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사운드 오브 뮤직

푸른 바다. 2014. 7. 16. 22:56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und of Music)

 

 

 

1965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

줄리 앤드루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엘리너 파커, 리처드 헤이든 출연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잘츠카머구트를 여행하면서

오래전 초등 5학년때 부산 중앙동 국제극장에서 봤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다시 떠 올리게 되었다.

줄리 앤드류스를 좋아했던 중학생 소녀 시절 보수동 헌 책방 골목을 헤메며,

일본잡지 스크린을 구입해 사운드 오브 뮤직 장면들을

스크랩하며 그 노래들을 흥얼거리던 시절의 앨범을  책장 구석에서 꺼내

사진을 찍고 올려본다.

 

 

스크랩한 앨범

 

스크랩한 앨범

 

스크랩한 앨범

 

줄리 앤드류스

 

다시 앨범을 꺼내 보니 40년이라는 세월이

소리없이 사라짐을 느낀다.

 

 

 1965년

 줄리 앤드류스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주연을 맡아 영화 뮤지컬로 개작되었고,

아카데미 5개 상을 받았으며 1965년도 최우수 영화로 선정되었다.

 

 

폰 트랍 가족의 스토리를 담은 로저스와 햄머슈타인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1965년에 제작되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타 트렉' 등을 감독한 거장 로버트 와이스가 감독하고

 줄리 앤드류스와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주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사운드 오브 뮤직'을 영화한 것이며

 브로드웨이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은 1949년에 나온 마리아의 자서전적 저서인

 The Story of the Trapp Family Singers(트랍가족싱거스 이야기)를 기본으로 한 것이다.

그 전에도 마리아의 이 저서를 기본으로 하여 영화가 만들어 졌지만

아무래도 1965년도에 제작된 줄리 앤드류스의 영화를 따라갈 작품은 없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는 여러 곡의 아름다운 노래가 나온다.

Edelweiss, My Favorite Things, Climb Ev'ry Mountain,

Do-Re-Mi, Sixteen going on Seventeen, The Lonely Goatherd 등이다.

[출처: 위키백과]

 

 

 

 

줄거리

이야기는 스위스 알프스 산맥의 아름다운 영상에서 시작된다.

 마리아는 "Sound of Music" 을 부르면서 들판에서 뛰놀다가 성당의 종소리를 듣고 미사에 늦은걸 깨닫고 뛰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수녀원에서는 수녀들이 마리아를 찾아 헤매다가

수녀원장 아베스 수녀에게 마리아의 장점과 단점을 노래("Maria")로 표현한다.

수녀원장 아베스 수녀는 마리아의 행동이 개선되길 바라면서 마리아를 어머니를 여읜 일곱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는

 예비역 대령 루트비히 폰 트랍의 집의 가정교사로 들여 보낸다.

집에 도착하자 예비역 폰 트랍 대령이 아이들을 군대식으로 엄격하게 다루는 걸 발견한다.

집의 아이들은 처음에는 마리아에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첫날밤 천둥이 몰아치자 아이들이 하나 둘씩 마리아 방으로 온다.

마리아는 "My Favorite Things"를 부르며 애들을 달래준다.

 마리아가 집으로 온 뒤 얼마 안 되어 폰 트랍 대령은 바로 빈으로 떠나고 마리아는 애들에게 옷도 만들어주고 재밌는 추억들을 많이 선사하며 노래도 가르쳐준다.("Do-Re-Mi")

대령은 남작 부인과 결혼할 마음으로 아이들을 소개시켜 주기 위해 둘이 같이 돌아온다.

 대령이 돌아오자 애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에 놀라지만,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금세 마음을 푼다.

더 나아가, 아이들은 준비한 인형극으로 남작 부인을 반긴다.

인형극에 대한 답사로 폰 트랍 대령은 몇 년만에 ("에델바이스") 를 부르며 예전의 활기를 되찾는다.

 곧 이어 대령은 집에서 파티를 열게 되는데 이때 대령과 마리아는 오스트리아 포크 댄스를 추다가 마리아의 얼굴이 붉어진다.

