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레스타우라도레스 광장,
폼발 후작 광장, 4월25일 다리, 리스본 그리스도 레이 상
2016년 4월3일 일요일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여행 넷째 날
스페인 마드리드-톨레도-콘수에그라-살라망카, 포르투갈 파티마-까보다로까-리스본, 스페인 세비야-타리파, 모로코 탕헤르-페스-라바트-카사블랑카, 스페인 미하스-론다-코르도바-그라나다-바르셀로나-몬세라트 리스본 툭툭이를 타고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알파마 지역을 둘러보는 것으로 포르투갈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이제 국경을 넘어 다시 스페인으로 넘어간다. 결국 포르투갈 서민들의 한이 담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파두를 들어보지 못한 채 포르투갈과는 영영 이별한다고 생각하니 섭섭한 마음이 물 밀듯 몰려온다. 이 아쉬움은 귀국한 뒤 집에서 포르투갈의 목소리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검은 돛배를 다시 한번 듣는 것으로 풀어야겠다.
호시우(로시우) 역
절대 기차역 같지 않은
신 마누엘 양식과 낭만주의 양식이 어우러진
호시우(로시우) 기차역인데
신 마누엘 양식의 말 편자 모양 아름다운
출입문이 유명하다고 한다.
리스본은 7개의 언덕으로 이뤄진 도시라
어딜 가든 언덕이 있어서 전망이 좋다.
해안가인 서쪽의 벨렝( Belem, 베들레헴이란 뜻)을 제외하면
중심지인 바이샤와 호시우 지역,
동쪽의 알파마와 그라사 지역,
바이루 알투와 시아두 지역 등이 언덕에 해당한다.
그래서인지 언덕을 오르내리는 트램,
푸니쿨라 등 특유의 교통수단이 발달해있다.
레스타우라도레스 광장 위쪽으로는
포르투갈의 샹젤리제 거리라는
리베르다드 거리가 있다.
리스본의 신시가지에 있는
레스타우라도레스(부흥자란 뜻) 광장을
차창으로 본다.
레스타우라도레스 광장
1640년 60년간의
스페인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광장으로
리스본의 신시가지에 있으며,
레스타우라도레스란 복고자 또는 부흥자라는 뜻으로
1640년 스페인의 지배에 대항해
포르투갈의 독립을 위해 싸운 지사들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레스타우라도레스 광장의 오벨리스크
광장에는 스페인으로부터의
재독립을 기념하며 30m 높이로 세운
오벨리스크가 있다.
오벨리스크에는 독립하기까지의 포르투갈이 겪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이 조각되어 있다.
레스타우라도레스 광장의
오벨리스크 기단 조각
오벨리스크를 둘러싼
광장 바닥 전체가 기하학적 무늬의
모자이크 타일로 깔려있다.
레스타우라도레스 광장 (퍼 온 사진)
폼발 후작 광장 (Praca Marpuess de Pombal)
리스본의 샹젤리제 거리라 불리는
리베르다데 거리의 북쪽 끝,
리스본 중심부 바이샤 지구가 시작되는,
에두아르두 7세 공원에 인접해 있는 광장으로
광장에 세워진 퐁발 후작의 기념 동상에서
퐁발 후작 광장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폼발후작 동상 (퍼 온 사진)
<리스본 대지진 후 재건된 리스본 시내>
리스본 대지진으로 인한 건물 파손과 잇따른 화재는
도시의 중심지를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었지만,
알파마를 비롯한 몇몇 지역은 경미한 피해를 입었을 뿐이었다.
이 재앙은 폼발 재상의 역량을 평가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는 우선 혼란을 틈타 날뛰는 도둑을 가려 내어 재판에 회부하고,
지방에 주둔해 있던 군의 병력을 리스본으로 불러들여
공포에 질린 시민들을 안정시키고 치안 질서를 회복시켰다.
