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칼레메그단 공원과 요새

푸른 바다. 2017. 8. 3. 13:58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칼레메그단 공원과 요새

 

 

 

2017년 4월 24일 월요일

발칸 9개국 여행 아홉째 날

 

크로아티아 - 슬로베니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 알바니아 -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 불가리아 - 루마니아

 

 

오늘은 호텔에서

느긋하게 오전 8시 30분에 출발해

발칸반도 최대의 도시이자,

발칸반도 역사의 주인공인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관광한다.

보스니아와 코소보 내전 때

무슬림을 인종청소했다는 뉴스를 듣고는

한탄 하면서 궁금해 했던 나라였다.

베오그라드는 하얀도시란 뜻이다.

 

 

 

 

베오그라드

 

하얀성벽으로 둘러싸인 베오그라드는

세르비아의 수도로

 다뉴브강과 사바강이 합류하는 지점

우안에 위치한다.

 

 

 

 

베오그라드 다리

 

베오그라드를 가로지르는 사바강에는

아름다운 사장교와 현수교가 놓여있다.

 

 

 

 

하얀도시라는 뜻의 베오그라드

 

예전에는 유고연방의 수도였고

현재는 세르비아의 수도로서

세계의 수많은 기업들이 들어와 있으며

종합대학과 300여개 가까이의 학교들,

과학예술 아카데미와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어 문화의 중심지로도

발전하고 있다.

 

 

 

 

칼레메그단 성벽과 승리의 상

 

베오그라드는 크로아티아어로

하얀도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로마 제국 당시 이 지역을 점령한 로마인들이

흰 벽돌로 성벽을 둘러 쌓았기 때문이다.

 

 

 

 

칼레메그단 성벽 위의 승리자 (빅토르)동상 1928년

 

사바강을 바라보고 있는 승리자 상은

원래 베오그라드 시내 중심가에 있었으나

벌거벗은 동상의 남자 심벌이 너무 적나라하여

일부 시민들의 반대로 이곳으로 옮겨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강쪽으로 세웠다고 한다.

 

 

 

 

 

 

 

승리자 상 정면 (인터넷에서 퍼 옴)

 

왼손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오른손에는 검을 들고 있는 승리자 상은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로 세워졌다.

 

 

 

 

칼레메그단 성벽

 

베오그라드에서는

예로부터 자주 전쟁이 벌어졌다.

기원전 3세기부터

2,000년 동안 44번이나 파괴되고

다시 지어진 도시가 베오그라드이다.

19세기 초부터 오늘에 이르는 기간까지도

파괴가 거듭되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평화가 유지되고

거리에는 고층건물과 상점이 늘어서는 등 개방적이며,

자유로운 분위기의 거리가 건설되었으나,

과거 파괴의 역사 때문에

고대, 중세의 유적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볼 만한 유적으로는 로마풍의 우물이 있는

칼레메그단 성터, 네포이샤성,

다마두파샤의 묘 등에 불과하다.

 

 

 

 

 

베오그라드는

유럽에서 비잔티움으로 가는

중간에 위치한 전략적 가치로 인해

역사적으로 115번의 전쟁을 치르며

44번 도시가 파괴되는 역사를 갖고 있다.

 

 

 

 

 

베오그라드는

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파괴와 건설이 반복되며

도시 요새인 칼레메그단 외에는

대부분이 18세기 이 후에 건설된 건축물이다.

 

 

 

 

차창으로 보는

베오그라드 도시의 모습

 

 

 

 

 

베오그라드는

고풍스러움과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환경이 남아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인구 100만의 베오그라드는

사바나강을 중심으로 도시 남부에는

노비베오그라드가 형성되어

행정기관과 주택가들이 몰려 있다.

 

 

 

 

 

115번의 전쟁을 치르며

44번 도시가 파괴된

전쟁의 역사로 점철된

베오그라드를 차창으로 보고있다.

 

 

 

 

아직까지도 사회주의적인 느낌이 난다.

 

 

 

 

 

 

 

 

베오그라드는

사바 강과 다뉴브 강이 만나는 지점에 건설된 도시로

두 강이 만나는 오른쪽 강변 언덕에

구시가의 요새가 건설되었다.

1456년에 10만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온

오스만 제국이 승리한 후

주변 지역이 모두 오스만에 함락된 후에도 

70여년을 오스만 공격에 버텨온 역사를 갖고 있다.

결국 1521년 25만명을 이끌고 쳐들어온

오스만 터키 술탄 술레이만 대제에게 함락되었다.

 

 

 

 

베오그라드 중앙역

 

 

 

 

베오그라드 도심 안내판

 

 

 

 

베오그라드 중앙역 앞 트램

 

 

 

 

베오그라드 중앙역

 

 

 

 

베오그라드는

좌안쪽의 저지대에 있는

제믄 지구를 편입시켜

신도시인 노비 베오그라드가 건설되었다.

 

 

 

 

베오그라드 트램

 

 

 

 

 

 

 

 

베오그라드는

한때 발칸 반도 대부분을 아우르던

유고슬라비아의 수도였던 도시답게

확실히 도로와 건물들의 스케일은

자그레브나 사라예보 등 다른 수도들보다

크고 넓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칼레메그단 공원

 

 

 

 

이 곳에서 내려 공원으로 들어갔다.

