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모스타르 스타리 모스트, 구시가지
2017년 4월 20일 목요일
발칸 9개국 여행 다섯째 날
크로아티아 - 슬로베니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 알바니아 -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 불가리아 - 루마니아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된
오스트리아 황태자부부 암살 사건이 일어난 사라예보를
이상 기후로 찿아 온, 눈 추위와 싸우며 투어하였다.
구시가지 장인의 거리가 있는 전통 시장
바슈카르지아에서 체밥치치로 맛잇게 점심을 먹은 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다섯번째 도시이자
헤르체고비나 지역의 수도격인
모스타르에 도착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스타리 모스트를
둘러보았다.
메주고리예에서 사라예보로 들어갈 때
마주한 야블라니차 마을을
모스타르로 나가면서 다시 조우했다.
다시 봐도 아름다운 마을이다.
야블라니차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중앙지역에 자리한 산악지대로
험준한 산과 그 사이로는 네레트바 강이 지나는 지역으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티토가 파르티잔을 이끌고
승리한 네레트바 전투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 전투와 관련된 기념물과 박물관등이
이 지역의 주요 볼거리들이지만,
이 지역은 숯불 위에 굽는
오랜 전통의 양고기 요리로도 유명하다.
즈드라바 보다 레스토랑 옆의 전망대
즈드라바 보다(Zdrava Voda) 레스토랑
화장실을 이용하고 난 뒤
다시 모스타르를 향해 출발
차창으로 본 풍경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동유럽 발칸반도의 가운데에 있는 나라로
예전에는 유고슬라비아였는데,
1992-1995년에 내전을 겪은 뒤
여섯 나라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로 갈라졌다.
특히 보스니아는 전쟁에서 주로 적대하던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의 가운데에 위치했기 때문에
국토 전반에 걸쳐 전쟁의 피해를 심하게 입었다.
유고 내전의 배경은 흔히 '123456'이라는 숫자로 설명한다.
유고연방은 한 개 국가 안에 두 개 문자(칼릴문자와 러시아문자),
세 개 종교(동방정교회, 가톨릭, 이슬람교),
네 개 언어(세르비아어, 크로아티아어, 슬로베니아어, 마케도니아어)
다섯 개 민족(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 마케도니아인, 몬테네그로인)
여섯 개 공화국(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으로
복잡하게 구성돼 있고 여기에 7이라는 숫자가 하나 더 붙는데
주변 일곱 개 국가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나 발칸반도가 복잡한 국가를 이루게 된 것은유럽과 아시아 대륙 사이에, 동로마와 서로마 경계에,
가톨릭과 동방정교 간에,
그리고 게르만민족과 슬라브민족 경계선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질적 요소들이 사회주의 붕괴와 민주화 바람 속에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유고 내전은
유고연방이 사회주의 붕괴와 민주화 바람 속에
1991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제일 먼저 독립했고
그해 11월 마케도니아가,
1992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언했다.
유고연방 주축 세르비아는 독립한 나라들에 사는
세르비아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투입하고 그곳 나라 안에
세르비아 민병대를 조직해 내전이 시작되었다.
세르비아는 특히 마지막으로 독립에 나선
보스니아까지 포기할 수 없다며 총력전을 기울였다.
세르비아군은 보스니아의 많은 이슬람 교도들을
학살하는 인종 청소까지 벌였다.
거기에다 크로아티아군마저 이 기회에
보스니아 내 크로아티아인의 영향력을 키우고
영토를 늘리기 위해 보스니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군대도 체제도 부실한 보스니아 사람들은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앙쪽에게 무참하게 당했다.
1992년 5월 보스니아 내전이 시작돼
나토 개입으로 보스니아가 독립을 이룰 때까지
3년 7개월 동안 450만 보스니아 인구 중에
30만명이 목숨을 잃고 200만명 넘는 난민이 발생하였다.
끔찍한 방화와 약탈, 성폭행, 학살의 상처가
보스니아에 그대로 남아 있다.
보스니아 사람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잊지 않고 다시는 그런 비극을 당하지 말자는 다짐 삼아 파괴되고 손상된 건물을 그대로 고치지 않은 채 쓰고 있기도 하다.
세르비아인들은
내전 중에 인종청소를 자행했는데
보스니아 인종 청소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것은
1992년 스레브레니차 마을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8천명의 이슬람 주민을
기관총으로 쏘아 학살한 뒤 불도저로 파묻은 사건이다.
이 학살의 주범인 당시 세르비아 군사령관 믈라디치가
체포돼 전범재판을 받았는데 그는 재판정에서도
"세르비아민족을 위한 정당방위였다"고 큰소리치고
방청석의 보스니아 유족들을 향해
목을 그어보이는 시늉까지 했다고 한다.
