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스코페 마케도니아 광장
2017년 4월 23일 일요일
발칸 9개국 여행 여덟째 날
크로아티아 - 슬로베니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 알바니아 -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 불가리아 - 루마니아
유네스코 복합유산인
오흐리드를 뒤로 하고 3시간여를 달려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스코페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투어에 나서기 전
체밥치치로 점심을 단단히 먹고
씩씩하게 거리로 나섰다.
동상들이 많다 보니
감흥이 무덤덤해진다는 평이 있는
마케도니아 광장 모습이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스코페 시내
마케도니아 스코페는
각종 동상들이 많다더니 도시에
들어오자 마자 곳곳에서 눈에 띈다.
스코페 시내
마케도니아의 수도로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고,
발칸반도의 중앙이며
남북으로는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와 그리스의 아테네,
동서로는 불가리아 소피아와
알바니아의 티라나의 중앙에 있다.
동에서 서로 뻗은 스코페 계곡 안에
그리스의 에게해로 흘러가는 바르다르 강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
도시 크기는 동서로 30Km정도
남북으로 10Km정도의 면적을 가진다.
스코페 시내
주요 유적으로는 지진으로 깨진 돔이 있다는
무스타파 파샤 모스크는 1492년에 건립되었으며,
마케도니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슬람 건축물로 꼽힌다.
또한, 고대 로마양식 수로와 바르다르강에 놓여진
오스만투르크제국 당시에 지어진 돌다리,
1466년에 건설된 다우드 파샤 목욕탕과
이콘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스베티 스파스 교회 등이 있다.
키릴문자로 된 간판
스코페는
106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1963년의 대지진으로
도시의 80%가 붕괴되는 참사를 겪었다.
대지진 후 국제적인 원조하에
전면적으로 도시계획을 새로 수립하여
재건하며 도시의 배치를 새롭게하였으나
최근에 이러한 도시계획이
스코페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였다고 하여
"스코페 2014"라는 새로운 계획하에
도심지역의 대대적인 개조 작업에 들어갔다.
마케도니아 거리
알렉산더 대왕의 청동상이 보인다.
노숙자 동상
스코페 시내에는
이런 저런 동상들이 많고
또 계속 생긴다고 하는데
노숙자 동상까지...ㅋ
왼쪽 마케도니아 개선문
마케도니아는
1991년 9월 8일 민주적으로 선출된
글리고로프 대통령 지휘 아래
유고 연방으로부터 무혈 독립을 이루었다.
마케도니아 개선문
스코페 중앙 광장의 마케도니아 문으로
스코페 2014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케도니아 독립 20주년을
기념해 만들었다.
마더 테레사
테레사 수녀는
마케도니아 스코페 (구 유고슬라비아)의
알바니아계 가정에서 태어나
1928년 아일랜드의 로레타 수녀원에 들어갔다.
1948년 인도 캘커타에서
"사랑의 선교 수녀회"를 창설하여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봉사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마케도니아의 스코페는 그녀가 태어난 곳이다.
이곳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마더 테레사의 일생 포스터
마케도니아 정부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테레사 수녀를 기념하기 위해
2010년 기념관과 동상을 건립했다는데
시간상 가지 못했다.
스코페 마더 테레사 기념관
본명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
마더 테레사는
1978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는데,
그 수상 축하연에서 사용될 돈을 빈민구제 기금으로
써 달라고 요청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란
기자의 질문에는
"집에 돌아가 가족을 사랑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알바니아계 인도 국적의 로마가톨릭교회 수녀
테레사 수녀가
1997년 말라리아로 사망하자
인도 정부는 국장으로 장례를 엄숙히 치루었다.
사후 2003년 10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 바로 아래 단계인
캘커타의 복녀 테레사 복자로 서품되었고,
선종한 날인 9월 5일이 축일로 제정되었다.
2016년 3월 교황청 시성위원회는 심사를 거쳐
테레사 수녀를 성인으로 추대하였으며,
같은 해 9월 4일 시성식을 통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인 추대 사유로 두 가지 기적을 내세웠는데,
하나는 2002년 테레사 수녀 타계 1주년 기도회 때
참석한 30대 인도 여성이
종양이 모두 사라져 암을 극복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2008년 다발성 뇌종양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한 브라질 남성이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를 올린 후
이틀 만에 완치된 것이다.
마더 테레사 시복식때
바티칸 베드로성당 광장을 메운 인파들
마더 테레사 수녀의 생가 터 표지석
마더 테레사 수녀의 생가 터
스코페 신시가지는
새로 건축된 건물이 밀집한 지역으로
주로 마케도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하며,
구시가지에는 알바니아계 무슬림,
터키인, 로마인들이 많이 거주한다.