이날 마리아는 폰 트랍 대령에 대한 감정이 생기는 것을 느끼고 작별인사도 없이 집을 떠나 수녀원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은 마리아를 그리워하며 마리아를 만나기 위해 수녀원으로 가는데 마리아는 만나주지 않는다.

마리아도 아이들을 그리워하다가 자기 행동에 책임감을 지기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마리아가 집으로 돌아오자 대령은 남작 부인과 결별을 고하고 마리아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신혼여행을 다녀오자 대령은 독일 해군에 소집명령이 떨어진다.

오스트리아에 대한 애국심을 가진 대령은 소집명령을 피해 아이들과 피난계획을 세운다.

일가는 가족 합창단을 만들어 오스트리아를 탈출한다.

이는 대령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면 안 그렇잖아도 어머니까지 여의던 상황에서 혹시 대령까지 죽게 되면

 7명의 아이들이 모두 고아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령은 가족 합창단을 마치자마자 얼른 수녀원으로 잠시동안 피신하더니 밤을 새어가며 산을 넘어가서

마침내 스위스 땅을 밟게 된다.

[출처: 위키백과]

 

 

 마리아와 폰 트랍(줄리 앤드류스와 크리스토퍼 플러머)

 

사운드 오브 뮤직의 탄생

1966년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음악상 등 5개 부문을 휩쓴 이 영화는

 나치의 지배를 피해 조국을 떠나 망명했던 폰 트랩 가족 합창단의 실화에 기반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바탕으로 한다.

1949년 마리아 폰 트랩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과 가족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

 〈트랩가 합창단 이야기〉(The Story of the Trapp Family Singers, 1949)와

〈트랩 가족과 보낸 시간〉(Around the Year with the Trapp Family, 1955)을 썼다.

이를 원작으로 독일영화 〈보리수〉(Die Trapp-Familie, 1956)가 만들어져 흥행했고, 이후 속편까지 제작되었다.

 또 1959년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의 인기 뮤지컬로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뮤지컬의 큰 성공에 힘입어 유명 제작자 대릴과 리처드 자눅 부자는

1965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을 고용해 뮤지컬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제작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로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던 로버트 와이즈 감독은

 처음 자눅 부자의 뮤지컬의 영화화 제안을 거절한다.

 이후 〈벤허〉로 유명한 윌리엄 와이즈 감독이 감독직을 수락해,

 각본가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지방으로 촬영지 헌팅을 다니기도 했지만 결국 영화 사전 제작 기간에 자진 하차하고,

다시 메가폰은 로버트 와이즈 감독에게로 돌아갔다.

마리아의 캐스팅 역시 난항을 겪었는데,

오래전 파라마운트사는 오드리 헵번을 마리아 역으로 캐스팅해 이 작품을 영화화할 계획이었지만,

오드리 헵번의 거절로 영화화 자체가 백지화되었다.

 이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은 인기 브로드웨이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로

스타덤에 오른 줄리 앤드루스를 마리아 역에 캐스팅했다.

우여곡절 끝에 뮤지컬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탄생했고, 지금까지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1965년에 영화에 일곱 남매로 출연했던 사람들이

20년후에 잘츠부르크의 미라벨 공원에 다시 모였다.

왼쪽으로부터 그레틀(Kym Karath), 마르타(Debbie Turner), 브리기타(Angela Cartwright),

 프리드리히(Nicholas Hammond), 루이자(Heather Menzies), 쿠르트(Duane Chase), 리슬(Charmian Carr).

 사진 상태가 좋지 않아서도 그렇지만 정말 다들 몰라보게 컸다.

 [출처: 정준극님 블로그]

 

 

사운드 오브 뮤직

오스트리아 출신의 마리아 폰 트라프의 자서전

 "트라프 가문의 가수들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작품이다.

 리처드 로저스가 음악을 맡았고,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가 가사를 맡았으며,

책은 하워드 린제이와 러셀 크라우스가 담당을 했다.