1993년 유고연방에서
독립을 하고자 했던 보스니아를
세르비아 대통령인 밀로셰비치가 이를 저지하면서
30만명의 보스니아인들이 학살당했는데
그 중심의 최대 격전지가 모스타르이다.
벽에 총탄 자국이 가득한 버려진 집
모스타르는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크로아티아 군대와 보스니아 군대가
모스타르의 서쪽과 동쪽을 각각 점거하면서
하나의 도시가 둘로 나뉘어 싸우게 되었다.
그 결과 모스타르는 크로아티아의 부코바르와 더불어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가장 심하게 파괴된 도시라는
슬픈 역사를 갖게 되었다.
유명한 스타리 모스트를 비롯해 수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났다.
전쟁이 끝나고 몇 년 뒤인 90년대 후반이었는데도,
도시의 90% 이상이 무너져내린 상태였다고 했다.
전쟁 종료 후 25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현재는 많이 복구된 것이라고 하는데도
곳곳에 아직 처참한 폐허들이 눈에 띄었다.
모스타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남서쪽에 위치한 인구 11만의 도시이다.
네레트바 강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16세기에 지어진 오스만 제국 스타일의 다리
스타리 모스트가 유명하다.
모스타르라는 도시 이름도
다리 파수꾼이라는 뜻의 단어인
모스타리에서 왔다.
보스니아 내전으로
희생된 이슬람 주민들의 묘지이다.
가는 곳곳마다 묘지가 넘쳐난다.
그만큼 내전으로 희생된 사람이 많다는
뜻이리라.ㅠ
묘지마다 하얀색 십자가
또는 검은색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데
하얀색 십자가는 무슬림(이슬람교)을 상징하며
검은색 십자가는 기독교, 정교도를 상징한다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1984년 동계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사라예보 올림픽 스타디움도
현재는 공동묘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모스타르
오래된 다리라는 뜻을 가진 모스타르는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였으며,
아드리아해로 흘러드는 네레트바강 연안의
역사깊은 도시이다.
15, 16세기 오스만국의 전초기지로 건설되어
19, 20세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시대에
크게 발전하였다.
모스타르에는 로마시대의 건축물과
터키 식민지 시대의 흔적들이 남아있으며,
중세 건축물이 많으며, 로마 시대의 성,
1556년 건설된 다리, 터키령 시대의 이슬람교 사원 등이 유명하다.
1993년 보스니아 내전으로 시내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지만
2004년 다시 재건되었다.
현재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프란시스코 성당
모스타르에는
보스니아 구역엔 모스크가
크로아티아 구역엔 성당이 있다.
프란시스코 성당 (성 베드로와 성 바울 성당)
원래 건물은 1874년에 지어졌으며
성 베드로와 성 바울 성당으로도 불린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많이 파괴되어
2001년에 콘크리트로 새로 지었다.
프란시스코 성당
이 성단에는 5,000여권의 진귀한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모스타르 평화의 종탑
종탑의 높이는 30m로
모스타르에서 가장 높다.
벽에 총탄 자국이 그대로...
가톨릭 신자인 크로아티아계 사람들과
대다수가 무슬림인 보스니아계 사람들이
섞여서 살아왔고, 현재도 섞여 있는 도시 모스타르는
전쟁의 상처 때문에 아직까지도
크로아티아계와 보스니아계 사람들끼리는
약간 긴장이 느껴진다고 한다.
보스니아는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 무슬림 48%,
동방정교를 믿는 세르비아인 37%,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 14%,
기타(롬족, 알바니아인, 아랍인, 터키인, 유대인 등)가
0.6%이다.
성당 앞에서부터 죽 이어지는
불레바르 나로드네 레볼루치예
(국민혁명 대로)라는 거리는
전쟁 당시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전선이라 파괴된 건물이 많다고 한다.
보스니아 내전으로 파괴되어
이십년 넘게 방치되어 있는 건물
안에 아직도 폭탄 조각이나
불발탄 같은 것이 있을지 몰라서,
이런 건물 폐허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고 한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와 유네스코기
200m를 더 가야 모스타르 다리의
할레비야탑이 나온다는 안내판
서쪽 크로아티아 쪽 거리이다.
브라체 페지카 거리
모스타르 다리로
올라가는 브라체 페지카 거리의 시장도
흡사 이스탄불에라도 와 있는 듯한 분위기로
가게에 내걸린 물건들도 터키식이다.
조약돌 거리
터키풍의 건물과 어우러진 거리
조약돌 거리는 거리의 보도블럭을
온통 조약돌로 해놓아서 붙은 이름이다.
보스니아 내전때 사용되던 총도 팔고 있다.
이곳 모스타르는
15세기부터 400 년 동안 오스만 터키 지배를 받아
그 어느 곳보다 이슬람 색채가 강한 곳이다.
