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라 성(아그라 요새, 붉은 성, Agra Fort)
2017년 12월 3일 일요일
인도여행 다섯째 날 인도의 마지막 봉건왕조였던 무굴제국의 수도인 아그라에서 예전부터의 버킷 리스트인 타지마할을 감명 깊게 보고 난 뒤, 무굴 제국의 화려한 역사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요새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인
아그라 성을 보러갔다.
아그라 성에는 샤 자한이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되어
강 건너 타지마할을 보며
죽은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전해지는
무삼마 버즈가 있다.
북인도 여행 지도
델리-바라나시-카주라호-오르차-아그라-자이푸르-델리
아그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타지마할 / Taj Mahal (1983)
아그라 요새 / Agra Fort (1983)
파테푸르 시크리 / Fatehpur Sikri (1986)
타지마할에서
오토릭샤를 타고
아그라성으로 향했다.
타지마할 서문에서
걸으면 약 25분,
릭샤로 10분 거리이다.
아그라 성 (아그라요새, 붉은성, 아그라 포트)
타지마할의 북서쪽
야무나 강변에 위치한 아그라 성은
1566년,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인
악바르가 수도이전을 하며 건설한
무굴제국 당시의 왕궁이자 요새이다.
악바르 황제의 손자인 건축광으로 불리는
제5대 황제 샤자한은 타지마할을 건축함과
동시에 이 요새도 증축하여
화려한 궁전으로 거듭났다. 말년에는 아들들의 왕위 계승 싸움 이후
왕권을 잡은 막내아들인 아우랑제브에 의해
이 곳에 8년동안 유폐된 채 생을 마감하였다.
아그라 성
타지마할과 함께
1983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인도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무굴 제국의 화려한 역사를 나타내는
아그라의 대표적인 요새로,
성벽과 성문이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져
‘붉은 성’이라고도 불린다.
아그라 성은 높이가 20m, 길이가 2.5km나 되는
성벽이 이중으로 성을 감싸고 있으며,
성을 빙 둘러 해자가 있고
현재까지도 군사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아그라 성 (Agra Fort)
아그라 요새는
무굴 건축 양식의 아름답고 완벽한 본보기이며,
악바르 황제 시기부터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유적 중 하나이다.
성벽 둘레의 해자
아그라 성벽의 높이는 20m,
길이는 2.5㎞에 달한다.
건축에 남다른 애정과 재능을 보였던
샤 자한 시대에 궁성으로 개조되면서
화려한 대리석 건축물들이 대거 추가되고,
샤 자한의 아들 아우랑제브는
높이 20m, 길이 2.5Km의 외부 성채를 건설하고
이중으로 된 성벽 사이에 물길을 설치했다.
아마르 싱 게이트 (Amar Singh)
아그라 성에는 4개의 성문이 있는데
남문인 아마르 싱 게이트만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이 문은 1568년 악바르에 의해
완성되었기 때문에
일명 악바르 문으로도 불린다.
서문인 델리 게이트는
현재 군사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두번째 성문
아그라 성에 들어 갈려면
3개의 성 문을 지나야 한다.
외부와 연결되어 있는
남문 아마르 싱 게이트을 통과하고 나면
다시 아그라포트 성채 본곽의 문이 나온다.
여기에서 테러와 범죄 예방을 위해
경찰들이 소지품을 검사하기도 한다.
두번째 문을 통과 후
안쪽에서 본 성문
코끼리 문 (하티폴, Hathi Pol) 두번째 성문을 통과하면 옆으로 보이는 독창적이고 웅장한 두개의 기둥이 있는 문이다.
경사진 길
적이 두개의 성문을 통과하더라도 길을
경사지게 만들어 방어하기 좋게 만들었다.
이 경사로 양쪽 벽에 세로로 난 줄은
5cm 정도 파인 홈인데 이곳에
기름을 부어 경사로가 미끄러워 적이
함부로 오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야밤에 침입하더라도
소리의 공명으로 적군의 수를 알수 있도록
경사 길 옆에 방어벽을 구축하였다.
세번쨰 문
여러겹의 아치 문을
들어가면서 찍은 사진
성 안에 들어와 찍은 성문
다람쥐
아그라 성 안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아마르 싱 게이트, 델리 게이트를 비롯한
각 요소들이 자세히 표기되어 있다.
