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그라나다] 알람브라 카를로스 5세 궁전

푸른 바다. 2017. 1. 11. 20:58

스페인 그라나다 알람브라 카를로스 5세 궁전

 

 

 

2016년 4월8일 금요일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여행 아홉째 날

 

 

스페인 마드리드-톨레도-콘수에그라-살라망카,

포르투갈 파티마-까보다로까-리스본,

스페인 세비야-타리파,

모로코 탕헤르-페스-라바트-카사블랑카,

스페인 미하스-론다-코르도바-그라나다-바르셀로나-몬세라트

 

 

 

알람브라 궁전의 별궁이자

 이슬람 전통 양식의 정원인 헤네랄리페를 본 후

알람브라 궁전 성곽 안으로 들어와

카를로스 5세 궁전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 곳에는 알람브라를 지키던 요새인 알카사바,

 그리고 나스르 궁전 등

알람브라 궁전을 대표하는 건물들이 있는 곳이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은

이곳을 정복한 이사벨 여왕의 외손자인 카를로스 5세가

이슬람 건축에 대항하기 위해 지은 궁전으로

이슬람 지배 시절에 지어졌던

주위의 대부분 건축물들과는 달리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띠고 있어

주위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성 니콜라스 전망대에서 본 알람브라 궁전

 

 그라나다는 서유럽에 세워진

최고의 아랍 문화 공간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특히 그라나다의 중심인 알람브라 궁전과

여름 궁전인 헤네랄리페 별궁,

구시가지인 알바이신 지역은

아랍 문화의 아름다움과 신비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알람브라 궁전 지도

 

 

 

 

알람브라 궁전안에는

개조된 호텔들과 상점들도 있다.

 

 

 

 

알람브라 궁전 내의 골목

 

요새와 거주지가 있는

알람브라(아랍어로 붉은색)에는

작업장, 점포, 목욕탕, 모스크뿐만 아니라

궁전, 호위병 대기실, 정원,

파티오(patio, 건물과 건물 사이의 뜰) 등이 있다.

그리고 탑이 있는 거대한 요새화된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알람브라 내에는

평민 거주지역인 메디나의 유적지도

볼 수 있다.

 

 

 

 

국영 수로가 도로 따라 흐른다.

 

물의 탑에서 카를로스 5세 궁전 앞까지

걸어 온 길이 성채의 산책 길

혹은 황제의 길이라 불리는 산책 길이란다.

 

 

 

 

아랍 목욕탕 건물

 

 

 

 

아랍 목욕탕 바뇨 데 라 메스키타(Bano de la Mezquita)

 

이슬람 사원에 기도하러 들어갈 때

몸을 씻던 곳이라고 한다.

 

 

 

 

 

 

 

 

 

 

 

 

 

 

 

 

천장에 자연 채광을 위한

별 모양의 구멍이 있다.

 

 

 

 

산타 마리아 성당

 

 

 

 

산타 마리아 성당 (퍼 온 사진)

 

로열 모스크 자리에

16세기에 건설된 산타 마리아 성당

 

 

 

 

산타 마리아 성당 내부 사진

(퍼 온 사진)

 

 

 

 

뒷 편에서 찍은 사진

 

 

 

 

이슬람양식과 가톨릭 양식이 섞여 있다.

 

 

 

 

산타 마리아 성당 옆으로

카를로스 5세 궁전이 보인다.

 

 

 

 

나스르 궁전의 남쪽에 위치한

 카를로스 5세 궁전으로 가는 도중에는

 평민 거주 지역인 메디나,

 국영 호텔인 파라도르 데 그라나다

 그리고 산타 마리아 성당 등을 볼 수 있고

 이 성당을 지나면

카를로스 5세 궁전에 도착하게 된다.

 

 

 

 

카를로스 5세 궁전과 산타 마리아 성당

 

 

 

 

카를로스 5세 궁전 위성 사진(구글 화면 캡처)

 

정사각형의 외형과는 다르게

내부는 지붕이 Open 되어 있는 원형이다.

 

 

 

 

카를로스 5세 궁전

 

이슬람 나스르 궁전 옆에 있는

에스파냐 왕 카를로스 5세가 건축한

르네상스식 궁전이다.

 

 

 

 

그라나다 이슬람 왕국의 멸망

 

1492년 1월 2일 무어인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12세(혹은 보압딜)가

 페르난도의 손에 그라나다 시의 열쇠를 넘겨줌으로써,

무슬림 세력으로부터의 레콩키스타(국토수복운동)는

800년간의 투쟁 끝에 달성되었다.

 이베리아 반도를 거의 완전히 점령했던 무어인들은

차근차근 영토를 잃고 밀려나,

 1400년대에는 남부의 그라나다 지방만을

지배하게 되었다.

