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론다
2016년 4월7일 목요일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여행 여덟째 날
스페인 마드리드-톨레도-콘수에그라-살라망카,
포르투갈 파티마-까보다로까-리스본,
스페인 세비야-타리파,
모로코 탕헤르-페스-라바트-카사블랑카,
스페인 미하스-론다-코르도바-그라나다-바르셀로나-몬세라트
정상적인 일정으로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론다를 거쳐
모로코로 들어가야 했는데,
비 바람으로 인해
바로 모로코행 페리를 타는 바람에
오늘 코르도바로 가기 전에
론다를 들리게 되었다.
스페인 최고의 절경이라는
절벽에 서 있는 론다 누에보 다리가
많이 기대된다.
론다는 해발 750m급의
높은 산으로 이루어진 웅장하고
거친 산악 지대가 도시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론다는
말라가주 북서부에 위치하며
주도 말라가에서
북서쪽으로113km 떨어져 있다.
평균 고도는 723m이다.
오랜 옛날부터 에스파냐 남부의주요 도시였으며 현재도 말라가주를 구성하는
세라니아데론다 지구의 중심 도시이다.
과달레빈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흐른다.
이 산악 지대는 이 지역 고유 종인
에스파냐 전나무의 자생지이다.
론다에 도착했다.
론다는 투우의 발상지로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785년에 건설한 에스파냐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 중 하나인 론다 투우장에서는
지금도 가끔씩 투우 경기가 열린다.
1793년에 건설한 대표적인 관광 명소
누에보 다리를 비롯해 많은 문화유산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론다 시내로 들어가고 있다.
스페인에는
정말 크고 작은 성당들이 많다.
론다
말라가주 전체 도시 중에서
론다는 2번째로 면적이 넓다.
기원전 6세기경 켈트족이 최초로 이 지역에
아룬다라는 이름의 정착촌을 세웠고,
이후 고대 페니키아인이 제법 큰 규모의 마을을 세웠다.
그러나 현재 도시의 시초는
기원전 3세기에 로마 제국의 장군이자 정치가인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건설한 요새화된 마을이다.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 황제로부터
시의 칭호를 얻었다.
론다
험준한 절벽 꼭대기에 위치한 론다는
요새나 다름 없는데
기독교 세력에 밀려나 설 곳을 잃어 가던
이슬람 세력들에게 최후의 보루로 선택되었으며
그 후로 이슬람교 세력들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해 있는 곳이다.
공원을 지나
론다의 하이라이트인
누에보다리를 보기 위해
가고 있다.
론다 플라사 데 토로스 (투우장)
스페인 근대 투우의 발상지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인
플라사 데 토로스
스페인에서 현재 사용 중인 투우장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론다 불링(투우장)
18세기 근대 투우의 창시자는
론다 출신의 프란시스코 로메로이다.
그는 투우사가 황소를 자극해 돌진하도록 유도하는
막대에 매단 붉은 천인 물레타를 고안했으며,
황소를 몰 때 무용수를 연상시키는 절도 있는
몸동작을 확립했다고 한다.
이후 로메로 가문은 3대에 걸쳐 일류 투우사들을 배출한
투우 명문가로 등극했다.
그중에서도 프란시스코 로메로의 손자인
페드로 로메로가 가장 유명한데,
그는 투우 경기에서 약 6천 마리의 황소를 죽였으며
한번도 털끝 하나 다친 적이 없는 전설의 투우사이다.
마치 발레와도 같은 그의 투우 스타일은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투우사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프란시스코 로메로와 손자인 페드로 로메로 상
근대 투우의 창시자인
프란시스코 로메로의 손자인
페드로 로메로는
론다의 전설적인 투우사이다.
그는 투우 경기에서
약 6천 마리의 황소를 죽였으나,
한번도 털끝 하나 다친 적이 없는
전설의 투우사라고 한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호세 마르틴 데 안데우엘라가 설계한
웅장한 신고전주의 건물로
1754년에서 1784년까지 지어졌으며,
최초의 투우 경기는 1785년에 열렸다고 한다.
이 투우장에는 5천 명 이상의 관객이 입장할 수 있으며,
지금도 1년에 3차례 투우 경기가 개최된다고 한다.
론다 플라사 데 토로스 (론다 불링, 투우장)
론다 불링(투우장)은 1785년에 건설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으로
수용인원은 6천명으로
이 곳에서 헤밍웨이와 피카소는
투우를 즐겼다고 한다.
피카소는 ‘소의 머리’라는 그림을 그렸고,
헤밍웨이는 투우장 소설인 불파이팅을
집필했다고 한다.
론다 불링(투우장)
론다의 플라사 데 토로스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투우사가 땅에 서서 황소와 싸우는 방식의
투우가 처음 시작된 곳이다.
론다 투우장 옆의 황소상
인간이 황소와 겨루는 투우는
6세기부터 있어온 것으로 추측되는데,
스페인에 처음 투우를 전한 것은
이슬람 무어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17세기 말경까지에는 궁정의 오락거리로
귀족들 사이에 성행했었다가
18세기 초에 이르러 현재와 같이
일반 군중들의 구경거리로 발전했다고 한다.
