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터키

푸른 바다. 2015. 6. 17. 21:36

터키

 

 

 


 

 

 

터키는 640여년 지속된 오스만제국의 후신으로

 터키가 자리하고 있는 아나톨리아 반도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교량적 지역이며

 히타이트, 로마, 비잔틴제국, 오스만 대제국에 이르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거쳐 간 곳으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하여

예로부터 교통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지도

 

아시아 대륙의 서부에 위치하고 있고, 유럽 대륙의 동남부와 연결되어 있다.

 

 

 

 

터키지도

 

북쪽은 흑해, 동쪽은 조지아, 아르메니아, 이란과 맞닿아 있다.

남쪽은 이라크, 시리아 및 지중해,

 서쪽의 유럽 부분 영토는 그리스 및 불가리아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터키 국기

 

터키의 정식 명칭은 터키 공화국이다.

 

 

 

 

전체 면적은 783,562㎢(한반도의 3.5배)로

 흑해, 마르마라해, 에게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에 의해

유럽에 속하는 트레이스반도와 아시아에 속하는 아나톨리아 반도로 구분된다.

아나톨리아를 위치에 따라 흑해, 말마라, 에게해, 지중해, 중앙 아나톨리아,

동쪽 아나톨리아, 남동 아나톨리아의 7개 지역으로 나눈다.

 

 

 


터키의 인구는 8,069만 명(2012년 기준)이다.

민족 구성을 살펴보면

 터키인, 쿠르드인( 약 1,200~1,400만 명으로 추정),

아랍인(50만 명), 아르메니아인(5만 명), 기타 그리스인, 유태인 등이다.

 

 

 

 

지중해 연안지방의 전형적인 온난성 기후대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터키의 독특한 지형으로 인해 변화무쌍한 기후대가 나타나곤 한다.
흑해 연안부의 따뜻한 기후를 즐길 수 있는가 하면

 고산들로 가득한 산악지대에서는 연중 내내 새하얀 설경을 경험할 수 있다.
터키의 내륙지방은 대륙성 기후이며 해안지방은 해양성 기후이다.

 북동부 및 아나톨리아 고원지대는 대륙성 기후를 보이고 있어서

 여름에는 고온 건조하며,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

 1~2월이 가장 추우며, 겨울철 평균 기온은 0℃~10℃이다.

지중해 및 에게해 연안은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서

 여름은 대체로 고온 건조하며, 겨울은 온화하고 다습하다.

 연평균 기온은 18℃~20℃이다.

흑해 연안은 온화한 해양성 기후이며

 연평균 강우량은 2,500㎜로 연중 고른 분포를 기록하고 있다.

기온의 월교차가 거의 없고 연평균 22℃~24℃이다.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이고 앙카라의 인구는 약 400만 명이다.

주요도시는 이스탄불,이즈밀,콘야 등이며

국경일은 10월 29일(터키 공화국 선포일)이다.

 

 

 

 

인구의 약 90% 이상이 터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쿠르드어 약 7%, 아랍어 약 1%,

 그외 극소수의 그리스어, 아르메니아어 등이 사용되고 있다.

관청 및 일류 호텔, 항공회사 등에서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이 통용된다.

 

 

 

 

 종교는

 전 국민의 98%가 이슬람교도인데 수니파(수나파)가 다수이다.

그 밖에 개신교, 천주교, 유대교, 그리스정교 등이 있다.

터키의 헌법상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다.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를 가미한 의원내각제이다.
터키의 의회는 단원제(임기 4년, 의석 550석)이고

 주요 정당은 정의개발당 공화인민당 민족주의행동당, 평화민주당이다.

 

 

 


2012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은 7,731억 달러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10,673달러(2012년)이다.

 환율은 2012년 1월 현재

 1미국달러(USD)=1.85터키 리라이다.

 

 

 


공휴일로는 국정 공휴일과 종교 공휴일이 있다.

 국민 다수가 이슬람교를 따르고 있으나 정교 분리 정책으로 금요일까지는 근무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휴무이다. 

종교 공휴일로서 쉐케르 바이람과 쿠르반 바이람이 있으며,

매년 이슬람 월력에 따라 날짜가 바뀐다.