자항기르 궁전 (Jahangir Mahal)
이 모습이 아프간스타일
성 내부 동남쪽에 자리한 자항기르 마할은
악바르 황제가 건축하였으며
힌두양식과 아프카니스탄 양식(무굴)이
혼합되어 붉은 사암으로 지어졌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문화의 조화를건축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악바르의 뜻이 잘 드러나 있다.
대칭, 개방성, 기하학적 문양, 건물 위의
정자 형태 차트리 등이 특징적이다.
자항기르 궁전 (Jahangir Mahal)
무굴제국의 제3대 악바르 황제가
치스티라는 성자의 도움으로
어렵게 얻은 아들 살림(제항기르의 아명)을
위해 지은 건물이다.
성 안에서 가장 큰 건물인 자항기르 궁전은
악바르 대제의 아들인 자항기르와
궁중 여인들이 머물던 곳으로 추정된다.
악바르황제와 제항기르도 샤자한과 아우랑제브 만큼부자간에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황제와 아들과의 갈등은
무굴제국의 황제계승 방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
장자상속이 아니라 철저한 능력제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들들은 황제가 죽을 때를 대비해
개인 군대를 거느렸고,
정권이양은 골육상잔의 피를 부르며
한번도 평화롭게 이루어지질 않았다.
자항기르 마할 (Jahangir Mahal)
자항기르 궁전은
자항기르와 그의 부인 누르 자한의
궁전으로 사용되었다.
자항기르가 황제에 오른 것은 1605년이며,
그 후 1627년까지 이곳 아그라성에서
무굴제국을 통치했다.
1627년 자항기르의 뒤를 이어 등극한 샤자한도
1648년까지 이곳 아그라성에 살았다.
그는 북쪽 공간에 흰 대리석 궁전을 지었으며,
대표적인 궁전이 카스 마할, 디완 이 카스, 디완 이 암이다.
그러나 1648년 샤자한은 수도를
현재의 올드 델리인 샤자하나바드로 옮긴다.
그는 그곳에 아그라성과 같은 형태의
붉은 성(Red Fort)과 자마 마스지드를 지었다.
붉은 성은 무굴제국의 왕궁이고,
자마 마스지드는 델리를 대표하는 이슬람 사원이다.
자항기르 욕조
높이가 1.5m, 지름이 2.4m나 되는
커다란 목욕통으로,
황태자였던 자항기르가 이곳에서
장미수(Rose water)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욕조 계단
자항기르 마할 앞의
자항기르 욕조와 궁전 입구 문
자항기르 궁전 입구 문
전면을 붉은 사암으로 지었고
흰 대리석을 상감 처리했다.
파사드는 좌우 대칭으로 되어 있으며,
그 양쪽에는 차트리(작은 탑)가 올려져 있다.
힌두교 양식과 아프가니스탄 양식이 혼합돼 있다.
별 표시는 유대교를 뜻하는 것으로
악바르 대제의 종교관을 나타낸다.
그는 이슬람교도이면서도 모든 종교를
동등하게 대했으며 종교적 믿음을 존중했다.
그의 종교적 관용정책은 흰두교도의
관리등용정책과 함께 무굴제국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리고 각 종교의 족장들의 여인과의
혼인정책을 통하여 제국의 안정을 가져왔다.
구자라트 혹은 라자스탄 양식인
자항기르 궁전 내부
무굴식 문양
사암에 조각해서 새겨넣은
무굴식 문양
통풍 창
벽의 중간에 그물망을 만들어
바람이 통하게 만들었다.
불교의 흔적인 연꽃 문양
초기 무굴 양식 기둥
돌에 미리 조각을 한 뒤에
위치를 계산해 올려 짓는 방식으로
건설했다고 한다.
돌로 된 차양을 받치고 있는 까치발에는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이 빈틈없이 새겨져 있다.
힌두와 이슬람 건축의 혼합이다.
샤자한이 건축한 궁전과 앙구리 박
자항기르 궁전을 제외한 아그라 성
내부에 있는 흰 대리석 건물 대부분은
샤 자한 시대에 건설되었다.