 

 

 이 작품은 《트라프 가문의 가수들 이야기》라는

마리아 폰 트라프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에델바이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도레미송, 사운드오브뮤직과 같은

 이 뮤지컬의 많은 노래들이 표준이 되었다.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작품메리 마틴시어도어 바이클이 주연을 맡았으며,

1959년 11월 16일 초연되었다.

그후 이 쇼는 수 많은 장르의 제작과 재연이 이루어졌다.

1965년에는

 줄리 앤드류스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주연을 맡아 영화 뮤지컬로 개작되었고,

아카데미 5개 상을 받았으며 1965년도 최우수 영화로 선정되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이 쓴 최후의 뮤지컬로,

해머스타인은 브로드웨이 초연 9개월 후에 암으로 사망했다.

 RCA 빅터 레코드에서 내놓은 사운드 트랙은

무려 1천1백만장이나 팔렸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주로 잘츠부르크에서 촬영되었다.

 남부 독일의 바바리아와

20세기 폭스사의 캘리포니아 스튜디오에서도 촬영되었지만

 역시 잘츠부르크의 장면이 압도적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은 웅장한 70mm Todd-AO로 했다.

 극장마다 스크린을 압도하는 화면이어서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20세기 폭스사의 파산을 막아준 효자 작품이었다.

20세기 폭스사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역을 맡은 클레오파트라에

대단히 많은 제작비를 투입하였지만

수입은 기대에도 미치지 못하여 파산 직전에 있었다.

그러는 중에 사운드 오브 뮤직이 돈을 벌어 주어 빚을 모두 갚고도

상당한 이익을 보았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미국 영화 역사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스타 워스'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준 작품이었다. 

 

 

2001년에 미국 의회도서관은

사운드 오브 뮤직 필름을 영구보관키로 했다.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또한 심미적으로 뛰어난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송

 

마리아가 첫 장면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때,

아이들이 남작부인을 환영할 때 부른 노래

 

노래 부르다 기도 시간에 늦은 것을 알고 걱정하는 장면

 

마리아 송

 

마리아의 성격을 수녀들이 농담을 하며 묘사한다.

 

원장 수녀님방에 들어가는 장면

 

 마리아가 원장수녀님의 말씀에 따라 가정교사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폰 트랍대령 집으로 가며

 

폰 트랍대령 집으로 가며

 

잘츠부르크 호엔잘츠부르크성이 뒷쪽에 보인다.

 

마리아가 이 문을 열고 레오폴즈크론성으로 들어 갔다.

 

잘츠부르크 레오폴즈크론성

 

현재 이 성의 소유자가 미국사람이기 때문에 내부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폰 트랩 가족의 저택으로 촬영한 곳이다.

 

대령이 호각으로 아이들을 호출하는 장면

 

군대식으로 호각에 맞춰 정렬하는 장면

 

 

저녁 식사 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송

 

번개가 치며 비가 오자 다들 마리아 방에 모인 장면

번개를 무서워 하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생각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마리아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부르는 장면

 

 

잘츠부르크 미라벨 정원

 

뒤에 호엔잘츠부르크성이 보인다.

 

잘츠부르크 미라벨 정원

 

잘츠부르크 미라벨 정원

 

 

잘츠부르크 시내

 

잘츠부르크 다리

 

유명한 도레미 송을 부르는 장면

 

도레미송

 

 마리아가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장면

 

 

 

호수에서 배가 뒤집어져 대령이 화내고 있는 장면

 

 

폰 트랍이 기타를 들고 에델바이스를 부르는 장면

 

극 중에서는 오스트리아 애국가 또는 국민 가요처럼 취급되고 있지만,

로저스와 해머 스타 2세의 창작곡이며, 병상의 해머 스타 2세가 마지막에 추가한 유작이라고 불린다.

 에델바이스의 작은 흰 꽃이 가진 위대한 생명력을 찬송하고, 조국을 지켜 보는 것처럼 바라는 노래.

