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모로코의 국가 정식 명칭은
모로코 (Kingdom of Morocco)왕국으로
북아프리카 유일의 입헌군주국이다.
아프리카 지도
모로코는 아프리카의 북서부 끝,
지중해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동쪽과 남동쪽으로 알제리와 접경하며,
남쪽으로 모리타니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남서단은 서사하라와 국경을 접한다.
북쪽으로는 지중해, 북서쪽으로는 대서양에 면한다.
모로코 지도
아프리카 북서쪽에 있는 나라로
공식 명칭은 모그레브엘아크사(Mogreb-El-Aksa)이다.
서쪽 지방의 왕국이라는 뜻이다.
모로코는 아랍 어인 모라쿠시가 에스파냐 어로 변한 것으로,
숭배하는 도시라는 뜻이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의 에스파냐와 마주 보고 있다.
지중해 연안에는 에스파냐의 속령인 세우타와 멜리야가 있다
지중해 연안에서 대서양 연안에
걸쳐 아틀라스 산맥이 뻗어 있는데,
산맥의 남쪽은 건조 지대이나 그 북쪽과 북서쪽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비옥한 농업 지대가 전개된다.
모로코 국기
빨강 바탕에 초록 선으로 그려진 5각별이 있다. 빨강은 모로코 국민의 조상인 알라위트가의 깃발색에서 유래하였으며,순교자의 피와 왕실을 의미하고 초록색은 평화와 자연을 의미한다. 별의 5개 각은 이 나라의 국교인 이슬람교의 5가지 율법을 나타낸다. 붉은 기는 17세기부터 쓰였는데, 1912년 다른 많은 붉은 기와 구별하기 위해 술레이만의 별이라는 표지를 붙였다. 현 모로코의 알라위트 왕가를 개창한 알 라시드 1665년 알라위트 왕조가 시작되어 현재까지 모로코를 통치해오고 있다. 이 왕조는 자신들이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알라위트 왕가를 개창한 초대 왕 알 라시드 왕은
현재의 모로코 영토 대부분을 통합하여 안정적인 국가를 탄생시켰다.
무함마드 5세(재위 1957~1961년) 마다가스카로 추방되었던 시절의 무함마드 5세(가운데)와 가족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모로코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독립과 민족국가 건설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이 모로코 민족주의자들의 중심에는
무함마드 5세(재위 1957~1961년)가 있었다.
그는 물레이 유수프 술탄의 셋째 아들로,
프랑스 식민 당국은 다른 아들들에 비해
무함마드 5세가 자신들에게 더 협조적일 것이라 기대하여
그를 술탄으로 지목하였다.
1944년 1월 프랑스는 수많은 민족주의자들을 체포하자,
프랑스 총독의 포고령에 대한 서명을 거부함으로써
프랑스 정부는 1953년 8월에
그를 코르시카 섬과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추방시켰다.
그러나 무함마드 5세가 추방된 이후
모로코에는 테러 행위가 증가했고
반대로 그의 명성은 오히려 급상승했다.
그러자 프랑스 정부는 1955년 11월 무함마드의 귀환을 허용했다.
무함마드 5세는 1956년 3월 완전독립을 보장하는 협정을
프랑스와 체결한 뒤 온건한 통치로 권위를 얻었고,
1957년에는 왕의 칭호를 얻었다.
그는 강력한 왕권을 확립했으나 5년 뒤인 1961년에 사망하였다.
하산 2세(1929~1999, 재위기간 1961~1999)
무함마드 5세의 아들로 라바트 출생.
프랑스의 보르도대학을 졸업하고,
무하마드 5세 전 국왕과 함께 독립운동을 지도하다가
1953∼1955년 마다가스카로로 추방을 당하였다.
프랑스로 부터 1956년에 독립한 뒤
부친이 왕좌에 복귀하면서 왕세자가 된 그는
61년 부친의 사망으로 왕위를 계승했다.
70년대 민중봉기를 유혈 진압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모로코 서부에 위치한 스페인령 사하라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정정의 안정을 꾀하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70년대와 80년대 민중봉기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정적을 감시하는 억제책을 사용했지만
그 대가로 모로코는 북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는 국가가 됐다.
하산 2세는 다른 아랍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체결된 이스라엘-이집트 간의 평화협정을 중재하였으며(1977년),
이스라엘과 요르단, 팔레스타인 간 화해에도
적극 간여하는 등 중동의 평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9년 사망했으며, 아들 모하메드 6세가 왕위에 올랐다.