스타리 모스트 다리 입구
1566년 완공되었을 당시 이 다리는
세계에서 가장 긴 단일 구간 다리였다고 하며
모스타르란 마을의 이름은
다리의 수호자란 뜻을 지닌
모스타리에서 유래되었다.
스타리 모스트 다리는
보스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1993년 11월 9일
보스니아 내 크로아티아 민병대에게 파괴된 뒤,
내전이 끝나고 유네스코와 각국 지원으로
다리 복원공사가 시작돼
2004년 옛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네레트바강 바닥에 흩어진 돌조각을 일일이 찾아내
1560년대 원형과 똑같이 재건했다.
스타리 모스트는 복원된 이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랐다.
문화재로서 가치는 물론이고
증오와 전쟁, 화해와 평화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이 소중했다.
그래서 이 다리는 이제 '평화의 다리'로 불린다.
스타리 모스트
다리 중간이 솟은 아치로 경사가 있어서
미끄럼 방지용 돌들을 덧대 놓았다.
이슬람 쪽인 타라 탑이 보인다.
할레비야 탑 The Tower Of Halebija
가톨릭 지역 쪽 다리 끝에 서 있는 건물은
전망대와 방어탑을 겸하던 할레비야 탑
할레비야 탑
1716년 만들어져 지하는 감옥으로,
위층은 수비대의 숙소와 경비초소로 사용하였고
현재는 보스니아 내전에 관한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할레비야 탑 밑 가게
DON'T FORGET '93'
할레비야탑 아래에 기념품 가게가 있는데,
그 앞의 자그마한 돌에
'DON'T FORGET '93'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내전의 아픔을 잊지말자는 의미이다.
다리 초입 사진엽서와 간단한 기념품을 파는 곳에
당시 부서진 다리 사진이 걸려 있다.
보스니아 내전 중
크로아티아 민병대에 의해
부서진 스타리 모스트
모스타르는 당시 전투가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던 전장 중 하나여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다시피 했는데,
무너져 내리는 다리의 모습이
전세계 미디어에 보도되면서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상징처럼 되었다.
모스타르의 이슬람 동네를 상징하는 사원
코스키 메흐메드 파샤 모스크가
높은 첨탑과 함께 서 있다.
코스키 메흐메드 파샤 모스크
1618년 지어졌으며
옛 색채와 장식이 모스타르에서 가장 잘 보존된,
가장 우아한 모습의 모스크라고 한다
이 모스크는 아무나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심지어 미나레트에도 올라가 볼 수 있고,
미나레트 위에서 모스타르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멋지다고 한다.
뒤의 첨탑은 카라도즈 베이 모스크
모스타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로 손꼽히는
카라도즈 베이 모스크는 1557년에
오스만 투르크의 전설적인 건축가인,
이스탄불의 블루 모스크를 비롯해
유명한 건물들을 건축한 미마르 시난이 지었다.
메흐메드 벡 카라도즈라는 도시 유지의
기부로 지어져 그의 이름을
본 따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보스니아 속의 터키마을
옛 모스타르 다리를 중심으로
네레트바 강 양쪽으로는 시가지가 형성되어
예로부터 장인들과 기술자들이 모여 살던곳이었다.
이중 모스타르 다리 동쪽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보스니아인들이 살던 마을로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많고
또 16세기 경에 지어진 이슬람 사원들과
터키식 건물들이 늘어선 골목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수공예품들을 파는 상점들과 카페
또는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고
중세 분위기가 짙게 배어있는 거리는
항상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왼쪽이 무슬림 구역이고 오른쪽이 기독교 구역이다.
그래서 다리가 전쟁의 중심이 되었다.
처참한 전쟁의 참상을
말없이 지켜봤을 네레트바강
다이빙 축제 관람석
다리는 아치형으로 가운데가 불룩 솟아 있고
24m로 가장 높은 다리 중앙에서는
해마다 7월이면 다이빙축제가 열린다.
왼쪽 Diving 연습 점프대와 Divig 대회 때의 관람석
스타리 모스트에 관련된 재미있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이야기는 1664년의 한 사랑에 빠진 청년으로부터 시작된다.
겁없는 청년이, 연인을 감동시키기 위해
스타리 모스트에서 멋들어지게 점프해서
네레트바 강에 다이빙을 했는데
이 청년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때부터 용기를 뽐내고픈 젊은이들이
스타리 모스트 한가운데에서 풍덩풍덩 강물에
뛰어들어 보이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1968년부터는 아예 정식으로
'스타리 모스트 다이빙 대회'를 열어
시상도 하고 하는 모양인데,
관광객을 끌기 위해 청년들이 위험한 시도를 하도록
유인한다며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고.