가톨릭 부부왕인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그의 아내 카스티야의 이사벨여왕은

1480년대에 그라나다를 공격했다.

무어인들은 내부 분열을 겪고 있었고,

1490년 여름 지역 대부분에 초토화 공격을 가한 후,

페르난도는 보압딜을 그라나다에 가두었다.

 

 

 

 

서로 종교적인 모욕을 주고받은 끝에

모스크의 벽에는

아베 마리아 (성모송) 기도문이 나붙었고,

무어인은 이를 당나귀 꼬리에 묶어 복수했다.

1491년 결정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무어인들은 추격당해 성벽 뒤로 몰렸고,

 2천 명의 사상자가 났다.

스페인인들은 무어인이

기아 상태에 이를 때까지 포위를 계속했다.

 협상이 시작되었고

 1492년 1월 보압딜은 알람브라 궁전의 보존과

신앙의 자유보장해 주거나,

기독교 통치 하에서 살기 원하지 않는 무어인들이

 북아프리카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가해 준다면

항복하겠다고 동의했다.

 

 

 

 

이사벨 1세와 페르난도 2세 가톨릭 부부왕

 

이사벨 1세(1451 - 1504)

트라스타마라 왕가 출신의

 카스티야 여왕(재위 :1474년 - 1504년)이다.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더불어

가톨릭 부부 왕으로 불린다.

 레온카스티야의 상속녀였던 이사벨은

아라곤페르난도 2세와 결혼하여 영토를 통합하고

공동 군주가 되어 에스파냐를 재통일하였다.

1492년에 이베리아반도 남부의

 이슬람교국인 그라나다를 정복하였고,

 로마 교황으로부터 가톨릭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내정면에서는 왕 직속군의 정비, 세제의 개혁,

귀족의 약체화와 관료화를 꾀하고,

근대적 중앙집권국가의 기초를 닦았으며,

특히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원조한 일은 유명하다.

그녀는 정치적 재능도 뛰어나

에스파냐 발전의 기초를 닦았고,

 참다운 경건함과 종교적 확신이 강하여

종교재판을 도입하였으며,

 유대인을 추방하는 한편, 속악에 물들었던 궁정도덕을

 소생시키기도 하였다.

 

 

 

 

그라나다 함락

말 탄 이사벨 여왕이 

보압딜에게서 항복을 받는 그림

 

지난 700여 년간 이베리아 반도는

카스티야, 아라곤, 그라나다, 포르투갈

네 왕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사벨 1세는 그라나다를 점령함으로써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은 자취를 감추었다.

 비운의 그라나다는 끝까지 저항하다

알람브라 궁전을 보존하기 위해 어느 순간 군대를 거두었다.

 이슬람 문명을 사랑하는 왕의 아름다운 결단이었다.

 이 결정적인 순간의 선택 덕분에 알람브라 궁전은

 스페인에 피어난 이슬람 문명의 꽃으로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지금도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카를로스 5세 (1500-1558, 재위 1516-1556)

 

에스파냐의 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이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서는 카를 5세이다.

1516년에 가톨릭 부부왕인 페르난도 왕이 죽고 난 뒤,

스페인의 왕위 계승권은 가톨릭 왕들의 딸인 후아나와

오스트리아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 펠리페

사이에서 낳은 카를로스에게로 넘어갔다.

 아라곤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의 왕위를 모두 물려받아

최초로 에스파냐 제국의 왕으로 즉위한 인물로,

에스파냐 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의 왕위에

공동으로 오른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페인어로 ‘황제’를 뜻하는 엘세사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1519년, 막시밀리안 1세가 서거했다

 카를로스 5세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합스부르크 왕조의 모든 영토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할머니 마리아 데 보르고냐로부터는

플랑드르와 프랑크 공국 및 보르고냐 백작령을,

외할아버지인 페르난도 왕으로부터는

카스티야-아라곤 연합 왕국과

나폴리, 시칠리아 및 세르데냐 등의 이탈리아 영토를,

외할머니인 이사벨라 여왕으로부터

 카스티야 왕국과 신대륙 및 아프리카 등의

해외 영토를 물려받았다.

즉 카를로스 5세는 스페인과 유럽의 주도권은 물론이고,

신대륙의 통치권과 함께 멕시코와 볼리비아, 페루에서

금광과 은광 채굴권까지 장악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 발보아가 1513년에 발견한

태평양과 필리핀까지도 그의 영토가 되었다.

이처럼 카를로스 5세는 근대에 존재했던

모든 제국들 중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을 지배했는데,

 이전의 그 누구도, 심지어 로마의 황제들조차도

그렇게 거대한 영토와 다양한 민족,

그리고 풍부한 재화를 한 손에

거머쥐지는 못했을 것이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의 옆 문

 

 이오니아 양식 기둥과

벽 장식이 섬세하고 우아하다.