바이람 전 한달동안은 라마단으로 일출부터 일몰 시간까지 금식하는데,

가장 큰 종교 축제인 바이람 기간중에는 새옷을 입고 친척 방문 등을 하며,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카드를 보낸다.

 

 터키인들은 친족과 가족의 유대관계를 매우 중시하고 있으며,

가족 구성원은 가장의 권위를 존중한다.

 

 

 

 

 

터키는 국제연합, 국제통화기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세계무역기구(WTO)

여러 국제기구에 가입하였다.

 

 

 

 

주요민족은 터키인이 90%,쿠르드 및 아랍인이 10%로

 흉노족(훈족), 돌궐족의 후예이다.

 터키 민족은 기원전 2000년,

중앙아시아 동북부에서 기원하여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16개 군주국이 흥망을 거듭하며,

 서기 10세기 경에 아나톨리아 반도에 정착했다.

 중세에 아랍지역을 횡단하여 서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터키인들의 대부분이 회교로 개종하였으며, 아랍문자를 도입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터키 국민들은 조상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자연 숭배사상과 풍습을 오늘날까지도 유지하고 있는데

 상당부분에서 우리나라의 풍습과 근본적으로 비슷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한국어와 같은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터키어는

 

 문장 구성순서, 모음조화, 어미 활용 등에 있어

 우리나라 말과 같은 원칙을 따르고 있는 점이다

 

 

 

 

교육은 8년제 의무교육제를 실시하고 있다.

 

 

 

 

터키의 주요 산업은

농업, 섬유, 광물성 원료, 철강, 기계, 에너지,

 환경, 방위산업, 관광, 건축자재,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가전 등이 있다.

 

 

 

 

터키 국민의 국민성은
오스만 제국의 영광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히 크며,

한국동란시 참전으로 맺은 인연으로 인하여,

한국인을 '코렐리'(Koreli)라고 부르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문제발생시 적극 도와주려 한다.

전통적으로 체면과 무예를 존중하며, 매우 정열적이고 다혈질이나 서두르지 않으며,

 신앙의 전사라고 불리는 가지의 정신을 윤리의 주요 덕목으로 생각하고 있다.
터키인들은 민족의식이 매우 강하며,

지정학적인 특성으로 동서양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을 갖고 있다.

 

 

 

 

 터키는 관광대국으로,

 2009년 터키를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2,700만 명에 이른다.

터키에는 히타이트 유적을 비롯하여

고대 그리스, 로마, 비잔틴, 셀주크및 오스만 제국 등

동서양 문명의 유적이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다.
그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관광지 개발 및 외국인 관광객 유치 정책 시행으로

에게해 지중해 연안에 리조트 관광지가 많이 개발되어 있으며,

비교적 저렴한 관광 비용 덕분에 유럽 및 아시아 지역의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터키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세속화된 나라로서

 1924년의 헌법에서 이를 선언한 바 있다.

1961년 개정된 헌법 제19조는

"모든 개인은 양심과 종교적 신앙과 의견의 자유를 가지며

모든 종류의 예배나 종교행사 및 의식은 도덕 및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한 자유이다."

 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로써 터키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터키는 헌법상 국교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체 국민의 약 99%가 이슬람교 수니파이기 때문에 이슬람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 종교적 규율 적용에는 엄격하지 않은편이다.

그리고 터키의 법률이나 사회기구가 이슬람 원리를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슬람의 전통과 관행이 매우 중요시되고 있기 때문에

 법의 해석 및 적용에 있어서 종교적 영향을 무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터키는 비수니파 교도에게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

다만 이들은 정부의 재정원조를 받을 수는 없다.

또한 회교 국가이나 토·일요일을 공휴일로 하는 등

서구화된 면모를 가지고 있는것이 특징적이다.

 

 

 

 

한국과 터키는

 역사와 언어, 생활관습 등 문화적으로 유사성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특히 1950년 터키군의 한국전 참전을 계기로

가까운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형제나라이다.

 전통적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한국과 터키는 공동의 번영을 위해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

터키 국민들은 한국인에 대하여 매우 우호적이다.

그 이유는 월드컵 당시에 터키와 3,4위전을 치르면서

한국인들이 터키 국기를 제작하여 함께 응원전을 펼친 모습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터키의 한국 교민들은 약 10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상사주재원, 여행업, 식당, 선교사들이 대부분이며

 주로 이스탐불, 앙카라, 이즈미르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대차 현지 공장이 이즈미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공장에서 나오는 엑센트는 10000불 이상에 팔리고 있다.

