.R.벨라스케스의 출생지이며,
무리요가 활약한 곳이기도 하다.
이슬람풍의 거리 모습과 건물, 성주간의 그리스도교 전례와
투우 등 관광적 요소가 풍부하다.
세비야 대성당과 알카사르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목록에 수록되었다.
황금의 탑 (Gold Tower)이 보인다.
세비야는
16세기와 17세기에 카렐라 데 인디아스
(인도 제국으로 가는 라틴아메리카와 스페인의 무역 독점 항로)의
주요 도시로 지명되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은 인도 제국으로 가는 관문이었으며,
1503년부터 1718년까지
인도 제국과의 유일한 무역항이었다.
황금의 탑 (Gold Tower)
과달키비르 강변
한쪽에 있는 항구에 위치하고 있다.
1220년 이슬람교도가 과달키비르강을
통과하는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웠다.
강 건너편에는 8각형의 은의 탑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두 탑을
쇠사슬로 연결하여 세비야에 들어오는 배를 막아
적의 침입으로부터 이 항구 도시를 지켰다.
맞은 편에 있던 탑은 지금은 없어졌다.
황금의 탑 (Gold Tower)
황금의 탑은 연한 색의 벽돌과 돌로 축조되었으며,
황금의 탑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처음 탑을 지을 당시
금박으로 덮힌 타일로 탑의 바깥을 덮어,
햇빛을 받으면 금빛으로 빛났기 때문이라는 설과
16~17세기에 스페인 함선들이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을
황금 저장소로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세비야의 과달키비르강 (EBS 동영상 캡처)
생각보다 자그마한
세비야 과달키비르강변에 있는 황금의 탑
토레 델 오로 (EBS 동영상 캡처)
세비야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매력적인 탑
토레 델 오로,
즉 황금의 탑은 13세기 이곳을 지배하던
알모아데 왕조 때의 무어인들에 의해
1221년~1222년사이 세워졌으며,
세비야를 둘러싸고 있는 도시 성벽의 일부이다.
열두 면으로 된 이 감시탑의 목적은
무어인의 기독교 세력을 물리치기 위한
요새 구실을 하는 것이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16세기가 되자, 토레 델 오로는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그 일부분이 파손되었다.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던,
1755년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더 큰 피해를 입어 엉망이 되었는데,
1760년대에 들어 탑은 수리되었고 증축되었다.
탑 꼭대기에 빙 둘러 흉벽이 조성되어
전보다 한 채의 성과 같은
외관을 갖추게 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18세기와 19세기 두 차례에 걸쳐,
이 탑은 개발업자들에 의해 헐릴 위기에 처했으나,
두 번 다 여론의 반대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무사히 살아남았다.
황금의 탑 (토레 델 오로)
무어인들이 통치하던 시대 이후부터
황금의 탑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감옥, 예배당, 화약 저장고,
그리고 항구의 관리 사무소가 들어섰던 적도 있다.
지금은 유명한 스페인 항해자와
선박의 모형과 그림등이 전시되어있는
해양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괴달키비르 강
이곳에서 마젤란도 콜럼버스도
대항해를 떠났다.
피사로가 잉카제국등에서
막대한 금을 싣고 도착한 곳도 이 곳이다.
괴달키비르 강으로 유입된 황금은
스페인 전역으로 유통되면서
세비야는 부흥의 도시로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황금의 탑
세비야에 있는
알모아데 이슬람 시대의 마지막 작품중 하나로
12각형 모양으로 알카사르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방어벽의 일부분이다.
황금의 탑 (퍼 온 사진)
프랑스 극작가 메리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 카르멘의 무대였던 옛 담배공장 건물이 있다는데
비로 인해 못 찍었다.
1820년대의 세비야에 있던 담배공장은
지금은 세비야대학교 법학부가 들어 있다고 한다.
세비야는 오페라로 유명한 도시로
베토벤의 피델리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롯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비제의 카르멘 등
무려 25개의 오페라 작품에서
세비야가 장소적 배경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특히 산타크루즈 지역은 팜므파탈의 대표 카르멘과
옴므파탈의 대표 돈 주앙이 애정행각을 벌이던 곳이라고.
세비야의 신시가지
세비야에는 많은 이슬람 건축물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1181년 아부 야콥이란 왕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알카사르가 있다.
이것은 '무데하르 양식(스페인의 이슬람 건축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알카사르와 함께 세비야를 대표하는 건축물로는
이미 12세기에 이슬람교도들이 만들어놓은
세비야 대성당의 98미터 높이의 히랄다 탑이 있다.
이렇게 이슬람 문화가 꽃 피었던 세비야는
16세기에는 아메리카와의 교역의 중심지로서,
해가 지는 일이 없다고 불렸던 해양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코르도바의 옴미아드 왕조가 멸망한 후
수십 년 동안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는
소규모 이슬람 왕국이 난립하는 전국 시대가 계속되었다.
그중 가장 번영을 누린 왕조가
세비야에서 3대째 계속된 아바스 왕조였다.
즉 세비야는 1010년에서 1248년까지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문화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었다.
마리아 루이사 공원 (위키백과에서 퍼 온 사진)
세비야주 중앙부에 위치한
주도 세비야의 팔메라 대로 변에 있다.
원래는 산텔모 궁전의 정원이었으나
궁전 소유주였던 마리아 루이사 페르난다 공작부인이
1893년 세비야시에 기증하면서 시 소유가 되었다.