퍼핏 쇼 이후 대령의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음악제에서 불려진다.

 

외로운 염소치기 인형극 장면

 

아이들이 인형극을 할 때 불렀던 노래.

뮤지컬에서는 천둥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을 격려 장면에서 불려진다.

 

음악적 재능을 알아 본 친구가

 아이들을 음악제에 내 보내라고 하자 화를 내고 있는 장면

 

안녕, 안녕히 송

 

파티에서 아이들이 참석한 어른들에게 취침 인사를 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콘테스트 장면에서도 퇴장하면서 불려진다

 

 

 

 

다시 대령집으로 돌아가라고 원장수녀님이 산을 넘어서란 노래를 부르는 장면

 

수녀원에서 다시 돌아와 아이들과 노래를 부르는 장면

 

 

 

 

마리아와 폰 트랍의 사랑의 장면 

 

영화에서 마리아가 결혼식장에 들어가기 전에 원장수녀님의 축복을 받고 있는 장면

 

 

 

마리아 송

 결혼식 장면에서도 마리아 송을 노래한다.

 잘츠부르크 대성당이 아니라 몬트제의 미하엘교회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신혼여행을 다녀온 폰 트랍 소령이 자기 집의 현관에 걸려 있는 나치 깃발을 내리고 있는 장면

 

  실제로 폰 트랍 소령과 마리아가 결혼식을 올린 것은 1927년이며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것은 1938년이다.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노래하는 장면

 

 왼쪽으로부터 프리드리히, 그레틀, 루이자, 마리아 폰 트랍, 게오르그 폰 트랍, 리즐, 브리기타, 쿠르트, 마르타  

 

 

영화에서는 폰 트랍 가족이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로 가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트로 갔다고 함.

 

알프스를 넘는 폰 트랍 가족들.

 

그러나 실은 잘츠부르크 인근의 운터스버그 산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밑의 귀한 사진들과 내용은

음악 컬럼니스트인 정준극님의 블로그에서 퍼왔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http://blog.daum.net/johnkchung

 저서: 비엔나워킹투어

 

원작 마리아가 쓴 The Story of the Trapp Family Singers의 표지 

 

 

생전의 게오르그 폰 트랍 남작과 마리아 폰 트랍 남작부인 

 

 

폰 트랍의 가족은 193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합병을 선언한지 얼마 후에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로 갔다.

사실상 이탈리아는 폰 트랍의 고향마을이나 다름없었다.

트리에스테의 해군본부에서 오랫동안 지냈었기 때문이었고 첫 번째 결혼후에도 상당기간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트리에스테는 오스트리아제국의 영토였다.

 얼마후 폰 트랍 가족은 미국공연을 초청받았다.

 폰 트랍 가족은 미국순회공연을 했다. 그때는 그저 방문이었다. 하지만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미국의 여러 사람들이 폰 트랍에게 제발 다시 오라고 노래를 불렀다.

 폰 트랍 가족은 이듬해인 1939년 유럽으로 돌아와 스캔디나비아 국가들에서 공연을 가졌다.

 그리고 그해 9월 노르웨이를 갔다가 마침내 기회를 보아 미국으로 건너갔다.

 만일 나치에게 들켰더라면 미국은 커녕 스캔디나비아에 머물러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미국에 온 폰 트랍 가족은 처음에 펜실바니아 주의 메리온이라는 곳에서 잠시 거처를 정하고 지냈다.

 바로 이곳에서 막내 요한네스가 태어났다. 2년후인 1941년, 폰 트랍 가족은 버몬트 주의 스토우에 정착하였다.

 폰 트랍은 스토우의 집을 티롤지방 스타일로 개축하고 Trapp Family Lodge(트랍 가족 숙소)라는 이름을 붙였다.

 ‘트랍 가족 숙소’는 생계를 위해 오픈한 여관이었다.

 원래 이 집은 농가였다. 폰 트랍 가족이 들어와서 집이름을 Cor Unum(한 마음)이라고 불렀다가 나중에 여관으로 바꾼 것이다.

