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성 도미니크 수도원, 성 요한 요새, 스르지산 전망대

푸른 바다. 2017. 7. 13. 16:29

두브로브니크 성 도미니크 수도원, 성 요한 요새, 스르지산 전망대

 

 

 2017년 4월 21일 금요일

발칸 9개국 여행 여섯째 날

 

 크로아티아 - 슬로베니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 알바니아 -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 불가리아 - 루마니아

 

 

두브로브니크 관광은

여러 선택관광 옵션이 있어

그것을 진행하다 보니

구시가지를 왔다 갔다 하느라

사진이 중복 되는게 많아 사진정리에

시간이 걸렸다.

 

 

 

 

두브로브니크 지구 분포도

 

 

 

 

이 문으로 들어가면

올드 하버 구 항구로 가는 문과

플로체 게이트로 가는 길이 나온다.

 

 

 

 

도미니크 수도원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 건축물 중 하나인 도미니크 수도원은

이탈이아에서 오는 도미니크회 수사들을 위해

14-15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로마네스크와 전성기 고딕, 르네상스및 바로크 등

여러가지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도미니크 수도원 남쪽 문

 

문 상층부의 바깥쪽 아치부분만

1419년에 더해진 고딕적인 요소이고

나머지는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는

7세기 라구사라는 도시를 형성하면서 시작된다.

12세기 말 두브로브니크는

지역 내 무역 중심지로 떠오르며

지중해와 발칸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고,

1205년에는 베네치아 공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1358년 자치권을 회복한 뒤로는

상업 중심지로 계속 부흥하며

예술, 과학, 문학이 번성하고

작곡가, 시인, 철학자, 화가들이 몰려들어

아드리아 해의 주요 문화 중심지로 떠오른다.

 

 

 

 

 

 

 

 

 

 

 

 

 

 

 

 

구 항구와 성 요한요새가 보인다.

 

 

 

 

레벨린 요새

 

1462년에 지어진 요새로

구시가 밖에 있으며 동쪽 방어가 목적이었다.

1538년에 확장하였다.

 

 

 

 

레벨린 요새를 통과하면

 

 

 

 

플로체 게이트

 

서쪽 필레 게이트로 처음에 들어와

구시가지를 보고

스르지 산 벤 투어를 하기위해

동쪽 플로체 게이트로 나왔다.

 

 

 

 

두드로브니크 동문인 플로체 문

 

 

 

 

성의 동쪽 성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성요한 요새

 

 

 

 

성요한 요새

 

올드 하버에서 길게 방파제가 뻗어나간 곳에

긴 반원형으로 서 있는 건물은 성요한 요새이다.

도시로 들어오는 해로를 차단해

보호하기 위해 16세기에 지었다.

지금은 해양박물관과 수족관으로 운영된다.

 

 

 

 

구시가지 동쪽 성곽 밖 항구 올드하버

 

 1991년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유고 연방 탈퇴를 선언하면서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막으려는

연방 세르비아군과 유고 내전이 터졌을 때

세르비아군이 두브보르니크를 공격하자,

서구 지식인들이 이곳 앞바다에 보트를 타고 나와

"제발 이 도시만은 파괴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해양도시에 대한

세계인들의 애정과 선망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말해준다.

 

 

 

 

두브로브니크 성 밖

 

 

 

 

스르지산을 오르는데는

보통 북쪽 부자의 문 근처에서

778m의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데

우리 일행은 케이블카 대신 가이드의 권유로

벤 4대에 나눠타고 스르지 산을 올랐다.

 

 

 

 

가이드가 케이블카보다는

벤을 타고 올라가 전망대에서 보는

전경이 더 좋다고 했다.

 

 

 

 

 

 

 

스르지산 전망대에 올라

아드리아해와 두브로브니크 전경을 보기 위해

벤을 타고 가고 있다.

 

 

 

 

벤 차창으로 본 아드리아해

 

 

 

 

두브로브니크 외항에 크루즈선이 떠 있다.

 

 

 

 

 

 

 

첫번 째 조망 할 수 있는 곳에 도착

 

 

 

 

멀리 또다른 광광지로 유명한

로크룸 섬이 보인다.

