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성 블라이세 성당, 롤랑(올란도)기사 상
2017년 4월 21일 금요일
발칸 9개국 여행 여섯째 날
크로아티아 - 슬로베니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 알바니아 -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 불가리아 - 루마니아
매체에서만 보다 내가 실제로 본
두브로브니크는
내가 그동안 여행하면서 봐 왔던,
사람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도심의 구시가지 중에서는
제일 아름다운 것 같다.
왜 버나드 쇼가 지상의 천국을 볼려면
두브로브니크를 보라고 했는지 알 것 같고,
그리고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지도 (퍼 온 사진)
서쪽으로 필레문, 동쪽으로 플로체문,
북쪽으로는 1900년대에 만든 부자문이 있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전역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다.
앞에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현재 대성당은 구 시가지의 랜드마크로,
사람들의 약속장소로 이용된다.
대성당 주변에는
종탑과 스폰자궁전이 위치해 있다.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성모승천 대성당)
7세기 비잔틴 양식
(건물의 지붕이 원형의 돔, 모자이크 장식)의 건축물이었는데,
12세기에 영국의 왕 리처드 1세에 의해
로마네스크 양식(창문 크기가 작고 둥근 아치형)의
건물로 재건되었다가, 1667년 지진으로 파괴된 뒤
1672~1713년까지 이탈리아 건축가
안드레아 불파리니와 파올로 안드레오티가
로마-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세웠다.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성모승천 대성당)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성모승천 대성당)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전설에 따르면 1192년 사자왕 리처드 1세는
제 3차 십자군 원정을 마치고 귀국 길에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되어 두브로브니크로 밀려와 구조되었다.
자신의 구조됨을 감사히 여긴 리처드는
비잔틴 양식의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는 설이 있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처럼 생긴 돔
대성당의 돔은
1667년 대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1672년부터 1713년까지
두 명의 이탈리아 건죽가에 의해 바로크양식
(불규칙적인 곡선과 곡면. 장식이 보다 화려한 형태)으로
재건되었다.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성모승천 대성당)
두브로브니크의 수호 성인
성 블라이세의 유물을 포함한
수많은 보물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성당 내부에는
성 브라이세의 유품과 은, 금 콜렉션을 비롯해
라파엘로의 '옥좌 위의 마돈나'와
제단 뒤쪽에 티치아노의 '성모승천'이 있다.
대성당 정면
대성당 내부
대성당 중앙제단
티치아노의 성모승천
중앙제단 뒤 이탈리아의 티치아노가 그린 성모승천.
티치아노(1488~1576)는 베네치아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라파엘로,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다.
성모승천은 티치아노가 1516년 베네치아
산타마리아데이프라리 교회의 제단화로 그려 큰 성공을 거두자
이 후 같은 주제로 몇 작품을 그렸다.
소제단
라파엘로의 옥좌 위의 마돈나
파이프 오르간
대성당 측면
루자 광장의 성 블라이세 성당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렉터 궁전 앞에 있다.
성 블라이세 성당
1368년에 건축 당시에는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혼합된 형태였으나
1715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훼손된 후
1717년, 약 11년간의 공사로 지금의 바로크 양식
(거대한 양식, 곡선의 활용, 자유롭고 유연한 접합 부분 등)
건물로 완성되었다.
성 블라이세 성당의 파사드
두브로브니크 모형을 들고 있는 성 블라이세의 조각상
두브로브니크의 성문과 주요 건물 정면 위에는
이 도시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
(블라시오, 블라시우스)상이 서 있다.
아르메니아에서 온 순교자로, 10세기 베네치아 군대가
배를 타고 이곳을 정복하기 위해 정탐왔을 때
이를 알려 도시를 구했다고 한다.
성 블라이세의 조각상
화재와 지진에서
기적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유물이어서
두브로브니크의 귀중한 보물이기도 하다.
금빛 주교관을 쓰고, 금빛 주교봉을 끼고
한 손에는 구시가의 모형을 들고 있다.
공화국 시절에는 화폐에도 등장하였고,
매년 2월 3일을 성 블라이세 축일로 정해
축제가 열리고 있다.
롤랑(올란도)기사 상
중세 유럽의 최대 서사시인 프랑스 무훈시
롤랑의 노래의 주인공으로
롤랑의 오른손에는 칼이, 왼손에는 방패가 들려있다.
롤랑이 들고 있는 검의 이름은 듀란달(뒤랑달)이며
천사가 그에게 하사했다고 한다.
동상의 발끝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이 있다.
롤랑(올란도)기사
프랑스 왕 샤를 대제의 조카인
8세기 기사 롤랑(오를란도브)이
큰 칼을 가슴에 세운 형상이다.
사라센족으로부터 두브로브니크를 지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그를 기리기 위해 이곳에 세워졌다.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는
중세 기사의 모범을 보여주는 롤랑의 기둥에는
자유를 상징하는 깃발이 달려 있다.
롤랑(올란도)기사 상
성 블라이세 성당 앞 루자광장 복판에는
국기게양대를 겸한 롤랑(올란도)의 기둥이 서 있다.
1418넌에 세워 라구사 공화국 게양대로 썼다.
1950년부터 시작된 여름 축제 때부터
이곳에 깃발을 달게 되었고
지금도 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공화국 시절의 국기를
게양하고 내리는 의식으로
축제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고 한다.
롤랑(올란도)기사 게양대
축제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국기 게양대인
라구사공화국의 올란도 게양대는
서쪽 필레문 앞에 있는 오노프리오 분수를 만들고
20km 수로를 놓아 식수를 끌어들인
건축가 오노프리오의 작품이다.
롤랑기사 상 기단
롤랑의 기둥 아래 기단은 팔각형으로
한 변을 롤랑상의 오른쪽 팔 길이 51,1cm에 맞추어
길이를 재는 단위로 삼아
상인들의 속임수를 예방했다고 한다.
51,1cm는 공화국 시절의 길이 단위인
1엘(ell)에 해당한다.
우편 스르지 산 정상에
십자가가 보인다.
거대한 화강암 십자가
발칸 정복에 나섰던
나폴레옹이 세웠다는 십자가를
유고내전 이후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다시 세웠다고 한다.
오노프리오 소분수
오노프리오 데 라 카바의 작품
시계탑 사이로 구 항구로 나가는 문이 있어,
두브로브니크의 아름다운 해안풍경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문으로 나가
스르지 산 전망대로 벤을 타고 갔다.
[참고 출처: 두산백과, 위키백과, 유네스코]
[서명 없는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
'크로아티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 성벽투어 (0) | 2017.07.13 |
---|---|
[두브로브니크] 성 도미니크 수도원, 성 요한 요새, 스르지산 전망대 (0) | 2017.07.13 |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0) | 2017.07.12 |
[스플리트]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0) | 2017.06.21 |
크로아티아 자다르에서의 식사 (0) | 2017.06.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