폰 트랍과 마리아는 Trapp Family Lodge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였다.

 그로부터 이 숙소는 버몬트 관광에서 빼놓을수 없는 가장 매력적인 장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Trapp Family Lodge에서는 해마다 Vermont Mozart Festival(버몬트 모차르트 축제)이 열렸다.

더 많은 사람들이 Trapp Family Lodge를 찾아왔다.

 

 

미국에서 말년을 보내며 조국 오스트리아를 잊지못하는

게오르그 폰 트랍 마리아 폰 트랍 1940년 후반.

 

버몬트 주 스토우에서 마리아의 마지막 모습

 

폰 트랍 가족. 베르너만 빠져 있다.

 

가운데 어린 두 소녀(로즈마리와 엘레오노레)와

마리아가 안고 있는 남자아이(요한네스)가 마리아가 낳은 자녀들이다.

미국 버몬트주에서

 

미국 버몬트주 스토우 마을에서

온 가족이 함께(왼쪽에서 두번째가 마리아,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게오르그)

 

미국 버몬트 주의 스토우에 있는 트랍 패밀리 랏지에서.

자녀들이 모두 10명이 되었다.

 

미국 버몬트주 스토우마을의 트랍 패밀리 랏지에서 모두 함께 

 

트랍 가족은 전용 버스를 이용하여 미국과 캐나다 순회공연을 하였다.  

 

트랍 패밀리 콰이어. 맨왼쪽이 베르너. 잘츠부르크에서 공연할 때에. 

 진짜 폰 트랍의 자녀들임.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이 마리아.

 

 

 

마리아 폰 트랍. 오른쪽 사진은 마리아의 어린 시절.

 

 티롤지방의 칠러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귀엽고 꿈많은 마리아가 퇴역 해군소령과 결혼하고

호적상 10명 아이들의 엄마가 되며

 죽어서 미국 버몬트주 스토우 마을의 언덕에 묻힐 줄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 게오르그 루드비히 폰 트랍 해군소령

1차 대전이 끝날 즈음의 게오르그 폰 트랍 해군소령

 

 

결혼 당시의 게오르그 폰 트랍과 마리아.

 

마리아와 폰 트랍의 결혼식. 1927년. 성대하였다.

 

Trapp Family Lodge. 스키장도 있는 산장호텔이다.

 

 

다음은 폰 트랍 가족의 연표이지만 가장인 게오르그 폰 트랍이 세상을 떠난후 오늘날 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에 중점을 둔 설명이다.

 

- 1880년. 아버지 게오르그 폰 트랍 남작이 크로아티아의 차다르에서 탄생.

- 1905년. 어머니 마리아 아우구스타 쿠체라가 비엔나행 기차안에서 태어남. 원래 고향은 티롤의 칠러탈임.

- 1918년. 게오르그 폰 트랍이 해군소령으로 퇴역.

- 1924년. 마리아가 베네딕트 수도회의 노너그수녀원에 견습수녀로 들어감.

- 1926년. 마리아는 수녀원장의 요청에 따라 폰 트랍 남작가의 가정교사로 들어감.

- 1927년. 게오르그와 마리아가 11월 26일 결혼. 마리아는 루퍼트, 베르너, 요한나, 아가테, 마리아, 마르티나, 헤드비히의 새엄마가 됨.

             영화에서는 리즐, 프리드리히, 루이자, 쿠르트, 브리기타, 마르타, 그레틀이라는 이름으로 나옴.

- 1929년. 마리아와 남작가의 사이에서 첫 아이인 로제마리가 태어남.

- 1931년. 둘째 딸 엘레오노레가 태어남.

- 1935년. 남작이 비엔나 은행의 파산으로 경제적 곤경을 겪게 됨.

- 1936년. 마리아가 프란츠 봐스너 신부의 도움으로 '트랍가족콰이어'를 시작함.

- 1938년. 폰 트랍 가족은 나치 점령의 오스트리아를 떠나 이탈리아를 경유하여 미국으로 감.

