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원
북경여행 3일째인 12월 12일 토요일은 호텔 조식후
1998년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그 유명한 서태후의 이화원을 둘러보았다.
이화원 동궁문 - 인수전 - 지춘정 - 낙수당 - 장랑
페키지 여행의 한계로 일부분만 보았다.
중국 최대의 황실 정원으로 일컬어지는 이화원은 베이징 중심부에서
북서쪽으로 약 16km 거리에 있으며 총면적이 290헥타르에 이르는 광대한 공원이다.
1764년에 청 건륭제가 청조의 별궁으로 지으면서 청의원이라 고치고 , 1860년에 제2차 아편전쟁으로 황폐화되었다.
그 뒤 1888년에 서태후가 해군예산 30만 은을 유용하여 다시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으며,
1998년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출처: 테마백과)
청 도광이후 국세가 약해지면서 청의원은 점차 방치되기 시작하였고,
함풍 10년(1860) 제2차 아편전쟁시 텐진조약의 비준을 강요하는 영불연합군 8만이
베이징 서쪽 교외의 원명원을 불태웠을때 이곳도 약탈당하고 불태워졌다.
광서 10년에서 11년(1884~1895) 자희태후(서태후)가 은퇴하며 이곳에 머물자
광서제는 다시 청의원을 중건토록 하고 건축군을 복원하며
쿤밍호 주위 사방에 담장을 쌓고 이허위안(이화원)으로 개칭하여 궁궐로 삼았다.
광서 26년(1900) 원내 건축 및 문물은 8국연합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2년후 다시 복구되었다.
인수전
이화원 동궁문을 들어서면 광서제와 서태후가 집무를 보던 궁궐 건물인 인수전이 있다.
원래의 이름은 근정전으로, 1860년에 소실된 후 광서제때 재건되면서 인수전이라 개칭하였는데,
어진 정치를 베푸는 자는 장수한다는 뜻이다.
인수전은 휴식을 취하던 공간이 아니라
외국사신 접견 등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던 공간으로 화려하지는 않다.
인수전 앞 물항아리와 용과 봉황에는 天地一家春 (천지일가춘)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함풍황제가 세상에서 서태후가 가장 아름답다는 의미로 하사한 것인데,
서태후가 이를 기념하여 새겨 놓은 것이다.
이는 서태후의 수유기간에 함풍제가 네명의 미인을 사랑하였는데
이에 서태후가 심한 질투로 소동을 일으키자
함풍제가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물한 것이라 한다.
황룡과 봉황상
인수전 앞에는 궁궐 건물들 처럼 청동으로 만든 중국 신화속의 동물인
황룡,봉황,기린상과 정원을 꾸미는 화려한 원림치석(수석)을 전시해 놓고 있다.
전설의 동물 기린상
오색 찬란 화려한 빛깔의 털을 가지고 이마에는 기다란 뿔이 하나 있는 외뿔잡이 동물이다.
사슴의 몸에 소의 꼬리, 말과 비슷한 발굽과 갈기를 갖고 있다고 알려진 상상 속의 동물이다.
예로부터 용, 거북, 봉황과 함께 사영수(四靈獸)를 이루어, 신성한 동물로 인식되었다. (출처:네이버캐스트)
인수전 앞 봉황과 황룡상
보통 궁궐이라면 대부분 문쪽에 황제를 상징하는 용을, 그옆에 황후를 상징하는 봉황을 놓기 마련인데
이곳 이화원 그중에서도 정무를 보살피던 인수전 앞에 위치가 바뀌어져 있는 것은
서태후가 청나라의 실권은 황제가 아니라 나라는 사실을
이곳에 오는 관료나 사신에게 보이기 위해서이다.
앉아서 정무를 보던 곳
이화원 인수전을 보고 곤명호수로 나가는 길에 보이는 문창각
건륭제때 문운이 높아지길 기원하는 뜻에서 학문의 신인 문창제군에게 봉헌된 건물이다.
멀리 지춘정 입구에 높이 16m의 문창각이 보인다.
이화원 정문에서 인수전을 통해
처음으로 곤명호수를 볼 수 있는 장소에 문창각과 여러 건물들이 있다.