 

 

 

 

 

 

 

 

 

터키 포도주는 오스만 제국 시대부터 생산되어 유명해졌으며,

현재 터키는 세계 4번째 와인 생산국이다.

터키가 생산하는 주된 와인은 화이트 와인이며,

나머지는 로즈 와인과 레드 와인이다.

위그뤼프는 와인 생산의 중심에 있으며,

 매년 국제적인 와인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터키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기업은 돌루자, 카박클르데레 상표가 유명하다.

 

 

 

 

 

터키인들은 터키 음식을 중국, 프랑스 음식에 이어

세계 3대 주요음식의 하나로 자랑하고 있으며,

오스만제국의 600여년에 이르는 영토 확장시기에

유럽, 페르시아, 발칸, 북부아프리카 등의 문화를 많이 흡수하여

음식종류도 다양하다.

터키 전통음식은 양고기로 된 케밥 종류로서,

한국인에게 크게 부담이 안가는 케밥은 쉬쉬, 도네르 케밥 등이 있다.

터키인들은 식사후 디저트로서 단 것을 먹으며,

 터키식 차 (차이) 또는 커피(카흐베)를 마신다.

 

 

 

 


기원전 334~333년 알렉산더대왕에게 지배를 당하기도 했던 터키는

 대왕이 세상을 떠난 뒤 카파도키아, 셀레우코스, 페르가몬의 세 왕국으로 분립되어 존재하다가

기원전 2세기 말부터 1세기 초 무렵 로마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로마의 분열이 일어난 395년에는 동로마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어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삼게 된다.
11세기에 이르러서는 셀주크투르크족이 강성하여 대부분의 아나톨리아 지역까지

그 세력을 떨쳤으나 14세기 몽골이 침입하면서 멸망에 이른다.

이후 1453년 오스만투르크족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동로마제국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며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때의 오스만투르크의 영토는 서아시아, 동유럽, 북아프리카에 걸친 광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스만투르크도 16세기의 전성기를 지나 19세기 무렵부터는 쇠퇴하게 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오스트리아의 편에 섰다가 패퇴한다.
그 후 1923년 10월 29일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터키 공화국을 건국하게 된다.

수도를 앙카라로 정한 터키는 과감히 친서방 개방정책을 펼치고

 1952년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는 등 발전을 거듭하였다.

모든 시련을 극복한 터키는 현재 EU 정식 가입 협상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데

그리스와는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

 

 

 

 

1354년 오스만 제국은 유럽에 진출하여 정복 활동을 개시하였다.

 또한 1453년 5월 29일 술탄 메메트 2세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여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스탄불로 수도를 옮김으로써

 팽창정책은 그 절정에 도달하였다.

16세기에는 에게해와 흑해를 오스만 제국의 내해로,

에티오피아, 예멘, 크리미아를 국경으로 삼았으며, 비엔나까지 그 영토가 확장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17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1912년~1913년 발칸전쟁으로 인해

불가리아의 마리차강까지 후퇴하면서 그 영토가 축소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패전국인 독일 측에 가담하여,

1920년 8월 연합국과 세브르 강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로 인해 콘스탄티노플의 배후지와 터키의 발생지인

아나톨리아고원만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케말 파샤가 세브르 조약을 무효화하고

실지회복 운동을 일으킴으로써 동 조약은 비준되지 않았다.

 또한 케말 파샤는 1923년 7월 연합국과 로잔 조약을 체결하여

세브르 조약으로 상실했던 아나톨리아 반도의 대부분 지역을 회복하고

 터키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케말 파샤는 사후 터키의 국회로부터 아타튀르크( 터키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그 후 케말 아타튀르크로 불렸다.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1881.3.12 - 1938.11.10)

 

터키의 개혁가이자 초대 대통령.

 세브르조약에 대한 민족독립전쟁을 일으켜 그리스군을 격퇴하였으며

정치개혁으로 술탄제도를 폐지하고 연합국과 로잔조약을 체결하였다.

 공화제를 선포하고 대통령이 되었으며 정당정치를 확립하였다.