건축을 즐기던 샤자한 통치시대
카스마할, 쉬시마할, 무함만 버즈의 팔각탑,
1637년 건립된 디완이 카스,
1628년 건축한 접견실 디완이 암,
1646년~1653년에 건축한
모티 마스지드(진주모스크) 등이
지어졌다.
사분 정원 무굴식 정원 앙구리 박 (Anguri Bagh)
포도나무 정원으로 현재 앙구리 박에는
포도나무는 없고, 화초들이 심어져 있다.
정원은 가로 68m, 세로 52m의 직사각형이고,
가운데로 폭 5.5m 십자형 길이 나 있다.
정원의 한가운데
수조 형태의 단이 만들어져 있다.
카스 마할과 골든 파빌리온
양쪽에 있는 황금색 3개의 지붕은
샤자한의 두 딸의 방인 골든 파빌리온으로
골든 파빌리온은
지붕의 네 모서리 부분이 처져 있는데,
이와 같은 건축양식은
벵골 지방의 민가 전통 건축형식을
궁전 건축에 채택한 것으로 매우 특이하다고.
앞 정원은 무굴식 정원인 앙구리 박(포도나무 정원)
카스 마할 (Khas Mahal)
샤자한이 만든 궁전을 보려면
포도나무 정원으로 불리는 앙구리 박을
통해 카스 마할로 들어가야 한다.
앙구리 박의 동쪽에는
황제와 황후의 거처인 카스 마할이 있고,
남쪽과 북쪽 그리고 서쪽에는
궁녀들의 거처인 쉬시 마할이 있다.
이들 왕궁은 1631년부터 1640년 사이
샤자한에 의해 건설되었다.
카스 마할 (Khas Mahal)
카스 마할은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성스러운 궁전이란 뜻으로,
아그라 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다.
앙구리 박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카스 마할 정면에 마당이 나타난다.
마당 한가운데 수조와 분수대가 있고,
그 앞으로 정면 5칸의 개방된 궁전 건물이 보인다.
인도의 궁전에서 볼 수 있는
양각으로 조각한 벽장식,
화려하게 상감한 피에트라 두라기법 장식,
격자창 등이 있다.
카스 마할 (침전)
야무나 강에 면해 있는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궁전인 카스 마할은
샤 자한 황제가 거주한
황제의 개인 처소로 사용되었다.
중정에는 사분정원을 만들어서
화단, 수로, 분수들을 설치하였다.
카스 마할 (침전) 내부
화려한 샤자한 침전
대리석에 꽃과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무늬를 수 놓았다.
원래는 보석들이 박혀 있었으나
영국 식민지 시절 군인들이
다 뜯어 갔다고 한다.
카스 마할 안에서 바라다 본 정원
사진 뒷쪽 정원이 무굴식 정원인 앙구리 박
카스마할 중정에는
사분정원을 만들어
화단, 수로, 분수들을 설치하였다.
황금색 지붕의 골든 파빌리온
카스 마할 양쪽에 있는
샤자한의 두 딸 자하나라 베굼과
로샤나라 베굼이 살았던
황금색의 지붕으로 이루어진
골든 파빌리온은
황금색 지붕으로 인해 골든 파빌리온이란
이름이 붙었다.
골든 파빌리온
지붕의 네 모서리 부분이 처져 있는데,
이와 같은 건축양식은 벵골 지방의
민가 전통 건축형식을
궁전 건축에 채택한 것으로
매우 특이하다고 한다.
골든 파빌리온 (Golden Pavilions)
샤 자한에게는 큰딸 자하나라 베굼과
막내딸 로샤나라 베굼
두명의 딸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를 폐위시켜 이곳에 유폐시킨 아우랑제브는
끊임없이 아버지를 죽이려는 시도를 자행했고
이에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이해하는 두 딸은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를 지키려했다고 한다.
특히 큰 딸 자하나라 베굼은
아버지에게 가는 모든 것 (특히 독살을 대비하여)을
사전에 점검하였다고 까지 한다.
샤 자한이 죽고 그의 시신이 타지마할
그의 사랑 하는 아내의 무덤 곁에 묻히게 된 것도
다 큰 딸의 노력 덕분이었다고 한다.