곤명호수 동쪽의 이화원에서 맨처음 봄을 맞이 한다는 지춘정
수양버들이 있는 작은 두개의 섬으로 입구에 있는 인수전을 통해서 들어 올 수 있다.
문창각에서 다리를 건너면 지춘정이 있다.
지춘정이 있는 작은 섬에는 많은 수양버드나무가 있으며,
지춘정 주변의 얼음이 풀리면 봄이 온다는 뜻으로 이 곳의 이름이 지춘정이라 한다.
중국의 정자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지붕이 이층으로 되어 있다.
곤명호
이화원은 전체의 3/4 가량이 호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호수를 곤명호(昆明湖, 쿤밍)라고 부른다.
땅을 파서 만든 거대한 인공호수인데 직접 보면 마치 바다와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곤명호라는 이름은 한나라 무장이 장안의 쿤밍 연못에서 군대를 훈련시켰던 고사에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곤명호를 세우려고 파낸 흙을 쌓아 올린 것이 공원의 북쪽에 있는 만수산(완서우)이다.
이 만수산 자락에 이곳 건축물의 대부분이 들어서 있고
이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남으로 곤명호를 바라보며 만수산 자락에 있다.(출처: 테마백과)
곤명호수 남쪽으로 아름다운 다리 십칠공교와 남호도
곤명호수 가운데 조성된 인공섬인 남호도 안에는 함허당, 월파루, 감원당이 있으며.
동북 구석에는 제취원이라는 작은 정원이 있다.
남호도 가운데의 함허당에서는 서태후와 황제가 해군들의 훈련을 관람했다고 한다.
남호도와 곤명호수 동쪽을 연결해 주는 십칠공교는 청의 건륭제 재위 기간에 축조되었으며,
중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석교로 17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고 넓이는 8m,길이는 150m에 달한다.
석조다리 양 옆 난간 위에는 크기와 생김새가 각기 다른 돌사자 544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17공교는 황제가 배를 타고 곤명호를 유람할 때 그 아래를 지나 다녔는데 좌우에서 세었을 때
모두 황제의 숫자인 9가 되게 하기 위해 일부러 17개의 구멍을 만들었다는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곤명호는 도교의 一水三山 (일수삼산)의 원칙에 따라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각에는 신선의 섬인 봉래, 방장, 영주를 상징하는 인공섬이 만들어져 있다.
만수산 불향각
이화원 만수산 남쪽 거의 모든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불향각은
거대한 팔각형 모양의 3층 목탑 형태로 티벳 라마불교 사원의 모습을 하고있는 건물이다.
이화원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1층에는 운외천향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천수천안보살이, 2층에는 청 건륭제때의 삼세불상,
3층에는 불향각의 건축예술을 전시하고 있다.
최상층은 천단공원이나 자금성에서 황제를 상징하는 금으로 도금된 꼭지모양의 장식을 하고 있다.
불향각 뒷편으로 보이는 지혜해 건물
불교 건축물로서 불향각 위쪽 방향의 최고점에 위치하고있다.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침공했을때도 불상의 머리부분을 제외하고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부처의 지혜가 끝없이 무한하다는 의미를 지칭하고 있으며 만수산 중턱의 절벽에 위치한다.(출처:두산백과)
이화원 만수산 정상에는 중향계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패방이 있고
그너머로 관세음보살을 모신 불교전각인 지혜해가 있다. 만수산에서 가장 높은 부분에 있는 건물이다.
목조건축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목재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벽돌과 유리기와 등으로 지은 건물로 벽면에 감실을 두어 불상을 모시고 있다.(출처: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
낙수당
서태후가 평소에 기거하던 장소이다. 정전, 와실, 기거실 3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태후는 오래 살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는데,
낙수당 (즐겁게 장수하는 곳) 이름처럼
당대 평균 수명이 40대였다는데 70이 넘게까지 살았으니 장수한 셈이다.
1903년 중국 최초로 전등이 가설된 곳이라 한다.
이 전각 안에는 일렬로 늘어 선 유리병풍이 압권이라는데
내부가 공개되지 않아 보지 못했다.
낙수당은 대형 사합원(베이징의 전통 주택양식)으로 서태후의 침전이다.
대전은 붉은 기둥에 회색지붕으로 조형이 특이하고 웅장 화려하다.
낙수당은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계곡의 물이 낙수당 아래로 흐르게 설계해서 시원했다고 한다.