- 1939년. 폰 트랍 가족은 펜실바니아의 메리온에 정착. 아들 요한네스가 태어남.

- 1942년. 버몬트 주의 스토우에 있는 농장을 매입. 코르 우눔(Cor Unum)이라고 부르다가 트랍 패밀리 라지(Trapp Family Lodge: TFL)라고

             변경함.

- 1945년. 트랍 가족 음악 캠프를 시작함.

- 1947년. 게오르그 폰 트랍 남작이 별세함.

- 1948년. 트랍 패밀리 라지를 확장하여 여관으로 개조함. 교황 비오12세가 마리아에게 트랍 패밀리 오스트리아 구조협회 활동을 치하하여

             베네 메렌티(Bene Merenti) 메달을 수여함.

- 1950년. 마리아가 The Trapp Family Singers라는 책을 발간하여 가톨릭작가협회로부터 성프란시스 세일스 골든 북 어워드를 받음.

             책의 내용을 기본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제작되어 히트를 기록함.

- 1950년. 2차대전 전몰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스톤교회를 건설함. RCA 에서 레코드 출반함.

- 1956년. 트랍 패밀리 싱거스가 미국 순회연주를 시작함.

- 1957년. 트랍 패밀리 싱거스가 해단되어 각자 생활을 하기로 함. 마리아와 세 자녀는 태평양의 파푸아 뉴기니에 가서

             가톨릭 선교사 활동을 함. 1960년대 중반에 미국으로 돌아옴.

- 1959년. 로저스 앤 햄머슈타인의 뮤지컬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제작됨. 메리 마틴이 마리아 역할을 맡음.

             메리 마틴은 1990년에 세상을 떠남

- 1965년. 줄리 앤드류스와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주연한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개봉됨.

- 1967년. 마리아가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문화활동에 기여한 공로로 1급 명예십자훈장을 받음.

- 1968년. 요한네스 폰 트랍이 주관하여 스키장을 개설함. 오늘날 미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스키장으로 각광받고 있음.

- 1980년. 12월 20일 뜻하지 아니한 화재가 발생하여 라지가 전소됨. 화재의 원인은 아직도 불명.

- 1981년. 스위스 샬레 스타일의 새로운 여관의 건축을 시작함.

- 1983년. 초원의 음악회 시작.

- 1984년. 라지에 휘트니스 센터를 오픈함.

- 1987년. 마리아가 세상을 떠남.

 

- 1993년. 라지(Lodge) 신축 개관 10주년 기념 및 크로스 컨트리 스키장 개설 25주년 기념

- 1996년. 스노우 컨트리 매가진이 트랍 패밀리 라지를 미국 최우수 크로스 컨트리 스키 리조트로 선정함.

- 1997년. 오스트리아 사관학교 대표다 게오르그 폰 트랍 함장의 서거 50주년을 기념하여 트랍 패밀리 라지를 방문함.

             가족묘지에서 추도식이 거행됨.

- 2000년.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이 브로드웨이의 마틴 베크 극장에서 리바이벌 오픈함. 폰 트랍 가족들이 갈라 오프닝에 참석함.

             트랍 패밀리 라지가 그린 마운틴 스테이트의 그린 호텔로 선정됨. 구르메 잡지의 독자투표에 의해 트랍 패밀리 라지가

             미국내 최우수 스키/겨울 스포츠 센터 5개소에 포함되어 선정됨.

- 2004년. 트랍 패밀리 라지에 별도의 빌라 4채가 건설되어 판매됨. 향후 5년간 40채의 빌라를 분양할 계획임.

             요한네스 폰 트랍의 아들인 샘 폰 트랍이 라지의 부사장으로 취임함.

- 2007년. 베르너 폰 트랍이 세상을 떠남. 트랍 패밀리 라지는 마운틴 바이크 트레일을 개발함. 크로스 컨트리 스키 센터 설립 40주년을 기념함.

- 2008년. 트랍 패밀리 라지가 ABC 뉴스 프로그램에서 하일라이트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