 

 

 

 

아타튀르크 케말파샤는

터키 공화국을 건국하고 난 후에 술탄의 세력을 모두 해외로 추방했다.

 특별법을 만들어 술탄과 술탄의 가까운 친척들은 8시간 이내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그대로 두고 터키를 떠나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추방당한 술탄의 친인척들은 세계 곳곳으로 망명을 하여 어렵게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 중에 마지막 술탄 매흐메트 6세는 오랜 고생 끝에 이집트에서

돈 많은 부호의 도움으로 택시 영업을 하면서 그럭저럭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어떤 신문에서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이 이집트에서 택시 영업에 종사하다’라고 기사화 하게 된다.

그의 모습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술탄은 자신이 오스만 제국의 명예를 더럽힐 수 없다는 생각으로 택시업을 그만 두고

영국으로 건너가 박물관에서 근무하게 된다.

월이 지나 술탄의 나이 83세 되던 해에 터키 본국에서

그 술탄에게 3개월의 기간을 주고 터키를 방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얻게 된다.

 술탄은 3개월 동안 고국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과거의 오스만 제국의 영화를 되새기게 된다.

시간이 흘러 어느 듯 술탄이 출국할 시간이 가까워 오자 술탄은 택시에 몸을 싣고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지중해의 보스포러스 해협의 다리위에 택시를 멈추게 한다.

그 곳에서 자기가 기거하던 왕궁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 모습이 터키 국민들에게 알려지게 되자 모든 국민들이

 그 술탄을 고국에서 생활 할 수 있도록 배려해 드리자는 여론이 들끓게 된다.

그러나 술탄은 나는 고국에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으며,

내가 터키 법을 어기며 여기에 머무를 필요성이 없다며 터키 땅을 떠나

자신이 생활하던 영국 땅으로 발길을 돌린다.

영국의 공항에 위치한 조그마한 커피숍에는 항상 출근하는 노인이 한 분 있었다.

그는 날마다 그 커피숍을 들러서 한 잔의 차를 시켜놓고 하염없이 공항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매일 같이 나타나던 노인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3일 째 되던 날 커피숍의 종업원이 이 이상한 사실을 신고하게 된다.

 경찰에서 조사가 시작되었고 그 노인이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 매흐매트 6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그만 아파트의 단칸방에 달랑 침대가 하나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욕실이 달려 있었다.

그 방의 침대에서 노인의 시체가 발견 된 것이다.

그 노인이 매일 나타나서 바라본 것은 터키를 향해서 출발하는 항공기였다고 한다.

그는 그 항공기를 바라보며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었고,

그 항공기에 자신의 한을 담아 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있었다.

기구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은 이렇게 하여

자신이 죽은 지 3일 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오스만 제국의 한을 안고 자기의 조국 터키를 그리면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터키의 주요 관광지

 

 

 

[터키의 UNESCO 세계유산]

 

No.

세계유산

분류

지정연도

1

궤레메국립공원과 카파도키아 바위유적 [Goreme National Park and the Rock Sites of Cappadocia]

복합유산

1985년

2

디브리지의 대모스크와 병원 [Great Mosque and Hospital of Divrigi]

문화유산

1985년

3

이스탄불 역사지구 [Historic Areas of Istanbul]

문화유산

1985년

4

하투샤 [Hattusha: the Hittite Capital]

문화유산

1986년

5

넴루트다으유적 [Nemrut Dag]

문화유산

1987년

6

크산토스-레툰 [Xanthos-Letoon]

문화유산

1988년

7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 [Hierapolis-Pamukkale]

복합유산

1988년

8

사프란볼루 시 [City of Safranbolu]

문화유산

1994년

9

트로이 고고유적지 [Archaeological Site of Troy]

문화유산

1998년

10

셀리미예 모스크 [Selimiye Mosque and its Social Complex]

문화유산

2011년

11

차탈회위크 신석기 유적지 [Neolithic Site of Catalhoyuk]

문화유산

2012년

12

부르사와 주말르크즉 [Bursa and Cumalıkızık: the Birth of the Ottoman Empire]

문화유산

2014년

13

페르가몬과 다층 문화경관 [Pergamon and its Multi-Layered Cultural Landscape]

문화유산

2014년

 

[출처: 두산백과]

 

[참고: 터키 개황 외교부,두산백과. 위키백과,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