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이탈리아 라벤나]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

푸른 바다. 2018. 11. 19. 11:20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 (Basilica of San Vitale)




2018년 4월 1일 일요일

미소국여행 넷째 날



어제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를 떠나,

천년 비잔틴 문화가 찬란히 빛나고 있는

모자이크의 도시 라벤나에 도착했다.

하룻 밤 피로를 풀고는

오늘 아침 호텔에서 식사를 한 뒤,

라벤나의 8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산 비탈레 성당부터 둘러 보았다.

바실리카 산 비탈레(Basilica of San Vitale)는

초기 기독교시대의 보물로 꼽히고 있는데,

내부에는 라벤나를 다시 탈환한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와

그의 부인 테오도라 황후의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다.






여행 지도


라벤나시는 특히 모자이크의 도시다.

고대 기독교와 비잔틴의 종교건축물들

내부에는 현란한 색상의 모자이크가

천정과 벽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라벤나의 8개 건축물은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인류문화유산이다.






이탈리아 여행 지도





라벤나 지도





라벤나는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 동쪽 약 70km의

에밀리아 로마냐 주 동부의

아드리아해에 가까운 옛 도시로서,

포강 하류에서 운하아드리아해와 연결된다.

인구 약 13만 5000명의 라벤나 현의 현도로,

로마시대에 이미 아드리아해 북부 해역을

감시하는 로마 해군의 기지였으며,

비잔틴제국 시대에는 동서교역의 중심지로서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8세기 해안선의 변화로 항만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시는 쇠퇴하였다.

도시 일대가 풍부한 농업지대이자

철도의 분기점이어서 농산물의 집산, 가공이 활발하며,

1953년 천연가스가 발견되어 석유화학, 정유,

가스정제, 합성고무 등의 공업도 발달하였다.





라벤나의 초기 기독교 기념물 (유네스코세계유산)


라벤나는 5세기에는 로마 제국의 중심지였으며,

8세기까지 비잔틴 제국의 중심지였다.

이곳에는 초기 기독교의 독특한 기념물이 모여 있다.

라벤나에 세워진 8개 건축물인 갈라 플라치디아 영묘,

네오니안 세례당, 산타 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아리안 세례당,

아르키에피스코팔 예배당, 테오도리크 영묘, 산 비탈레 성당,

클라세의 산타 폴리나레 성당 등은

모두 5세기와 6세기에 건축되었다.

이 건축물들은 그레코로만의 전통, 기독교의 도상학,

동 서양의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성당 내부를 장식한 모자이크화는

놀라운 예술적 기량을 보여 준다.





라벤나


404년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 재위,395-423)는

로마를 버리고 라벤나를 수도로 정했다.

그 자신과 그의 여동생 갈라 플라치디아가 다스렸고,

이어서 게르만 왕 오도아케르(재위 476-493) 및

테오도리쿠스(재위 493-526) 가 지배하였으며,

다시 540년 비잔틴 황제가 정복하였다.

이들 시대에 굉장한 번영을 이룩하여

갈라 플라치디아 묘당,테오도리코 묘당, 정통파 세례당,

아리우스 파 세례당, 산타 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산 비탈레 성당,대사교판 부속성당,

남쪽교외의 산 타폴리나레 인 크라세 성당 등

초기 비잔틴 건축,모자이크 등이 많이 남아 있다.





라벤나는

시성 단테가 조국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후

이곳에서 살았고 그의 묘 또한 이곳에 있다.











초기 기독교 예술을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지는

라벤나 중심부의 팔각형 모양 산 비탈레 성당은

아름다운 6세기 모자이크가 보존되어

가톨릭 전통과 조화를 이룬 비잔틴 문화를 볼 수 있어

유네스코 문화유산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모자이크란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다양한 색상의 유리나 돌을

벽에 일일이 붙여서 장식하는 회화기법이다.

기원전 3세기 로마제국시대에도 사용됐지만

이를 최고의 예술 경지로 끌어올린 곳이

바로 라벤나이다.