기하학적 무늬와 꽃무늬로 장식
좌측 디완이 카스, 우측 무삼만 버즈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
카스 마할 옆에는
8각형의 탑 형태 건물인 무삼만 버즈가 있다.
이곳은 내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건물 한가운데
가로 12.3m 세로 6.7m의 분수가 있고,
그 둘레에 피에트라 두라로 장식한
기둥과 벽 그리고 방이 위치하고 있다.
내부 장식은 카스 마할 못지않게 화려하다.
그것은 카스 마할보다 보존이 잘 되었기 때문이다.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
포로의 탑이라는 뜻의 무삼만 버즈는
8각형의 커다란 탑으로
타지마할을 짓기 위해 국가 재정을
바닥낸
샤 자한이 1658년 말년에셋째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되어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샤 자한은 8년 동안 감금 생활을 하며
사랑하던 아내의 무덤인 타지마할을 바라보다가
1666년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관에 안치되어
야무나 강을 통해 타지마할까지 운구된 뒤
뭄타즈 마할 옆에 안치되었다.
상감 기법으로 꾸며진
이슬람의 아라베스크 문양
대리석에 꽃 등의 문양을 판 뒤
그 홈에 각각 다른 색의 돌이나 보석들을
박아 넣는 피에트라 듀라 기법(상감기법)으로
꾸며진 벽면과 기둥
피에트라 듀라 기법
(상감기법)으로 꾸며진 기둥
분수
건물 중앙에 더위를 식히기 위한
가로 12.3m 세로 6.7m의 분수가설치되어 있다.
물이 흐르게 하여
냉방효과를 만든 구조물
무삼만 버즈에서 보이는 타지마할
이곳 테라스에 서면
샤 자한이 아내 뭄타즈 마할을 애도하며 만든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이 보인다.
샤 자한은 날씨가 맑은 날이면
이곳에서 타지마할을 보며
죽은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무삼만 버즈 테라스
아버지를 유폐시키고
권좌를 차지한 아우랑제브는
무굴제국을 90살까지 50년을 통치했다.
그러나 제국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가졌던
그는 제국 멸망의 원인이기도 했다.
선대왕들의 관용정책을 무시하고
비이슬람교 신자들에게
지즈야인두세를 부활시키는가 하면,
시크교 지도자를 잡아 잔인하게 처형하고
힌두교도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30년 넘는 세월을 소진했다.
내란과 저항을 거듭하던 제국은
결국 때마침 쳐들어온 페르시아와 아프간 세력에 의해
18세 중엽 몰락당하고
무굴제국은 델리 주변 소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우랑제브는
아버지 샤자한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무삼만 버즈 아래 밀림수풀에는 사자를,
앞의 야무나 강에는 악어를 풀어놓고,
여름에는 짠맛 나는 우물물을
마시게 했다고 전해진다.
디완 이 카스 (Diwan i Khas)
무삼만 버즈 옆으로 있는
디완이카스는 황제의 사적 업무 공간으로
1635년 샤자한에 의해 완성되었다.
중요한 고위 관리나 외국 대사들을 만날 때
개인접견실과 연회 장소로 사용하였다.
대신들과 만나는 외부의 개방된 홀과
황제의 집무실인 내부의 폐쇄된 홀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는 1634년에 만들어진 공작 왕좌가 있었는데,
1648년 수도를 델리로 옮기면서 레드 포트로 옮겨졌다고 한다.
등받이가 공작의 깃털 모양을 본 뜬 이 옥좌에는 코이누르 (빛의 산이란 뜻)란 희귀한 다이아몬드가 장식되어 있었지만 인도의 영국 동인도회사에 의해 영국으로 건너가 왕관 장식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디완이 카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던 이 곳엔
실제 루비와 사파이어 같은
호화로운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인도 독립전쟁 때 대부분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란 테헤란 박물관의 공작좌(Peacock Throne) 모조품
샤자한이
타지마할 2배 비용을 들여 만들었다는
유명한 보석장식의 황제의 옥좌, 공작좌는
디완이 카스에 놓여있다가
1660년 샤자한의 아들 아우랑제브가
왕좌를 델리의 붉은 성으로 옮겼고,
(델리의 붉은 성 안에 있는 디완이 카스가
화려함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가장 큰 이유는
건물 안에 있던 황제의 옥좌, 일명 공작좌 때문이다.)