 

 

 

 

칼레메그단 공원

 

 

 

 

칼레메그단 공원

 

공원 안에는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절인 535년 경

지어진 요새 등 로마시대의 요새 흔적과 함께

진단문, 산책로, 동물원, 무기박물관,

승리자의 탑(또는 빅토르 동상), 투쟁의 분수, 모스크,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에 대한 감사기념비,

예술가들의 흉상 등이 있다.

 

 

 

 

칼레메그단 공원의 동상들은

예술가들의 흉상이라는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칼레메그단 공원

 

칼레메그단 공원은

1868년 베오그라드에서 첫 번째로 조성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공원으로서

사바강과 다뉴브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며

면적은 30헥타르 정도이다.

 

 

 

 

투쟁의 분수

 

 

 

 

프랑스에 대한 감사기념비

 

제 1차세계대전 당시 도와준

프랑스에 헌정된 거대한 청동상인데,

주변 공원도 프랑스 풍으로 조성되어 있다.

 

 

 

 

프랑스에 대한 감사기념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가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프랑스 국민에게 헌정한 기념비다.

 

 

 

 

프랑스에 대한 감사기념비

 

프랑스 여인이 제 1차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발생한 세르비아 고아들을 열심히

돌봐준 것을 부조했다.

 

 

 

 

프랑스에 대한 감사기념비 글

 

1914-1918년 프랑스가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도 프랑스를 사랑합니다.라는 글귀

 

 

 

 

 

 

 

프랑스식 정원

 

프랑스식 정원을 꾸며

프랑스에 대한 감사기념비를 세웠다.

 

 

 

 

 

 

 

군사박물관 건물

 

고대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다양한 병기와 군사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세르비아의 영토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천되었나를 보여주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대터키 항전의 역사,

제 1차세계대전 및 제 2차 세계대전에서의

전황을 한 눈에 볼수 있다고 한다.

 

 

 

 

칼레메그단 공원의 모습은

공원과 요새, 성채가 어우러진 곳이다.

 

 

 

 

칼레메그단 요새

 

세르비아의 오랜 역사적 자취가 남겨진 곳으로
요새는 3세기 켈트족이 정착한 그 이후로

몇 세기에 걸쳐 축조되었다.

비잔틴 제국이 이곳을 점령했을 당시

고트족과 훈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535년 요새를 세우게 된다. 

그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정복과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기도 했으나

여전히 요새는 2천여 년의 역사를 함께한
베오그라드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테니스코트

 

세르비아 국민들이 테니스를 좋아해서

곳곳에 테니스코트가 많다고 한다.

2016년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인

노박 조코비치는 국민적 영웅이다.

 

 

 

 

칼레메그단 요새

 

오스만 제국이 비잔틴 제국에 승리한 1521년 이후,

요새는 방치되어 황폐해졌으나,

오랫동안 침략을 받은 베오그라드의 역사와

나토의 폭격에도 여전히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요새의 벽 모든 면에 남아 있는 전투의 상처는

전쟁에 시달린 베오그라드의 과거를 보여준다.

 

 

 

 

키릴 문자로 갤러리란 뜻

 

이 지역에는

BC 3세기에 켈트족이 최초로 정착하였고

이후 지정학적 중요성에 의해

군사요새가 여러 번 건설되거나 증축되었다.

비잔틴 동로마제국에 의해 정복된 후

사바강과 도나우강 합류지점 옆 구릉에

 요새화된 군사진영이 구축되었다.

중세시대 이후에는 성벽 내에서 마을이 발전하고

인구가 집중해 살았으며 이를 토대로

베오그라드의 도시형태가 수립되었다.

 

 

 

 

칼레메그단 요새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칼레메그단 공원 안, 요새 앞에

공룡의 조형물이 가득하다.

안 어울리지만 공룡 모형을 이곳에 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칼레메그단 요새 입구인 왕의 문

 

성곽 안쪽으로 들어가는 문 중 하나인

왕의 

 

 

 

 

 성벽 입구에서 바라다 본 왕의 문과 시계탑

 

이 문을 통해 들어가면

칼레메그단 요새가 있다.

 

 

 

 

 

 

 

왕의

 

 

 

 

왕의 문을 통과하면

 

 

 

 

시계탑 문

 

시계탑과 문이 또 하나 나온다.

성벽과 성벽 사이에는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내,외 성벽과 성벽 사이 해자에 전시되어 있는 무기

 

터키어로

칼레는 요새, 메그단은 전장을 뜻한다.

언덕위에 군사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어

여기저기 무기가 전시되어 있다.

 

 

 

 

칼레메그단 군사박물관의 야외 전시장

 

다뉴브강과 사바 강의 합류지점에 자리한
베오그라드 칼레메그단 요새는

오랜 세월 외부의 침략을 받아

요새 벽면 곳곳에는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베오그라드의 상징적인 역사의 현장으로

군사 박물관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군사박물관의 야외 전시장

 

들어가 보지 못한

요새 안의 군사 박물관에는

기원전부터 최근까지

세르비아의 굴곡진 역사를 함께한

무기와 군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세르비아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였다고.