현재 라벤나에 남아있는 모자이크 작품들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보존상태가 완벽하여

그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산 비타레 성당은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527~565년)가

잃어버린 로마제국의 땅을 회복하기 위해

라벤나를 정복한 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를

짓도록 명령해 만들어진 성당이다.

산 비타레 성당안의 모자이크는

파손 없이 고스란히 보존돼 6세기 동로마제국의

문화와 종교, 예술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문호 단테는 성 비탈레 성당과

클라세의 산타폴리날레 인 클라세 성당의

모자이크를 보고 라벤나를 지상 낙원,

라벤나의 모자이크는 색채의 교향악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산 비탈레 성당

유네스코 세계인류문화유산


산 비탈레는 라벤나 역사에서 가장 위대했던 시기,

동방과 서방인 콘스탄티노플과 로마 간의 관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던 시기에 건설되었다.

이 교회는 이처럼 서로 매우 다른 문화에서

받은 영향을 반영하는데,

특히 서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눈부신 모자이크가 그 예이다.





산 비탈레 성당(San Vitale)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서기 526~548년 사이에 지은 산 비탈레 성당은

525년 교황을 만나고 온 주교 에클레시우스(재위 521~532)가

성인 비탈레가 순교한 땅에 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대주교 빅토르(Victor, 재위 538~545) 때에

주요 부분을 건조하였다.

547년 대주교 막시미아누스(재위 546~556) 때

 헌당된 팔각당 형식의 성당으로서,

그리 알려지지 않은 성인인 성 비탈리스에게 봉헌했다.

성당 건축에 전적으로 재정 지원을 한 사람은

은행가인 율리아누스 아르겐타리우스로

아르겐타리우스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라벤나에 파견한 특사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산(성) 비탈레 성당


로마-비잔틴 양식의 교회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모자이크 작품 일부가 있다.





산 비탈레 성당(San Vitale)


5세기 비잔틴제국의 수도였던 라벤나에서

동로마제국의 문화와 종교, 예술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는 산 비탈레 성당





산 비탈레 성당(San Vitale)


비잔틴 양식의 팔각형 모습이나

돔과 출입구는 로마 양식이다.




산 비탈레 성당(San Vitale)


비잔틴 양식의 탑은

벽돌로 지어졌고

내부에는 좁은 계단이 있으며

4개의 종이 설치되어 있다.








로마 양식인 출입구







팔각형 모양의 산 비탈레성당





산 비탈레 성당


교회는 독특한 팔각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외부 측랑과 갤러리가 있다.

로마와 비잔틴 양식이 섞여 있는데,

비잔틴 양식의 영향이 조금 더 크다.











산 비탈레 성당(San Vitale)


산 비탈레의 건축은

그때까지 강하게 남아 있던 로마 건축의

영향을 벗어나 다각형 앱스, 기둥머리,

폭이 좁은 벽돌 등으로 대표되는

비잔틴 양식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산 비탈레 성당


로마와 비잔틴 양식의 팔각형 구조로

외부 측랑과 갤러리가 있다.

벽면 모자이크가 특별히 주목되며

본당 반원개에는 성 비탈리스 대주교 에크레시우스를

거느리고 있는 그리스도,

같은 쪽 옆벽에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와 황비 테오도라가 있고,

그곳의 둥근 천장에는 신의 어린 양, 네 천사,

새와 짐승올 배열한 당초문이 있으며

같은 곳 옆벽에는 구약성서의 장면 등이 나타나고 있다.

북쪽에 갈라플라치디아의 묘당이 있다.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모자이크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치적으로는

옛 로마 영토 회복, 로마법 대전 편찬,

중국 양잠법으로 견직공업 발전,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대성당 건축 등이 있다.

테오도르 황후는

유스티니아누스가 황제가 되기 전에 만난 천민이었다.

일설에는 그녀가 무희 또는 창녀였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원로원 신분의 유스티니아누스는 미천한 그녀와

결혼할 수 없었지만 법까지 바꾸며 결혼하였다.

그리고 테오도라 황후는 비잔틴 제국이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해 나갔다.

532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는 청색당과 녹색당의

폭동이 확대되어 니카의 반란이 일어났다.