투우
투우는 중세풍의 금은으로 장식된
화사한 복장을 한 투우사들의
엄숙하고 화려한 연출로 3개의 무대로 구성된다.
첫번째, 두번째 무대에서
피카도르와 반데릴레로로 불리는
투우사들이 창과 작살을 소의 목과 등에 꽂는다.
창과 작살이 꽂힐 때마다
황소가 미쳐가며 이리저리 날뛸 때,
하이라이트인 세번째 무대에서
주역인 마타도르가 검과 물레타를 들고 등장하여
거의 미쳐 버린 소를 유인하면서
날렵하게 몸을 피하면서 춤을 추듯한다.
우리가 보통 매스컴이나 그림에서 보아온 투우는
모두 이런 고상한 장면만 보여준다.
장내의 흥분이 최고도에 이렀을 때 투우사(마타도르)는
정면에서 돌진해 오는 소를 목에서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 죽임으로써 투우는 끝난다.
론다 플라사 데 토로스 (투우장)
스페인에서는 지금도 매년
봄 부활제의 일요일부터 11월까지 매 일요일에
마드리드 등 주요 도시에서
투우 경기가 열리고 있다.
투우 소식은 신문의 스포츠면이 아니라
문화면에 실릴 정도로
전통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데 동물 학대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계속해서 투우 경기는 줄어들고 있고,
특히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에서는
2010년부터 투우가 법으로 금지되었다.
이슬람 지배 당시 지형으로 인해
이슬람의 마지막 도시이기도 한 론다.
약속 장소인 작은 광장
이제 자유시간 30분이 주어졌다.
30분 동안에 누에보 다리와
헤밍웨이 길을 걸어 타호 계곡 넘어
평원을 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가 목표이다.
난간이 있는 곳이 누에보 다리
누에보 다리를 다 건너가면
나오는 길인데
저기까지는 가지 못했다.
누에보 다리
누에보 다리의 난간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누에보 다리는
까마득한 깊이의 협곡
밑바닥까지 닿은 거대한 다리는
에스파냐 최대 사진 촬영지로
전 세계의 사진작가들이 선호하는 장소이다.
또한 에스파냐를 소개하는
세계 각국의 관광 안내 책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론다 누에보 다리
론다에 있는 18세기 다리인 누에보다리는
북쪽의 신시가와 남쪽의 구시가를
연결하는 거대한 석조 다리이다.
스페인 최고의 절경인 누에보 다리
과다레빈 강을 따라 형성된
120m 높이의 협곡을 가로지르고 있다.
론다 누에보 다리
말라가주 북서부 도시
론다의 엘타호 협곡에 놓인
3개의 다리 중 하나인 누에보 다리는
1735년 펠리페V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으며,
8개월만에 35m 높이의 아치형 다리로 만들어졌으나
무너져서 5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로부터 1751년에 새로이 착공이 이루어져
마르틴 데 알데우엘라가 총책임자로
42년 동안 공사해 1793년에 완성했다.
3개 다리 중 가장 늦게 완공되어
새로운 다리라는 뜻의 누에보라고 이름이 붙었다.
다리의 높이는 98m이며
타호 협곡으로부터 돌을 가져와
축조하였다.
다리 중앙의 아치모양 창문
다리 중앙의 아치 모양 창문에 위치한 방은
감옥부터 바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1936년~39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 기간 중
양 측의 감옥 및 고문 장소로도 사용되었으며,
포로 중 몇몇은 창문에서 골짜기 바닥으로
던져져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는 주장이 있다.
현재 이 방은 다리의 역사와 건축에 대한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과달레빈 강의 침식 작용에 의해 생긴 협곡
누에보 다리 아래는
120m나 되는 절벽이다.
돈 미구엘 호텔
론다를 사랑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집필 활동을 하던 당시 거주했던
론다의 미구엘 호텔.
론다의 누에보 다리는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촬영 배경지로도 등장하였다.
타호 계곡 맞은편으로는 평원이 이어진다.
론다 협곡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작은 도시 하얀 마을 론다
참 아름답고 멋진 곳이다.
전망대
시인 릴케는 론다를 이렇게 말했다.
"인구 3만명의 작은 도시,
거대한 절벽이 등에 작은 마을을 지고 있고,
뜨거운 열기에 마을은 더 하애진다."
헤밍웨이 길을 가기 위해
누에보 다리를 건넜다.
파라도르 호텔을 지나 가면 된다.
헤밍웨이 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론다의 풍경에 반해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걸었다는
산책길
헤밍웨이 길에서 찍은 풍경
타호 계곡 맞은 편은 평원이다.
전망대
전망대에서 본 풍경
둘러 나오니 공원이 나온다.
기념품 노점상
공원을 나와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을 나와
약속장소로 이동 중이다.
여기도 관광 마차 있지만
역시나 시간상 못 탄다.
리오스 로사 흉상
론다 출신의 정치가
약속 장소에 다 모여
관광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다 함께 이동 중.
하몽 가게
주차장
이제 버스를 타고
코르도바로 갈 예정이다.
[참고: 두산백과, 위키백과, 네이버 캐스트, EBS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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