구 시가지 이슬람 쪽 타라 탑
1676년 만들어졌는데 벽의 두께가 3m를 넘는
두꺼운 벽으로 오스트로-헝가리 왕국 때에는
탄약 저장고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스타리 모스트 박물관이다.
그 밑 기념품 가게에서는
1993년 스타리 모스트 붕괴 관련 동영상을
상영해 준다.
현재 모스타르의 구 시가지는
이색적인 매력을 자랑한다.
구시가지입구에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스타리모스트 다리가 있으며,
터키인의 거리에는 자갈길이 펼쳐져 있다.
과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모스타르 최고의 이슬람 사원인
코스키 메흐메드 파샤 모스크가 유명한 볼거리이다.
터키인의 거리 이슬람 거주지
유네스코 등재 명판
유네스코 등재 명판에
모스타르의 터키식 다리인 스타리 모스트를
복원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기부한 나라와
금액이 적혀 있다.
이슬람 지역에서 본 스타리 모스트
타라 탑 쪽에서 본 할레비야 탑
할레비야 탑 쪽으로 나왔다.
네레트바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스타리 모스트
네레트바 강 위에 놓여 있는
아름다운 아치형의 보행자 전용 다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
고대부터 나무다리가 놓여 있던 곳인데
16세기 오스만 터키가 모스타르를 지배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황금기 때인 1557년
술탄 술레이만 1세의 지시로 당시 오스만 터키
최고 건축가 시난의 제자 미마르 하즈루딘이
9년에 걸쳐
길이 30m, 폭 5m, 높이 25m의아름다운 아치형 석조다리로 개조하였다.
스타리 모스트
16세기에 이 다리를 설계한 오스만 제국의 유명한
건축가 미마르 시난의 제자인 하즈루딘은
납땜된 철제 핀들로만 커다란 석재들을 지탱하는
혁신적인 건축기법을 도입했는데,
사실상 하이루딘은 이 방법이 실패하여
다리가 무너져내릴 것을 두려워하여,
다리가 완공되기 전에
도망쳐 버렸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새롭고 대담한 기법이었다고.
모스타르 다리 Old Bridge Mostar
오래된 다리라는 뜻을 가진 모스타르 다리를 중심으로
이슬람과 가톨릭이 공존하여 왔으나
1993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모스타르 다리를 사이에 두고
크로아티아계와 무슬림간에 엄청난 격전이 벌어졌다.
결국 그 해 11월에 크로아티아인들의 공격을 받아
옛 다리인 모스타르 다리가 붕괴되었다.
2004년 세계의 은행들과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터키 건축가들의 노력으로 복원되었다.
현재는 보스니아의 이슬람계와 크로아티아계를 이어주는
평화의 상징물로 자리잡았다.
스타리 모스트
2001-2004년 이뤄진 복원공사에서는
원형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헝가리의 잠수부들이 강 바닥에 떨어진 돌들을 건져올려
터키의 건축가들이 1,088개의 돌을 재배치하고,
부족한 돌은 같은 채석장에서 가져온 석재로
똑같은 기법을 사용하여 재건축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물 위로 당겨진 활시위처럼 보이는
단일 아치의 다리가 다시 네레트바 강 위에
자리잡게 되었는데
아치의 높이는 28.2m라고 한다.
스타리 모스트의 아치가
정말 멋지다.
할레비야 탑 밑에서 스타리 모스트를
찍고 약속장소인 주차한 곳으로
다시 나가고 있다.
몽돌 자갈을 어디서 가져와서
이렇게 깔아 놓았을까...
이 아이스크림 사 먹었는데 맛있었다.ㅋ
포스팅은 뒷편에
스타리 모스트 다리 그림만 빼고는
터키 이스탄불의 바자르에서 파는거랑
거의 비슷하다.
모스크의 미나레트와
이슬람 노래가 잘 어울린다.
The Hamam Museum
하만은 터키 목욕탕인데 Museum으로
개조했나보다.
미나레트를 보니
아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옛 다리 지역은 오스만 제국 이전의 건축,
오스만제국의 건축,
지중해 및 서부 유럽의 건축 양식 등
여러 문화가 어우러져 있다.
여기는 가톨릭 지역인데
모스크도 있다.
이 가게에서 이스탄불에서 사고 싶었는데
못 산 아라비안 나이트적인 램프를 샀다.ㅋ
가톨릭 교회와 이슬람의 모스크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모스타르는
이슬람 구역과 크로아티아 구역의
분위기가 서로 다르다.
모이는 장소인 프란시스코 성당 앞
모스타르를 마지막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투어는
모두 끝났다.
이제 버스를 타고 네움으로 가서
하룻 밤을 보내고 나면
내일 다시 크로아티아로 넘어간다.
[참고 출처: 유네스코, 두산백과, 위키 백과, 네이버 캐스트]
[서명이 없는 사진은 퍼 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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