현 모로코의 국왕 시디 모하메드 6세 (재위 1999.7.23~ )
1963년 8월 수도인 라바트에서 하산 2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왕립학교를 졸업한 뒤 1985년 무함마드5세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였다
1999년 7월 아버지인 하산 2세(Hassan II)가 사망하자
뒤를 이어 같은 달 23일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즉위 이후 개혁에 힘썼으며
안정된 사회 분위기에서 소수민족의 문화 보호,
국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 보장과 같은
민주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여러 정책들을 시행함으로써 국민들의 인기와 기대를 얻고 있다.
2002년 3월 평민인 살마 베나니와 결혼한 후
모로코 역사상 최초로 비 전하라는 칭호를 부여하여
여성의 지위를 높였다. 남동생 한 명과 3명의 여동생이 있으며,
모로코의 의회는 상·하 양원제이다.
알라(Allah), 조국, 국왕을 국시로 삼으며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이다.
단, 국왕은 3권을 초월하는 존재이다.
국왕은 헌법상 종교 최고지도자로
국가원수, 국가 통일의 상징이자
국가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자이며
이슬람교와 국헌의 수호자이다.
수차에 걸친 개헌을 통해 제한적인 범위에서
대의 정치를 발전시키고 있지만
국왕은 의회를 해산하고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는 등
행정, 사법, 입법 3권을 초월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왕권은 국왕이 다른 왕자를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는 한 장자 상속된다.
단 여자는 상속에서 제외된다.
면적은 분쟁 지역인
서부 사하라지역 252,120㎢을 포함하여
710,850㎢로 한반도의 3.2배이다.
분쟁 지역인 서사하라 지역을 제외하면 446,550㎢이다.
지형은 평균 해발고도가 800m인 산악국으로,
북서 아프리카의 아틀라스 산계가 솟아 있다.
지질학적으로는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1960년 지진으로 남부 도시 아가디르가 초토화되었고
2004년 2월 25일에는 북부 도시 알 호세이마 지역의
지진으로 약 6백명이 사망하였다.
기후는 북위 23°∼36°에 있어 온대기후이나
지역별로 차이가 있어 북부는 지중해성기후,
중부는 대륙성기후, 남부는 사막 기후이다.
강우량을 기준으로 크게 우기와 건기로 구분된다.
우기는 11월~4월로 날씨가 따뜻하고
습도가 높으며 평균기온이 15℃이다.
건기는 5월~10월로 덥고 건조하며 평균기온이 28℃이다.
모로코 국민은 아랍 베르베르인 99.1%,
유럽인과 흑인 등 0.7%,
유대인 0.2%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는 2013년 기준으로 3,264만 명이며
인구 증가율은 1980년대 2.5%에서
2001년 1.6%대, 2010년 1.1%로 크게 감소하였다.
평균수명은 75.47세이다.
2008년 기준으로 인구 분포 비율은
도시가 56%, 농촌이 44%이며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진행된 도시화 비율은 1.8%이다.
주요 도시별 인구 분포는 카사블랑카 390만 명,
라바트·살레 155만 명, 페스 104만 명,
마라케시 90만 3천 명, 탕헤 70만 4천 명,
케니트라 57만 3천 명이다.
종교는 이슬람교 수니파가 인구의 98.7 %,
기독교가 1.1%, 유대교가 0.2%이다.
이슬람교는 국교로서 국왕이 종교 수반을 겸한다.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나
모로코인에 대해서는
이슬람교 외의 종교 포교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모로코의 공용어는 아랍어와 베르베르어이고
프랑스어가 상용어이자 제1 외국어이다.
모로코 북부 지중해 연안과 남부 해안 지방에서는
스페인어가 통용어로 쓰인다.
표준 아랍어는 신문, 방송, 출판물 등 문어체에서만 사용하며
구어로는 모로코 방언을 주로 사용한다.
표준 아랍어에 대한 문맹률은 65%에 이른다.
모로코의 의무교육 기간은 9년이며
문자 해독률은
52.3%(2010년 15세 이상 인구 기준)로
남성 65.7%, 여성 39.6%이다.
모로코의 수도는 라바트(Rabat)로,
인구는 살레 포함155만 명이다.
2012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라바트, 근대 수도와 역사 도시에 지정되었다.