마케도니아 출신 세계적인 인물로는
알렉산더 대왕 (그리스와 분쟁 중)과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아누스 1세 황제 그리고
마더 테레사라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기마상
스코페 신시가지 중앙에 위치한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더 대왕의 기마상
뉘신지?
영어가 아니라 키릴문자라...
스코페 신시가지인 마케도니아 광장
기마상 높이 14.6m, 무게 30t,
받침대 높이 14.9m, 제작비용 138억원의
알렉산더 대왕 기마상
스코페는
3,5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도시였는데
1963년 대지진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그러자 각 국의 원조가 들어왔고
마케도니아는 이 원조금으로 시가지를 복원하고,
새로운 수도로서 면목을 갖추었다.
스코페는 지금 관광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보드노 산의 밀레니엄 십자가
조그마하게 보이지만
높이가 66m 나 되는 대형으로
기독교 2,000년을 기념해 건립한
세계에서 가장 큰 십자가다.
마케도니아 광장
스코페 신시가지의 랜드 마크인
알렉산더 청동 기마상
알렉산드로스 대왕 청동 기마상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년-기원전 323년)은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와 올림피아스의 아들로서
알렉산더 대왕, 알렉산드로스 3세라고도 한다.
마케도니아에서 필리포스 2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후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거대한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세웠다.
소년 시절에 대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3년 동안
윤리학, 철학, 문학, 정치학, 자연과학, 의학 등을 배웠다.
그는 열여섯 살 때 이미 아버지의 해외 원정 중에 정무를 대행하였고,
필리포스 2세가 암살되자 스무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그리스의 반란을 진압하고 그리스를 멸망시켰다(기원전 338년).
이어 오리엔트 전역을 정복하여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세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하였다.
기원전 323년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33세의 나이에 병으로 죽고 말았다.
알렉산드로스 제국과 원정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페르시아인과의 혼인을 통하여
동, 서 융합을 꾀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교통로를 정비하여 경제 발전을 촉진하였다.
이를 통해 동서 교통이 용이해졌으며,
각지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를 보급하였다.
제국 곳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세웠다.
그가 죽은 후 제국은 내전 상태가 지속되었고,
결국 셀레우코스 왕조(시리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이집트),
마케도니아 왕국(그리스), 리시마코스 왕조로 분할되었다.
알렉산더 모자이크 중 대왕의 모습, BC 300년경, 폼페이 출토
알렉산더 대왕 기마상
알렉산더 청동 기마상
알렉산더대왕이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을 지배하였으나,
마케도니아 인종은 고대 그리스계가 아니라
6~7세기에 이주한 남슬라브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사실 때문에 고대 그리스계인
알렉산더 대왕을 두고 그리스와 분쟁이 있다.
또한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그리스의 반발이 심했는데,
사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고대 왕국의 이름이다.
그러나 마케도니아는 이 지역의 역사는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유엔은 국가명을 마케도니아가 아닌
구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승인하였다.
마케도니아 광장
신시가지에 있는 광장인데
동상들이 진짜 많다.
오히려 동상들이 많으니
집중력이 떨어진다.
연인 동상인가?
관광지 조성을 위해
많은 동상을 세워 오히려
유럽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스코페
기마상은 오른쪽 고체 델체프,
왼쪽 담 그루에프이다.
이들은 마케도니아 독립투사이다.
마케도니아 광장
돌다리는 마케도니아 광장부터 시작되며
돌다리 앞 광장 쪽엔 5m 높이의 2개의 동상이 있으며,
기마상은 고체 델체프, 담 그루에프의 기마상이다.
돌다리 끝지점엔 4명의 성인상이 있다.
성인상은 키릴 문자를 만든 키릴, 메토니오와 제자들인
클레멘트와 나움의 동상들이다.
터키식 돌다리 북쪽에는 발칸 반도 최대의 터키탕이었지만
현재는 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다우트 파샤 목욕탕이 있다.
마케도니아 독립기념관
1963년 1,0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지진으로 무너진 18~19세기 건축물들은
다시 멋진 공공건물들로 태어나고 있다.
스코페 2014 계획 아래
새로 도시를 개발 중이다.
오른쪽 건물은 법원이다.
비잔틴 제국 유스티아누스 1세 황제 (483-565.11.14.)
로마법대전 또는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편찬하였으며
터키식 돌다리와 칼레 요새를 건축한
동로마 제국(비잔틴) 유스티아누스 1세의 동상이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을 만들었으며
스코페 출신이다.
유스티아누스 1세 황제 (483-565.11.14.)