세비야시는 1929년 이베로 아메리칸 박람회 개최를 앞두고
공원을 재단장해 현재의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했다.
세비야를 대표하는 공원이자
에스파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 중 하나이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심 공원 중 하나로 꼽힌다.
무리요 공원
세비야 출신의
17세기 바로크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무리요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정원이다.
세비야에서 마리아 루이사 공원
다음으로 큰 공원이다.
공원을 스쳐 지나 가는 길로 통과해
자세히는 보지 못했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1617-1682)
에스파냐의 화가
무리요는 유대인 빈민가에서 성장,
일찍 부모를 여의고 삼촌의 후원으로 돈 쟌 델 가스치로를 사사,
스승이 죽자 다시 왕실 화가 벨라스케스에게 배우면서
왕실이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 및 플랑드르의 고화를 연구했다.
고향 세빌리아에서 아틀리에를 열었고,
프란스카파의 수도원을 위하여 11면의 종교화를 그리고,
또 신설 카프싱파의 수도원을 위하여 그렸으나(1676)
이것은 후세에 큰 손상을 입었다.
부드러운 정서적 특징이 나타나는 그림을 그렸고
특히 예수를 사랑스러운 어린이로 그려서
종교화에 리얼리즘을 적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기념탑
1492년 콜럼버스 항해 500주년을 기념하여
1992년에 세운 기념탑이다.
탑꼭대기에는 사자상이
그 아래에 산타마리아호가 조각되어 있고
배 양쪽에 이사벨과 페르난도라고 글자가 새겨져 있다.
콜럼버스가 타고 떠났던 산타 마리아호
세비야의 본격적인 발전은
아메리카 발견 이후에 왔다.
이 곳 세비야에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향해 떠났고,
이후 식민지의 모든 생산물들은
세비야로 집중되었다.
1492년 콜럼버스 항해 500주년인
1992년에는 바르셀로나에서는 올림픽이 열렸고,
이곳 세비야에서는 만국박람회(EXPO)가 열렸다.
퍼 온 사진
우리는 이 아름다운 공원을
그냥 통과해서 지나 가는 길로 이용했다.
무리요 공원 관리사무소
맨 끝에서 가이드를 열심히 쫓아 가면서
부지런히 사진을... ㅋ
세라믹 공원 벤치
공원 벤치가
세라믹으로 장식되어 있어 아름답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무대인 로지나의 집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건물로
조아키노 롯시니가 작곡한
희극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무대라고 한다.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 로지나를 두고
그녀의 후견인 바르톨로박사와 젊은 귀족 알마비바백작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데
세비야의 사정을 잘아는 이발사 피가로는
알마비바백작을 도운다.
알마비바 백작이 이집의 베란다를 올려다보면서
멋진 세레나데를 불러
로지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
산타 크루스 지구는
중세시대 유대인들이 정착해 살았던 곳으로
세비야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의 하나이다.
세비야 유대인 지구인
산타 크루스의 좁은 골목길
산타 크루스 지구
세비야주 중앙부에 위치한 주도
세비야의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다.
유서 깊은 도시 세비야에서도 대표적인 역사·예술 지구이다.
중세시대 유대인이 세운 정착촌이 이 지역의 시초이며,
이후 유대인 집중 거주 지역으로 번성했다.
안달루시아 자치지역 고유 양식의 고풍스러운 주택,
많은 역사적 건축물, 좁고 미로처럼 얽혀 있는 거리,
옛 모습 그대로 주민들의 생활 중심지 역할을 하는
크고 작은 많은 광장 등이 어우러져
과거 세비야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독특한 지역이다.
좁은 골목은 마주오는 사람과
맞대고 지나갈 정도여서
키스의 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안달루시아 지방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세비야 사람들은 산타 크루스 유대인 지역을
흔히 안달루시아의 얼굴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대표적인 광장으로는 산타크루스 광장,
크루세스 광장, 산타마르타 광장 등이 있다.
유대인 마을의 한 카페에서
잠깐 화장실을 이용했다.
화장실에 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ㅋ
화장실을 이용하게 해주므로
커피를 마실 분은 여기서 마시라고 하길래
주문한 세비야 커피 ㅎ
세비야 산타 크루스 지구의
한 카페에서 맛 본 커피는 맛있었다.
카페 근처의 기념품점
산타 크루스 광장
산타 크루스 광장은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세비야 광장의 특성을 가장 뚜렷하게 간직한 곳으로
이 곳의 지역명이 이 광장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세비야 대성당 가는 길
세비야는 인도 북부에서
기원한 방랑민족 집시가
스페인 남부로 대거 이동해
조금씩 그 뿌리를 내렸던 곳으로
집시들의 한과 설움이 담긴 플라멩코가 발생한 곳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이민족의 침입을 받은 탓에
늘 뒤섞인 문화의 현장이었고
동시에 그 속에서 잡초처럼 질긴
자기들만의 문화를 이룩해냈다.
플라멩코의 음악과 춤은 권력과 구속을 싫어하고
매우 완고하지만 쉽게 감동하는 집시들의
삶의 방식을 표현하고 있다.
이슬람교도 지배 하의
스페인은 세 도시가 중심을 이루었다.
즉, 711년에서 1010년까지는 코르도바,
1010년에서 1248년까지는 세비야,
그리고 1248년에서 1492년까지는 그라나다에서
이슬람 문화가 꽃을 피웠다.
세비야 대성당에서 나와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가는 길
[참고: 두산백과, 위키백과,네이버 캐스트, 유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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