의해 약탈당해 이란의 테헤란으로 옮겨졌다가
1747년 그가 암살되면서 공작좌의 최종 소유자였던
쿠르드족이 등받이의 보석이 탐나 의자를 분해해버렸다.
현재 이란의 테헤란 박물관에 공작좌의
모조품만 전시되어 있다.
공작좌는 1톤이 넘는 순금에
루비,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진주 등
보석만 230Kg 이상이 박힌
높이가 2m에 가까운 왕좌로
은 계단이 있으며 보석 박힌 황금 다리가 지탱한다.
공작 두 마리가 의자 양옆을 감싸고
왕좌에 활짝 편 2개의 공작 꼬리가 있는데
황금과 법랑을 입히고 총 230kg에 달하는
다이아몬드, 루비 등 보석으로 장식했다.
제작기간만 7년이 들었고 비용은
타지마할 건축비의 두 배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공작좌를 장식했던 코이누르 다이아몬드
구왈리오르 영주(라자)가
무굴제국 초대 술탄인 바부르에게 가보였던
다이아몬드를 선물로 바쳤는데,
한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라고 알려졌던
바로 빛의 봉우리인 191캐럿의 코이누르였다.
코이누르는 샤자한이 무굴황제의 왕좌인
공작좌에 장식하였으나
무굴제국이 혼란속에 멸망한 후
공작좌에서 분리되어 여러 단계를 거쳐
1850년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전해졌으며
이후 109캐럿으로 다시 컷팅되어
영국 왕후의 왕관을 장식하게 되었다.
현재는 왕실보물로서 런던탑에 전시되어 있다.
영국 여왕 왕관에 장식된 코이누르 다이아몬드
디완 이 카스 밖에는
흰색과 검은색의 대리석 판이 있는데,
그중 검은 색 판은
자항기르의 왕좌로 알려져 있다.
2층 짜리 마치 바완과 레이디 바자르
디완 이 카스 앞쪽에 있는
이 건물은 가운데 잔디 광장이 있고,
그 주변을 아케이드 형태로 만들었다.
이곳 1층 넓은 광장에
시장인 레이디 바자르가 형성되고,
무굴 왕실의 궁녀들이 2층에서 내려와
여성 상인들에게 물건을 사곤 했다고 한다.
남성은 금지 구역이었다고.
카스 마할 앞 사분 정원인
무굴식 정원 앙구리 박(포도 정원)
13세에 아버지 후마윤의 죽음으로
왕이 된 이후로 광대한 영토확장 뿐 아니라
종교융합과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대단한 업적을 남겨
칭송 받는 악바르 대제는 이곳에
궁중의 여인들이 사용하도록
2개 층으로 된 미로같은 방들과 통로들을
만들어 놓고 결혼정책으로 혼인한 후궁과
궁녀들을 500명이나 두었다고 한다.
내부 궁전을 보고
외부 궁전인 디완 이 암으로 나온다.
아그라 성 디완이 암(Diwan i am)
왕의 일반 접견실인 디완 이 암은
높이 7m에 이르는 건물로
기둥이 정면 10줄, 측면 4줄인
개방형 건물이다.
내부는 27개 공간으로 나눠진다.
초기에 목조 구조물로 만들었으나
붉은 사암으로 재건축한 뒤
다시 하얀색으로 회칠을 하였다.
디완이 암 (Diwan i Am)
디완 이 암 건물은 서향으로 있고,
그 앞에 커다란 운동장을 설치한 형태다.
디완 이 암의 남쪽으로는 정원을 꾸며
기본적으로 정원의 바닥에 잔디를 깔고
야자수 등 나무를 심어 조경을 했다.
디완 이 암 역시 샤자한에 의해 1630년대 지어졌고,
대중이 참가하는 공식적인 의전과
행사 장소로 사용되었다.
다엽 아치와 겹겹의 아치들이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디완 이 암(공적인 접견실)
왕의 공식 접견실 디완이 암 (Diwan i Am)
1628년 샤자한에 의해 건립된 디완이암은 왕의 공식 접견실로 황제가 사무적인 일을 보거나 백성들의 탄원을 듣던 곳이다. 내부 장식은 디완 이 카스나 카스 마할처럼 화려하지 않고 단순한 편이다.