군중들이 황궁으로 몰려 오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수도를 버리고 도망가려 했다.

이에 테오도라는 유스티니아누스에게

황제는 황제답게 떳떳하게 죽어야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황제는 벨리사리우스 등 장군을

불러 폭도들의 반란을 진압했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와 황후로 위대한 예술을

콘스탄티노플과 라벤나에 남긴 두 사람.

15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콘스탄티노플의 흔적은

희미해졌지만 당당했던 두 사람의 모습은

라벤나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주 출입구가 아닌 부 출입구





산 비탈레 성당 모자이크 바닥


바닥, 합창석, 천장 볼트, 갤러리,

그리고 앱스에서는

콘스탄티노플을 제외하면 성과 속을 통틀어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모자이크를 볼 수 있다.






산 비탈레 성당 모자이크 바닥








아름다운 2층 벽감


클로이스터 볼트로 돔을 올린 중앙부와,

제단과 사제석을 위한 앱스,

그리고 심장부 주위의 여덟 개 기둥 사이에는

쐐기 모양의 기둥머리로 테를 두른

여덟 개의 2층 벽감이 있다.








천장의 돔


천상을 나타내는 돔은 영화된 공간을 의미하며,

이 공간은 예비적인 공간인 낮고 어둡고 험난한 공간을

통과한 후에만 도달할 수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교인이 천국에 이르기 위해 요구되는

지속적인 노력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산 비탈레 성당 돔 천장화





산 비탈레 교회 성화에는

아주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오직 성경에 나오는 인물만을

그렸다는 것이다.

후대의 교황이나 성인, 마리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 시대 그림의 초점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어린 양으로 희생하신 예수님,

그리고 그를 위해 양처럼 헌신적으로 사는

성도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2층의 아름다운 벽감








대리석 기둥






산 비탈레 성당의 내부는

은은하게 빛나는 녹색, 주황색,

그리고 금빛의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다.









라벤나의 산 비탈레성당의 구세주 모자이크화


3개의 창문은 성부, 성자, 성령의 3위일체를 말한다.

그 위에는 보라색 옷을 입고 계신 예수님이

우주 위에 계시고

아래에는 에덴에서 발원한 4개의 강이 흐른다.

2명의 천사 옆으로는 왼쪽이 성인 비탈레,

오른쪽이 당시 대주교였던 에클레시우스다.





3개의 창문을 지나면

천장에는 어린 양이 원형 중앙에 그려져 있다.

그 위로는 예수님(수염이 있는)이 중앙에 계시고

열두 제자가 양쪽으로 여섯 명씩 나뉘어져 있다.





내진 모자이크 궁륭의 식물과 동물 문양


천장 꼭대기에는 어린 양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네 방향으로 천사들이 어린 양을 경배하고 있다.

그것은 어린 양 예수를 높이는 요한계시록의 그림이다.









예수 그리스도 모자이크화


하느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앱스 아래쪽

제실의 깊게 들어간 양쪽 벽 상부에는

산 비탈레 성당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중요하고 유명한 모자이크인

정신을 거느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궁녀를 거느린 테오도라 황후의 아름다운 모자이크

도상들이 마주 보게 장식되어 있다.

황제 부부는 성체의 상징인

빵과 포도주를 담게 된 그릇을 들고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 모자이크

서로 마주보고 있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의 패널화는

초기 비잔틴 모자이크의 최고작으로,

정치적 프로파간다로서의

예술의 힘을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신구약 성서에 나오는 여러 인물은 물론

새와 꽃, 풍요의 뿔까지 등장하는 황금 띠가 넘쳐난다.





예수님(중앙)이 우주 위에 계시고

왼쪽이 성인 비탈레, 오른쪽이 에클레시우스


천장 한 중앙에 예수님이 앉아 계신다.

왕이신 예수님은 오른손에는 왕관을

왼 손에는 일곱개의 봉인이 있는 요한계시록을

들고 계신다,

예수님은 계시록이 말한 대로

보좌에 앉아 세상을 다스린다.

그의 팔은 두 곳을 향한다.