모로코의 국내총생산(GDP)은
2013년 9월 기준으로 985억 달러이고
1인당 국내총생산은 5,400불이며 경제성장률은 3.2%이다.
모로코의 주요 자원은
세계 제3위의 생산량을 차지하는 인광석과
철, 망간, 구리 등이다.
화폐단위는 디람( MAD로 표시, 모로코 디람)이다.
독립기념일은 1956.03.02 (프랑스로부터 독립)
독립기념일은 독립선언일인 1955.11.18일로 지정
7세기 이후 아랍 인이
진출하여 이슬람 국가가 된 모로코는
석탄, 철, 납 등의 지하 자원이 풍부하며
인광석의 수출량은 세계 제일이다.
감귤류, 토마토 등이 재배되며 통조림 공업 등이 성하다.
탕헤르와 카사블랑카 등의
국제적인 도시가 있는 관광국이기도 하다.
모로코와 우리나라의 관계는
국제연합(UN), 세계무역기구 등 국제 무대에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 온 전통적 우방국이다.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서
표면적으로는 중립 정책을 표방한다.
그러나 실리 차원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대북 정책에 있어 한국 정부의 정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모로코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에 대해 정부 명의의 환영 성명을 발표하였고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발생 시
중동·아프리카 국가 중 최초로 대북한 규탄 성명을 발표하였다.
모로코의 역사
모로코 원주민인 베르베르인의 고대사는 분명하지 않다.
페니키아인과 카르타고인이 해안에 거점을 만들고
로마인도 한때 모리타니 부근의 해안지대를 지배하였다.
아라비아에서 진출해 온 이슬람교의 군대가 모로코를 정복한
685년 이후 베르베르족도 이슬람화되어 711년 에스파냐를 공격하였다.
740년경부터 소왕국으로 분열되었으나 788년 이드리스 왕조가 통일하였다.
11세기에 알모라미드왕조가 마라케시를 수도로
에스파냐에서 세네갈강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였으나
12세기에 알모하드왕조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13세기에 들어 에스파냐에서
그리스도교도에게 패배한 이 왕조는 쇠퇴하고
메리니드왕조가 뒤를 이었다가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중엽에 걸쳐 와타시드왕조가 지배하였다.
이 시대에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침략을 받았고
오스만투르크의 압력에도 저항하였다.
1830년 알제리가 프랑스령이 된 후
모로코는 서유럽 국가의 분할경쟁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1880년대에는 침략의 대상이 되어
1904년 프랑스·에스파냐의 협상을 거쳐
1912년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보호령으로 분할되었다.
모로코의 민족주의는 1921∼1926년
아브드 엘크림의 반란을 계기로 조직화되었고,
다시 제2차 세계대전 후 반프랑스 해방투쟁을 거쳐
1956년 3월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같은 해 4월에는 에스파냐도 모로코의 독립을 인정하고
북부 보호령의 시정권을 포기하였다.
또 그해 10월에는 국제지대 탕헤르,
1958년 4월에는 에스파냐의 남부 모로코령도 회복하여
입헌군주국 모로코의 영토는 통일되었다.
1961년 사회주의적인 국왕 벤 유세프가 병사한 후
그의 아들 하산 2세가 즉위하였다.
그 무렵부터 모로코는 우익민족주의로 전향하여
모리타니·알제리와 분쟁을 계속하였으나 그후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또 1969년 에스파냐령 이프니가 정식으로 반환되었으며,
1976년 4월 에스파냐령 사하라(西사하라)의 북쪽 반을 병합하였다.
이후 서부 사하라 지역의 병합을 위한 국가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나
UN과 인접 관련국의 반대로 현재 답보상태에 있다.
하산 2세가 사망하자 왕세자인 모하메드 6세가
1999년 7월 즉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로코의 유네스코 세계 유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2011
[참고: 외교부 모로코 개황, 두산백과, 위키백과, 유네스코, 세계지명 유래사전, 세계의 왕가]
'모로코 (아프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스] 페스 메디나 시장 (0) | 2016.12.05 |
---|---|
[페스] 페스 알 마크젠 왕궁 (0) | 2016.12.05 |
[모로코] 탕헤르에서 페스 가는 길 (0) | 2016.12.03 |
[탕헤르] 탕헤르에서의 식사 (0) | 2016.12.03 |
[탕헤르] 탕헤르 (0) | 2016.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