폼발 재상은 곧이어 수도의 재건 사업에 착수했다.초심의 건물 소유주들은 파괴된 건물의 수리나 복구를 서둘렀지만,
폼발 재상은 새로운 도시 계획이 확정될 때까지
작업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1758년 7월 12일에 발효된 도시 계획법은
낡은 기존 건물과 도심지 땅의 소유자들에게
계획에 의거하여 건축을 하도록 강요했다.
만약, 5년의 기간 내에 계획을 시행하지 않을 때에는
권리를 상실하게 되고, 땅은 사려는 사람에게 양도되었다.
새롭게 건축할 능력이 없는 많은 소유주들은
주로 귀족들이나 부유한 상인들에게 권리를 넘겨야만 했다.
1763년에는 많은 집들이 세워졌지만,
거주를 원하는 사람들이 적었기 때문에 빈 채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리스본시의 설계는 에우제니우 도스 산토스,
마누엘 다 마이아, 그리고 카를로스 마르델의 세 건축 기사가 맡았다.
새로운 도시는 폼발의 착상이 반영되어 기하학적이고 직선을 중시했으며,
모든 건물의 높이는 동일하게 제한되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건물의 소유주가 귀족임을 나타내는
어떠한 표시도 외부에 붙이지 못하도록 지시했던 점이다.
[출처: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
폼발 후작 세바스티앙 주제 디 카르발류 이 멜루 (1699-1782)
18세기 개혁정치가이다.
주제 1세에게 기용된 외교관 출신의 재상 카르발류는
국왕이 그에게 준 무한한 재량권으로
국내산업을 발전시키고
활발한 대외무역과 각종 개혁정책으로 국력을 키웠다
177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리스본에
군대를 동원하여 보급품을 공급하고 피난처와 병원을 설치했다.
황폐화된 도시의 재건을 맡아서
건축가 에우게니오 도스 산투스의 설계에 따라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하고 정치, 경제, 교육 개혁을
이루어 많은 공적을 남겼으며,
당시 실질적으로 포르투갈을 다스린
근대 포르투갈의 기초를 마련한 정치가이다.
왕은 그에게 1759년에 오에이라스의 백작으로,
1770년에는 폼발 후작으로 작위를 승격시켰다.
그러나 주제 1세 사후 폼발 후작의 철권 정치를 혐오한
그의 딸 마리아 1세에 의해 실각 당했다.
폼발후작 광장은
시내에서 유일하게 지하철 노선이 교차하는 역이 있고,
로툰다라고 하는 커다란 로터리가 있는 등
리스본 교통의 중심이다.
에두아르도 7세 공원 (Parque Eduardo Ⅶ)
1902년 영국의 에드워드(포르투갈 에두아르두) 7세가
리스본을 방문한 것을 기념해 만들었다.
퐁발 후작 광장 뒤쪽에 위치해 있으며,
경사면을 이용한 공원으로 프랑스식 정원에
기하학적인 무늬의 화단이 심어져있어
4~5월 경에는 아름다운 꽃이 핀다.
맨 위쪽의 돌기둥 사이에 석조 건축물과 연못이 있으며
아래쪽으로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양쪽으로는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고
공원의 정상에서는 리스본 바이샤지구와
맑은 날에는 테주 강까지 바라볼 수 있고,
1755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파괴된 처참한 그 당시의 모습을
상징화한 조각품이 조성, 전시되고 있다.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광장에는
품발 후작의 동상이 높이 세워져 있다.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함께
이베리아 반도의 복잡한 역사를 헤쳐 왔다.
로마 문화의 영향을 함께 받았으며,
8세기에 이르러 북아프리카로 진출해 있던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들의 침입으로
긴 세월 동안 이슬람 문화의 그늘 아래 있었다.
포르투갈이 국가로서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것도 이 시기였다.
기독교 왕국들을 중심으로 무어인들을 축출하는
국토회복운동(Reconquista) 과정에서
카스티야왕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며
포르투갈 왕국이 성립된 것이다.