공작의 꼬리털 모양을 한
무굴양식 아치가 매우 아름답다.
왕의 공간
중앙 벽면에는 왕이 자리했던 공간으로
이곳에 황제가 나와
건의사항을 듣거나 사무적인 일을 한 곳이다.
삼면이 열려있는 구조이면서
40개의 기둥이 27개의 별자리를
상징하는 구획으로 나뉘고,
메카를 향해 서쪽으로 열려 있다.
기둥 사이의 구조는
공작 꼬리 모양이라고.
모티 마스지드(Moti Masjid)의 지붕
아그라 성 안에는
3개의 아름다운 모스크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1648∼1655년에
샤 자한이 세운 모티 마스지드이다.
모티 마스지드는
흰 대리석으로 만든 아름다운 모스크로
진주
모스크라고도 불리는데일반 백성들이 예배를 보던 곳이다.
이외에도 아우랑제브 치세(1658~1707) 때 만든
궁녀들을 위한 사원인 나기나 마스지드(보석 모스크),
황제 자신이 예배를 보던 황제 개인 예배실로
규모가 작고 돔 지붕이 없는
미나 마스지드(주옥 모스크) 등이 있다.
모티 마스지드(Moti Masjid)
하얀 지붕의 대리석 건물
모티 마스지드(Moti Masjid)는
건물 전체가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지붕 위에는 차도리가 늘어서 있어,
완벽한 조형미를 자랑하고
무굴건축양식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진주 모스크는 일반 백성이 예배를 보던 곳인데
현재는 일반인들의 관람이 금지되어 있다.
존 러셀 콜빈의 무덤
디완이 암 바로 앞에 놓여진 이 무덤은
영국의 인도 북서지역 부총독을 지냈던
존 러셀 콜빈의 무덤인데,
1857년 인도 제1차 독립전쟁인 세포이 항쟁 때
아그라 성에서 옥쇄한 후
그의 유언으로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디완 이 암의 남쪽으로는 정원을 꾸며
기본적으로 정원의 바닥에 잔디를 깔고
야자수 등 나무를 심어 조경을 했다.
아그라 성을 나가기 위해
다시 성문을 통과하고 있다.
성 문의 중간 부분
성 문을 빠져 나온 뒤
Fort, Palace, Castle의 차이점은?
인도는 물론 외국을 여행하면서 성들을 많이 보게 된다.
한국어로는 모두 ‘성’이라 부르는데 이곳들의 영문 표기를 보면
포트, 팰리스, 캐슬로 나뉘어져 있다.
그 차이점을 구분해 보면,
첫째로 Fort는
전투목적 및 군사들이 상주하는 공간이 배치되어 있고,
성 앞에는 ‘해자(물 웅덩이가 성 외곽을 감싸는 것)’가 있다.
또한 성에 들어갈 때는 이 해자를 건너는 다리를
성의 정문에서 내려줘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아그라의 아그라성, 유럽의 대부분 성들이 이에 속할 것이다.
둘째로 Palace는
당시 왕(마하라자)이나 왕족들의 주거공간과
연회공간, 손님 접대를 위한 공간이 위치하며,
성 외곽에는 해자가 없다.
군사들도 있으나 전투목적의 성은 아니다.
팰리스라는 명칭이 붙은 곳은
공통적으로 대부분 화려함을 자랑하며
과거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왕궁으로 사용되는 성들이 많다.
자이푸르의 City Palace가 좋은 예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복궁 역시 Palace이다.
Castle은
Fort와 Palace의 절충형이라 할 수 있으며
다목적․다기능의 성이라 생각하면 된다.
군사 및 전투적인 목적(해자가 있는 성도 있다)과 함께
왕의 주거공간, 연회공간은 물론 위에 위치하는 공통점이 있다.
영국의 에딘버러 성,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같이
유럽에 있는 성이 대부분 Castle이라 할 수 있다.
아그라 포트 입구 거리에
악바르 황제상으로 추정되는 동상
[참고 문헌 발췌: 두산백과, 인도의 건축, 유네스코 세계유산, 저스트 고, 프렌즈]
[서명이 없는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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