한 곳은 성경으로 교회를,

다른 곳은 왕관으로 세상을 가리킨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생각하는 예수님이 다스리는

두 세계를 보여준다.

에클레시우스는 산 비탈레 성당의 모형을

제물로 바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그의 수행원들


비잔틴적인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

가장 유명한  유스티니아누스와

그의 아내 테오도라를 나타낸 두 개의 패널은

이들의 통치에서 보이는 신격화된 특성이 강조되어 있다.

왕관과 팔루다멘튬을 걸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빵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왼쪽에는 막시미아누스 대주교 등 교회 사람들을,

오른쪽에는 참모와 무장한 친위병들을 대동하여

성체성사를 위해 준비중에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열두 명의 수행자와 함께 그려져 있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연상된다.





내진 모자이크

보석을 두른 테오도라 황후와 신하들


진주 장식의 왕관을 쓴 테오도라 황후는

시녀들과 교회 성직자들을 대동하고

포도주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에게는 후광까지 그려 넣어

비잔틴 제국의 위엄을 온 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실제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대제 칭호까지 받은 왕으로

천 년의 비잔틴 제국 전성기를 이룬 황제다.





강단 좌우에는 네 생물이 나타난다.

사자와 소와 사람과 독수리다.

이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의 네 속성 혹은 복음서의 네 가지 특징을

우리와 같이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자는 왕을 상징하고 마태복음을 의미한다.

소는 섬김을 상징하고 마가복음을,

사람은 인성을 의미하고 누가복음을,

독수리는 신성을 의미하고 요한복음을 상징한다.

그것은 또한 예수님의 네 속성이다.










시나이산에서 십계판을 받는 모세

오른쪽 밑에서 2번째





대형 팔각형 성당에 꽉 찬 아름다운 모자이크 성화


높은 모자이크에는

많은 비잔틴의 형상들을 갖추고 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 예레미아,

12부족과 함께 시나이 산을 오르는 모세,

독수리, 소 등 각자의 동물 심볼과 함께 하는

요한과 누가 등을 묘사한 패널,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묘사한 그림들이 있다.





내진 모자이크 이삭의 희생


왼쪽 벽 뤼네트에는

창세기의 아브라함이 겪은 두 사건을

모자이크로 그린 장면이다.

중앙에는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하는

세 명의 천사와 문 뒤에 서있는 사라의 모습(왼쪽)이다.

사라는 당시 경수 끊어진 늙은 몸이었는데

아들을 낳게 된다는 나그네의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웃는다.(창 18장)

오른쪽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고

칼로 내리치려고 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번제로 드릴 숫 양을

벌써 준비해 놓고 계셨다.(창 22장)








아벨과 멜기세덱의 제사


강단 왼쪽의 아벨은

어린 양(창세기 4장 4절)으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있다.

이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제사다.

오른쪽의 멜기세덱은 떡을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손이 있다.





비탈레 교회 모자이크에

많이 등장하는 주제가 양이다.

양도 다양하다.

아벨의 양, 아브라함의 번제의 양, 모세의 호렙산 양,

그리고 승리자이신 어린 양 같은 그림이 반복된다는 것은

그 시대 성도들의 신앙의 관심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여준다.





1500년 전인 5~6세기 사이에 건축된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라벤나에서 그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





 빛이 바래지 않은 모자이크화 속에서

유스티아누스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는

여전히 화려했는데

빛이 잘 드는 날이면

더욱더 찬란하게 빛난다고 한다.









산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 벽


모자이크는

영구히 보존될 그림을 그리는 진정한 방법이라고

어느 유명한 화가가 르네상스 시대에 정의한 바 있다.












미로를 묘사한 모자이크 바닥





터키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성당보다 10년 후에 지어진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






라벤나에 잠들어 있는 단테는

성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를 보고

라벤나를 지상 낙원, 색채의 교향악이라는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산 비탈레 성당 북쪽의

갈라 플라치디아(Galla Placidia) 영묘




[참고 발췌: 두산백과,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서양건축문화의 이해, 국민일보]

[서명이 없는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