 

 

 

 

카롤로스 5세 궁전은

부조화의 표상으로 회자된다.

그라나다가 낳은 세계적인 시인인

가르시아 로르카는 카를로스 5세 궁을

알람브라의 가장 흉측한 건물이라고 혹평했다.

 

 

 

 

카를로스 5세 궁전은

1층은 벽돌을 쌓은 듯 투박하고

2층은 당시 유행하던 르네상스 양식이다.

카를로스 5세가 스페인의 번영기이던

1526년 신혼 여행을 왔다가

주위의 회교 건축물에 대항하기 위하여

자신의 이름을 딴 궁전을 지었으나 자금부족으로

미완성으로 남은 궁전이다.

 

 

 

 

카를로스 5세 궁전 파사드

 

너비 63m, 높이 17m 규모의 파사드는

황제의 전쟁 승리 및 왕가의 상징 등을

원형 메달에 조각하여 장식하였고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이 서있다.

 

 

 

 

카를로스 5세 궁전 입구 파사드

 

 

 

 

 

 

 

입구 문을 들어가면

나오는 방

 

 

 

 

계단을 올라가면

커다란 원형 Patio를 볼 수 있다.

 

 

 

 

카를로스 5세 궁전 내부

 

높이 17m,

가로세로 63m의 정사각형의 외형에

내부에는 32개 기둥이 둘러싼 원형마당과

이를 둘러싼 2층의 회랑이 있다.

원래의 건축 계획은

건물 지붕을 돔 형태로 덮으려 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중단하여 미완성 상태라고 한다.

 

 

 

 

카를로스 5세 궁전 내부

 

1층은 도리아 양식,

2층은 이오니아 양식인

르네상스식으로 건축된 궁전이다.

 카를로스 5세가 이슬람 건축물에 견주기 위해

궁전 외부는 정사각형의 건물에

내부는 원형으로 건축한 독특한 궁전이다.

내부를 원형으로 만든 이유는

사각형의 이슬람 양식 정원과

반대로 하기 위해서란다.

 

 

 

 

카를로스 5세 궁전 내부

 

1층은 무료 관람이 가능한

스페인-이슬람 국립 박물관으로

알람브라 궁전 내에서 발굴한 유물을 비롯해

그라나다 시내의 저택들을 허물면서

발견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유물들 중에는 기둥, 타일, 도자기, 아랍 양식의

저택 천장과 창문 등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관람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높이 1.36m, 원둘레 2.25m에 달하는

14세기 알함브라 항아리이다.

 

2층은 그라나다파의 작품을 소장한

순수예술미술관인 베야스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에는 스페인 정물화의 대표화가인

산체스 코탄을 비롯하여

화가, 조각가 및 건축가를 겸했던

아론소 카노 등의 작품이 있다.

 

 

 

 

중앙에 있는 원 안에서

노래를 부르면

별도의 음향 시설이 없이도

주위로 잘 전달이 되는 구조라

소리가 울려서 크게 들린다고 한다.

지금은 야외 공연장으로 쓰이고 있으며,

매년 6월 말에서 7월에 걸쳐 그라나다 국제 음악제가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중정을  에워싸고

2층 구조의 회랑이 있는데

1층 기둥은 도리아식이고

2층 기둥은 이오니아식이다.

 

 

 

 

KBS 동영상 캡처

 

 

 

 

1층 기둥은 도리아 양식

 

 

 

 

2층 기둥은 이오니아 양식

 

 

 

 

이오니아 양식

 

 

 

 

2층 회랑 천장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건축가이자 화가인

 페드로 마추카가 1525년에 설계 착공하고

1550년 건축을 끝내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 루이스, 그리고 에레라 등에 의해 건축된

 스페인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물로,

 도리아식 기둥이 늘어선 파티오에서는

투우나 기사의 결투가 열렸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궁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이제 궁 밖으로

 

 

 

 

 

 

 

 

 

 

벽 아래쪽에 전승기념 부조를

도리아 양식으로 조각해 승리의 문을 만들었다.

황제는 엄격하고 중후한 도리아 양식으로

여왕은 우아하고 섬세한 이오니아 양식으로

묘사했다.

 

 

 

 

 

 

 

 

 

 

 

 

 

 

 

 

말고삐를 매 놓는 청동고리

 

 

 

 

카를로스 5세 궁전 외벽에는

말고삐를 매어 놓는 사자모양,

독수리 모양의 청동고리가 달려있다.

 

 

 

 

이제 알카사바로 향했다.

 

 

 

  

 

 

 

 

 

 

포도주 문 (PUERTA DEL VINO)

 

알카사바(성채)로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문

 

 

 

 

 

 

 

 

[참고: 두산백과, 스페인역사 다이제스트 100, EBS 동영상, 저스트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