동로마 제국으로도 불리는 비잔티움 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에 최대의 판도를 이룩했다.
그는 분열된 동서 교회를 통합시키고,
이탈리아 본토 회복과 지중해 세계의 통일로
옛 로마 제국의 영광을 되찾고자 했다.
지칠 줄 모르는 노력으로 대제국의 꿈을 이루려 한
그는 대제의 칭호를 받았다.
스코페 터키식 돌다리 (스톤 브릿지) 까멘모스트
스코페 터키식 돌다리 까멘모스트
스코페의 상징으로 손꼽힌다.
바르다르 강을 가로질러 각각
신,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마케도니아 광장과
스코페 동방시장을 잇는다.
터키식 돌다리 (스톤 브릿지)
이름은 까멘모스트라 한다.
까멘로스트는 바르다르 강 위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해주며,
11개의 아치로 구성된 터키식 돌다리이다.
15세기인 1451년-1469년 사이에
오스만 투르크 정복자인
술탄 마흐메드 2세의 후원으로 만들어졌다.
11개의 아치로 구성된 터키식 돌다리
사형집행장소로도 쓰인 돌다리는
오스만 투르크 지배때에 부역한 사람들을
강에 빠뜨려 죽였다 한다.
터키식 돌다리
1555년의 대지진,
1944년 파시스트의 테러 미수 등
여러 사건을 견뎌냈다.
터키식 돌다리 (스톤 브릿지)
스코페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도시 중앙을 흐르는 바르다르 강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뉘어 진다.
강북에는 옛 구 시가에 구 시장(Old Bazaar)과
스코페 요새가 있고
이 지역에는 알바니아계 무슬림,
터키인, 로마인들이 많이 거주하며
강남에는 새로 건축된 건물이 밀집한 지역으로
주로 마케도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한다.
수영 입수동상
물이 많아서 물에 빠진 자의 동상은
발목이 겨우 보인다.
바르다르 강
도심을 통과하는 바르다르 강은
데살로니카 에게해로 흘러간다.
바르다르 강의 이름은
바르다리우스 황제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고고학 박물관(Archeological Museum of Macedonia)
도시의 면모를 새롭게하기 위해 시작한
"Skopje 2014" 프로젝트의 하나로
2014년 문을 연 네오클라식 양식으로 재탄생한
고고학 박물관이다.
선사시대부터 오스만 시대까지의
유물들을 전시한다.
예술의 다리
예술의 다리 왼쪽 끝 돔 건물은 검찰청사
앞의 예술의 다리 너머에는
문명의 다리가 있다.
예술의 다리
다리 난간 양쪽에
근 현대의 작가, 화가, 음악가, 배우 등의
동상 29개가 늘어 서 있다.
뒤에는 바르다르 강 위의 선상 레스토랑
마케도니아의 동상들은
위인의 업적이 클수록 말이 올라선 각도가 크고
땅에 닿은 말의 발 개수가 적다고 한다.
고체 델체프, 담 그루에프의 기마상
돌다리 앞 광장 쪽엔 5m 높이의 2개의 동상이 있으며,
마케도니아의 독립투사인 고체 델 체프(1872-1903년)와
독립투사 담 그루에프 기마상이다.
터키식 돌다리에서 구시가지 쪽을 본 모습
필리포스 2세의 동상이
아들 알렉산더 대왕의 기마상을 향해
손을 올린 모습이 보인다.
터키식 돌다리에서 신시가지 쪽을 본 모습
알렉산더 대왕의 기마상이 보이는데,
스코페 프로젝트 초기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무명의 여자 조각가의 작품이란다.
알렉산더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의 문장을 상징하는
마케도니아 국기
스톤 브릿지 까멘모스트를 건너고 있다.
구시가지 쪽 모습
카피야 (작은 기도소)
돌다리를 건너다 보면 나오는데
카피야 (작은 기도소)라고 한다.
구시가지 쪽 터키식 다리 초입 양쪽에
키릴 문자를 만든 키릴로스와 형 메토니오스,
그리고 키릴로스의 수 제자 성 클레멘트와 성 나움의
동상이 서 있다.
왼쪽 스코페 요새,
중앙 성 디미트리아 성당과 종탑
< 못 가 본 스베티 스파스 교회를 올렸다.>
스베티 스파스 교회
이 교회가 건축될 당시(17세기)엔
그 어떤 건물도 이슬람 사원보다
높이 지을 수 없어 가려졌다고 한다.
스베티 스파스 교회 종탑
[참고출처: 두산백과, 학생백과,]
[서명이 없는 사진은 인테넷에서 퍼 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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