이후 강력한 중앙집권 왕국을 세운 포르투갈은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대항해 시대를 열어 나갔다.
아프리카 서해로 향하는 신항로를 발견해
브라질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식민지로 삼았고,
인도항로를 개척하며 해양대국의 찬란한 황금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영화는 그리 오랜 역사 동안 이어지지 못했다.
1580년부터 60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하에 들어가기도 했고,
무엇보다 영국과 네덜란드 등이 식민지 경쟁에 가담하면서
해양 강대국의 위용을 잃어갔다.
또한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일어났던
나폴레옹의 침략과 최대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의 독립,
그리고 정치, 사회의 혼란이 야기되면서 국력이 점점 쇠퇴해 갔다.
1755년 11월 1일 리스본 대지진으로
시가지 대부분이 폐허화된 도시를
폼발 후작이 시가지를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하는
도시계획을 통해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리스본 테주강
제 2차세계대전 유대인 대학살 때 이 곳 리스본에서
탈출한 10만여명의 유대인 중에는
러시아계 유대인 마르크 샤갈,
독일 태생 막스 에른스트, 독일 반전 작가 레마르크,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토크,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 등이
자유를 찿아 미국행 여객선을 여기서 승선했다고 한다.
4월 25일 다리(Ponte 25 de Abril)
1966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모방한
2278m의 현수교이며 바람의 영향을 피하기 위하여
다리사이에 구멍이 나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살라자르의 다리라고 하였는데1974년 4월 25일 쿠데타에 의해
독재자 살라자르가 실각하고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무혈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4.25다리라고 불리워진다고 한다.
리스본 그리스도 레이 상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두
산 정상에 있는 예수상을 축소하여 만든
28m의 거대한 예수상이다.
1959년 제 2차세계대전때 보호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뜻으로 세워졌다.
리스본 그리스도 레이 상
테주강 맞은편 연안의
4월 25일 다리가 시작되는 부근의 언덕에
110m 높이의 거대한 그리스도 상이
테주강을 바라보며 양팔을 벌리고 서 있다.
이 그리스도 상은 브라질의 리우데 자네이로에 있는
그리스도 상과 같은 모습으로
1949년부터 1951년까지 만든 것으로,
110m의 높은 기단 위에 82m의 예수상이 서 있는 모습이다.
리스본 그리스도 레이 상
동상대좌의 탑 안엔 엘리베이터도 있다.
이 거대한 그리스도 상은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가
포르투갈의 독재자 살라자르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스페인 세비야로 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
포르투갈 커피 맛을 보기 위해 시켰는데
조금 맛 보고는 너무 진해서
다 먹지 못했다.
플라멩고의 본고장이자
비제의 카르멘과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등의
무대가 되었던 스페인 세비야에 왔다.
세비야 JM JARDIN DE LA REINA HOTEL
호텔보다는 리조트 분위기이다.
로비에 있던 장식 코끼리 모형
리조트가 맞다.
엘레베이트도 없이 저 철재 계단을
캐리어를 들고 올라가야 했다.ㅠ
그래도 이때는 약과였다.
다음날 아침 내려올 때는 비가 왔다.
우산도 못 쓴 채 비를 맞고
무거운 캐리어를 두 손으로 들고 내려와야 했다.ㅠㅠ
그리고 버스가 대기 하는 장소까지
또 길을 건너 끌고 가야했다.ㅠㅠㅠ
이런 객실이 무슨 수용소 마냥
죽 줄지어 있다.
이번 여행 중 최악의 숙소였다.
객실
베드 반대편을 안 찍었는데
휑하니 그냥 넓었다.
아마 한 가족이 한 객실에서
베드만 추가해서 지내기 위해선 것 같다.
욕실도 넓다.
[위키백과,두산백과,네이버캐스트,월드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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