그리고 나치 침공에 관한 매우 상세한 기록이 있고,

나치에 저항했던 혁명가 출신인 티토를

때로는 영웅으로, 때로는 독재자로

상반되게 기술해 놓았다고 한다.

 

 

 

 

내,외 성벽 사이는 해자였다.

 

 

 

 

제 1차세계대전 때 쓰였던

4만점의 무기를 진열해 놓았다.

 

 

 

 

칼레메그단 요새 안내판

 

 

 

 

칼레메그단 요새의 시계탑

 

 

 

 

시계탑 문을

 

 

 

 

통과해서

 

 

 

 

뒤로 돌아 본 시계탑의 모습

 

 

 

 

칼레메그단 요새 안내판

 

 

 

 

다마트 알리 파샤의 영묘

 

지붕 꼭대기에 초승달과 별 모양이 있는데

예전의 오스만 터키 침략시

오스만 술탄 아흐메드 3세(재위 1703-1730) 때

대재상을 지낸 다마트 알리 파샤이다.

1716년 베오그라드 북서쪽에 있는

페트로바라딘 요새에서 오스만 제국 총사령관으로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군에 패하면서 전사했고,

1741년에 무덤을 조성했다고 한다.

 

 

 

 

 

칼레메그단 요새는

오랫동안 침략을 받은 베오그라드의 역사와

나토의 폭격에도 여전히 온전한 모습을 유지한 채,

자랑스러운 상징으로 남아 있다.

 

 

 

 

베오그라드 성벽 돌

 

이 도시 이름이 베오그라드인 것은

이 성벽을 쌓을 때 사용한 돌이 흰색이었고

거기에다 grad를 합성해서 하얀도시라고

이름이 불려졌다.

그러나 17세기에 허물어진 성을 복원하면서

붉은 벽돌로 쌓아 지금은 붉은 성벽이 되었다.

 

 

 

 

칼레메그단 요새

 

사바강과 도나우강의 합류지점인

스타리그라드의 높이 125.5m 지대에 위치한다.

세르비아의 유명한 역사적 장소로,

2000년의 역사를 지녔다.

터키어로 칼레는 요새, 메그단은 전장을 뜻한다.

사바강이 다뉴브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의

아름다운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기원전 4세기 켈트시대부터

베오그라드의 성곽이었던 칼레메그단 요새

 

 

 

 

왼쪽 사바강이

오른쪽의 도나우강과 합류하는

합수지점

 

 

 

 

베오그라드의 젖줄이자

요새를 감싸고 도는

사바강과 다뉴브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성벽 위에서 바라본 풍경

 

 

 

 

오른쪽 육각형 건물 네보이샤 탑

 

외관이 육각형이며

내부가 4층인 네보이샤 탑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네보이샤 탑

 

네보이샤 탑은 1460년 경 메흐메드 2세의

침략에 대비해 구축한 베오그라드 요새의

일부분으로 본래 포대탑이었다.

도나우 강변의 길목을 지키는 네보이샤 탑은

오스만 제국의 침략을 저지하는 첨병역할을 했지만

1521년 여름 술레이만 대제에게 함락당하고 만다.

그 후 이 포대탑은 본래의 기능 대신

세르비아인들을 감금하고 고문하는

지하감옥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박물관에는 당시의 참혹한 모습을

구현해 놓았다고 한다.

 

 

 

 

베오그라드 시가지를 흐르는 사바강

 

 

 

 

 도나우강은 독일에서 발원해서

유럽 대륙의 남동부로 2,850Km를 흘러

흑해로 들어간다.

 

 

 

 

 

 

 

입구로 돌아가는 중이다.

 

 

 

 

 

 

 

시계탑 문

 

 

 

 

 

 

 

왕의 문

 

 

 

 

 

 

 

공원으로 통하는 문

 

 

 

 

문 3개를 통과해서

프랑스식 정원에 도착

 

 

 

 

횡단보도를 건너면

크네즈 미하일로 거리가 시작된다.

 

 

 

 

크네즈 미하일로 거리 초입에서 본

칼레메그단 공원

 

 

 

 

 

베오그라드는

12세기경 주변의 국가들과

지배권을 다투었을 정도로

교통과 군사적 요지인 베오그라드는

역사적 환경에 따라 지배권에 따라

늘 지배권이 바뀌면서

안정된 역사를 누려보지 못했다.

 

 

 

 

 성 사바 정교회 (여행사 홈피 사진)

 

도심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Kralja Milana 거리의 남쪽 끝자락,

카라조르제 공원에 자리한 성 사바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정교회 건물이다.

오스만과의 전쟁중에 오스만의 장군이

성인 사바의 유해를 불태운 장소에

세워진 정교회 건물이다.

동서로는 91m, 남북으로는 81m,

그리고 높이는 70m로

한 번에 만 명이 수용 가능하다.

 

 

 

 

성 사바 교회 내부

 

 

 

 

[참고출처: 두산백과, 여행사 안내서]

[서명 없는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