 

 

 

 

누드 비치가 있다 로크룸 섬

 

 

 

 

스르지산 전망대는

두브로브니크

최고의 뷰 포인트이다.

 

 

 

 

 

‘아드리아 해의 진주’로 불리는 두브로브니크에는

7세기에 도시가 형성되었다.

발칸과 이탈리아를 잇는 해상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이 도시 국가는

아드리아 해안에서는 유일하게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경쟁하였다.

두 번의 대지진과 수많은 외세의 침략이 이어지면서

도시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17세기 두 번째 지진이 발생하기 전

플라차 대로 주변에는 화려한 건물이 즐비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들은 지진 이후 복원한 것들이다.

 

 

 

 

붉은색 지붕과

푸른색 아드리아 해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내는 전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구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성벽과 요새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두브로브니크는 구시가지가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러나 1991년~1992년 내전 당시

세르비아군의 포탄 공격으로

구시가지 일부가 심각하게 훼손당하는

비극이 일어났으나 유네스코의

문화유산 복구 사업으로 대부분 복구되었다.

 

 

 

 

로브리예나체 요새

 

크로아티아는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는

꼭 한 번 방문하고 싶은 휴양지로 꼽힌다.

 플리트비체호수 국립공원이나

달마티아 해변에 자리한 두브로브니크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등

세계의 부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성요한 요새와 구 항구 올드 하버

 

짙푸른 아드리아 해, 중세의 붉은 고성,

이 성채 도시에 반한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 1950)는

이렇게 말했다.

지상에 진정한 천국이 있다면 바로 두브로브니크이다.

 

 

 

 

코발트빛의 아름답고 따뜻한 

두브로브니크 해변에는

부호들의 요트가 가득할 만큼

유럽 관광객들의 사랑을 듬뿍받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스르지 산을 오르는 케이블카

 

 

 

 

스르지산 케이블카

 

케이블카는 1969년 처음 만들어졌으나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당시 파괴되어

운행이 중지되었다가 2010년 복원되었다.

스르지산 정상까지 케이블카로

약 5~10분정도 소요되며, 30분마다 운행한다.

케이블카의 운행시간은 계절마다 다르다.

 

 

 

 

케이블카를 선택관광으로 신청했지만

벤 투어로 바뀌어 지면서 타지를 못했다.

 

 

 

 

 

 

 

 

 

 

대리석 묘지가 있다.

 

 

 

 

대리석 묘지

 

'1973.03.05~1992.05.3 로베르트 이부지치'

라고 새겨져 있다.

크로아티아군 163여단에 소속돼

싸우다 전사한 열아홉살 소년병의 무덤이다.

정부가 한 병사의 무덤만 상징적으로 세운 것인지

아니면 가족이 세운 것인지는 모르겠다.

 

 

 

 

전망대 건물

 

 

 

 

푸른 숲을 경계로 그 넘어는 보스니아 땅

 

 

 

 

화강암 십자가

 

높이 412m의 스르지 산 정상에

1808년 나폴레옹이 정복한 후 세운

하얀 십자가 

 

 

 

 

송전탑과 옛 요새

 

옛 요새는 전쟁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유료이다.

지하에는 1991년 구 유고슬라비아 내전당시의

비참했던 500여점의 사진과 전쟁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로 돌아가고 있다.

 

 

 

 

 

 

 

 

 

 

다시 동문인 플로체 문 앞

 

 

 

 

크로아티아 전통복장을 입은 분들

 

 

 

 

 

 

 

다시 플로체 문으로 들어간다.

 

 

 

 

성벽투어를 위해 다시 구시가지로

 

 

 

 

프란체스코회 수도원

 

자유를 제일 중요한 삶의 정신으로 생각했던

두브로브니크는 많은 시인과 작가를 배출해낸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두브로브니크에서 많은 장서와 초판본,

대 필사본들을 가장 많이 소장한 도서관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연유로 1860년대 많은 유명 문학 역사가들이

이 도서관으로 몰려들었다.

한번쯤 이곳에서 연구해 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는

도서관 관련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골목마다 기념품점,

카페, 식당이 즐바하게 늘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