낙수당의 중앙에 있는 방이 서태후가 기거하던 곳이다.
서태후가 하루 식사하는데 드는 비용이 은 60냥이 들었다고 하는데,
은 60냥이면 당시에 쌀 45가마 정도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요리사만도 84명이었으며 그밖에 다과나 유제품 등을 만드는 사람까지 합하면
무려 120여명이 서태후의 입맛을 시중들었다고 한다.
낙수당 앞의 수목자친은 호수와 접점에 세워진 전각인데,
배를 이용해 이화원을 왕래했던 서태후가 용선을 타고 내리던 부두 겸 낙수당의 호숫가 정문이다.
낙수당 뒷편의 건물들은 공개되어 있지 않다.
장랑의 시작인 요월문
장랑
이화원 입구에서 들어오면 동쪽편 요월문에서 시작하여 서쪽 석장정까지 연결된 긴 복도인데
서태후가 이 복도를 걸으면서 곤명호수와 채색되어 있는 그림을 감상했다고 한다.
이화원 내부에는 서태후가 다니는 길을 따라서 지붕이 있는 복도가 조성되어 있다.
장랑
이화원 장랑은 배운전 앞 패루를 중심으로 곤명호 호숫가에 조성되어 있는
273칸의 세계에서 가장 긴 회랑으로 14,000쪽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곳에 있는 14,000여 폭의 장랑회화는 소식채화에 속하며, 중국 목조건축물에 꾸며진 장식예술이다.
그림의 주제는 자연과 동물, 인물, 전기 등 중국고전문학의 내용에 등장하는 것이다.
건축형식이 독특한 장랑은 회화가 다채롭고
그 수 또한 많아서, 세계에서 가장 긴 화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복도 난간은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 역활을 하기도 한다.
이화원의 절경중 또 하나의 백미가 장랑인데,
장랑은 대치형으로 이루어진 만수산 아래의 건축구조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역활을 하며,
세계의 화랑중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옆의 광활한 곤명호를 비와 햇빛 등을 피하며 마음껏 볼 수 있는
천간낭하라고 불리는 장랑
728미터에 이르는 장랑은
중국 고전 문학에 나오는 장면들을 묘사한 1만 4천여 점의 회화로 정교하게 장식된 산책로이며 화랑이다.
복도 천정난간에는 역사적 인물이나 서유기와 같은 민담, 삼국지연의 등에 나오는 장면이,
기둥에는 새와 꽃, 강남의 풍경 등이 그려져 있다.
장랑 중간 중간 솟을대문처럼 천정이 솟은 곳이 있는데 (여러개의 기둥을 쌓아 올린 감입천정)
그곳에 편액이 있고 편액 모양이 직사각형이 아니고 박쥐모양을 비롯하여 모양이 다양하다.
벽면에는 극채색으로 산수화, 화조화, 신선도 등 많은 그림을 그려 놓았다.
서태후의 침전 겸 집무실인 낙수당에서 시작되는 장랑은
동쪽 요월문에서 시작하여 서쪽 석장정까지 총 길이가 728m, 모두 273칸으로 되어 있으며
중간에 유가, 기란, 추수, 청요의 팔각정자는 춘하추동 사계절을 상징한다.
또한 강가와 산발치를 돌아가는 건축양식은 강호의 멋과 산색을 조화시킨 것으로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굴곡의 꺽임을 두었는데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이용하여 기막힌 절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서태후가 지나다니는 긴 복도가 조성되어 있다.
외부에서 본 장랑
곤명호수의 물길이 열린다면 아주 아름다웠을 장랑 옆 수로
장랑 옆으로 측백나무를 심어 또 하나의 측백나무 숲으로 된 긴 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화원 건물들과 곤명호수 곳곳에 공안들이 지키고 있다.
이화원은 서태후의 여름 피서지이다.
이화원 지도
서태후(자희황태후) 청나라 말 최고의 권력자
1835.11.29 ~ 1908.11.15
아름다운 자태, 불타는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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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마저 희생시킨 권력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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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위의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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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법자강운동의 실패와 수렴청정의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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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와 향락의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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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과 비단으로 치장한 서태후. 손톱에는 비취보호판을 달아 매우 길고 뾰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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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운명과 함께한 서태후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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